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詩(당시) 杜少府之任蜀州(두소부지임촉주) 王勃(왕발)
城闕輔三秦(성궐보삼진)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與君離別意(여군리별의)
同是宦游人(동시환유인)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天涯若比鄰(천애야비린)
無爲在歧路(무위재기노)兒女共沾巾(아녀공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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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성곽은 三秦(삼진) 땅을 지키는데
五津(오진) 바라보니 風煙(풍연)이 끼어있는 듯
그대와의 이별은 괘로운데
이는 모두 관계에 몸 담은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천하 어디라도 知己(지기)가 있다 생각하면
하늘 끝도 마치 이웃과 같으리
이별의 길목에서 우리는 하지 마세
여자같이 눈물로 손수건 적시는 따위
【註】
少府(소부)....... 지방관청에서 차석이하의 고관에 대한 존칭
蜀州(촉주)....... 四川省(사천성) 일대. 則天武后(즉천무후)일 때 益州(익주)를 갈라 한 주로 했다.
三秦(삼진)....... 楚(초)의 項羽(항우)가 秦(진)을 정벌했을 때, 關中(관중) 땅을 삼분해서 진 의 三降將(삼강장)을 봉해서 三秦(삼진)이라 칭했다.
五津(오진)....... 大江(대강)의 상류에서 차례로 있는 다섯 개의 항구. 白華津(백화진), 萬里 津(만리진), 江首津(강수진), 涉海津(섭해진), 江南津(강남진)을 이름.
宦游(환유)....... 관가를 遍歷(편력)하는 것.
海內(해내)....... 天下(천하).
兒女共沾巾(아녀공첨건)... 孔穿(공천)의 고사를 暗用(암용)함. 孔穿(공천)은 공자의 6대손으로 자는 子高(자고)이다. 전국말기의 사람으로, 趙(조)로 여행을 했을 때, 平原 君(평원군)의 賓客(빈객) 鄒文(추문), 李節(이절)과 친해졌다. 孔穿(공천)이 魯(노)로 돌아 갈 때 이 두 사람은 3일간이나 딸아 가서, 막상 이별할 때 눈 물을 흘려 옷을 다 적셨다. 그런데 子高(자고)은 다만 손을 들었을 뿐이다. 그때 수행하던 사람들이 「그들은 이별을 슬퍼하고 그리는 마음이 역력한데, 선생은 다만 답례로 읍을 할뿐이니, 그들의 깊은 정에 너무나 결례가 아닌가 요」라고 물었다. 子高(자고)는 「나는 두 사람을 丈夫(장부)라고 생각하고 있 었으나, 그게 아니고 부녀자에 속하는 무리라고 알았다. 사람은 사슴이나 돼 지와 달라 항상 같은 무리와 함께 지낼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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