E-mail : juntonggahun@naver.com
뿌리깊은 안동권씨 안권의 광장
>> 안동권씨 > 뿌리깊은 안동권씨


저자가 직접 집필한 '뿌리깊은 안동권씨'를 기반으로 안동 권씨라면 누구나 쉽게 자신의 조상에 관하여 공부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코너를 구성하였습니다.

[제2장. 태사묘 ] 2) 새 묘우(廟宇)의 건립(建立)

관리자이메일
2) 새 묘우(廟宇)의 건립(建立)

1542년, 안동부사로 부임한 권태사의 외손인 김광철(金光轍)과 통판(通判) 권곤(權鯤)이 향유사(鄕有司)와 상의해서 부사(府司) 옛 터를 정리하고 그 장소에 새로 묘우(廟宇)를 지어, 본래 부사(府司)에 있다가 객사(客舍)로 옮겨진 삼공신의 위판(位版)을 새 묘우(廟宇)로 옮겨 모셨다.
그러자 경상감사(慶尙監司) 권철(權轍)이 제전(祭田)을 마련하고 노비를 주어 묘우(廟宇)를 관리하게 했다.

그후 광해군 5년(1613년)에 경상감사 권반(權盼), 경주부윤 권태일(權泰一)이 옛날의 묘(廟)의 규모를 확대 개건(改建)하고, 삼공신묘(三功臣廟)라고 부르던 묘의 이름을 비로소 태사묘(太師廟)라 했고, [태사묘(太師廟)]라는 현판은 권복흥(權復興)이 썼다.
1563년, 안동부사 권응정(權應挺)이 묘정에 비(碑)를 세우고, 제전(祭田)과 위전(位錢)과 노복(奴僕)을 더 많이 설치하고, 권씨(權氏) 가운데 한 사람을 호장(戶長)으로 해서 이를 관장하게 했으며, 매년 설날, 단오, 추석, 동지의 사절사(四節祀)를 모시도록 했다.

그러다가 1585년 도유사인 권호문(權好文)의 주창으로 봄과 가을, 두 번만 향사(享祀)를 올리기로 결정을 하고, 춘추 중월(仲月) 중정일(中丁日)에 향사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삼태사의 묘당은, 태사공 자손들의 정신적 지주일 뿐만 아니라, 안동부민 전체의 자랑으로 받들어 모셔지며 내려 왔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태가 위급하게 되니 묘사(廟祠)의 고직이 안금이(安金伊)가 삼태사의 위패를 모시고 길안면 국란리 깊은 곳에 들어가 바위 굴 사이에 안치하고, 조석으로 받들다가, 3년이 지난 뒤 왜란이 평정해지자 관가에 바치니, 이는 삼태사의 자손도 하지 못하는 일을, 천민인 그가 오직 삼태사의 덕을 흠모하는 충직한 마음으로 한 것이다.
나라에서는 그 갸륵한 뜻을 높이 평가하고 첨지(僉知)의 벼슬을 내리고, 경내 한 곳에 안묘당(安廟堂)을 세우고 봉안하고 있다.
  
1608년 11월에는 유사 휘 권중상(權重常), 휘 권함(權 ), 휘 김태(金兌), 휘 장흥효(張興孝) 등의 발의로 너무나 오래되어 자연 훼손된 삼공신(三公臣)의 위패(位牌)의 글자를 고쳐 쓰기로 하고, 휘 권오(權晤)가 붓을 잡아 삼가 썻다.


   <삼태사의 위폐를 모신 태사묘>                                      <태사묘 사당의 정문>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 목록
번호 분류 제 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5 5) 삼공신묘증수기(三功臣廟增修記), 이황(李滉)지음. 관리자 05-01-06 5495
4 4) 삼태사의 유품 관리자 05-01-06 4601
3 3) 화재로 인한 중건(重建) 관리자 05-01-06 4360
2) 새 묘우(廟宇)의 건립(建立) 관리자 05-01-06 4355
1 1) 부사(府司)에 있던 삼공신의 묘(廟) 관리자 05-01-06 3879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