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詩(당시) 行次昭陵(행차소릉) 杜甫(두보)
舊俗疲庸主(구속피용주)群雄問獨夫(군웅문독부)讖歸龍鳳質(참귀용봉질)
威定虎狼都(위정호랑도)天屬尊堯典(천속존요전)神功協禹謨(신공협우모)
風雲隨絶足(풍운수절족)日月繼高衢(일월계고구)交物多師古(교물다사고)
朝廷半老儒(조정반노유)直詞寧戮辱(직사영륙욕)賢路不崎嶇(현로불기구)
往者災猶降(왕자재유강)蒼生喘未蘇(창생천미소)指揮安率土(지휘안솔토)
盪滌撫洪鑪(탕척무홍로)壯士悲陵邑(장사비릉읍)幽人拝鼎湖(유인배정호)
玉衣晨自擧(옥의신자거)鐵馬汗常趨(철마한상추)松柏瞻虛殿(송백첨허전)
塵沙立暝途(진사입명도)寂寥開國日(적요개국일)流恨滿山隅(유한만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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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前朝(전조)의 백성들 凡庸(범용)한 군주에게 괴로움을 받아가
자격 없는 煬帝(양제) 나타나자 각지에 영웅 이러나 그를 공격하게 되었네.
그러자 龍鳳(용봉)의 자질 있는 우리 太宗(태종)에게 천자의 위 돌아오니
그의 위엄은 虎狼(호랑)의 수도인 關中(관중)을 진압하고
천자의 위를 다음 대에 물린 것은 堯舜(요순)과 흡사하며
천하를 통일한 뒤의 경륜은 禹(우)의 업적과 필적하네.
풍운이 일어나니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 천자를 따랐고
마치 日月(일월)이 하늘의 대도를 운행하며 빛나는 것과 흡사하네.
조정의 문물제도는 고대 성현을 모범 삼았고
국정을 요리하는 묘당의 대신들은 나이 좀 든 孺人(유인)이 등용되었네
바른말로 간해도 처벌받고 미움받을 염려 없고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는데 어려운 險路(험로)는 없네.
왕년의 계속된 재앙으로 천하는 충분하게 회복되지 못한 상태이니
백성은 아직도 허덕이고 고생하며 완전히 소생하지 못하고 있네
그것이 태종의 지휘로 온 나라가 편안하게 되었으니
마치 조물주가 천지만물을 길러나가는 것과 흡사하네
그 英主(영주) 이 세상에 없으니 장사는 능가에서 옛날 그리며 슬퍼하고
나 또한 황제의 업적과 그 묘를 보고 시름에 잠기네
옥으로 장식된 묘안의 御衣(어의)는 아침에 일어나 움직이지 않을까
철마는 땀을 흘리면 그때처럼 힘차게 달리지 않을까
나는 지금 松柏(송백)만이 우거진 인기척 없는 궁전을 바라보며
일어나는 흙먼지 덮어쓰며 황혼 길에 서 있네
생각하니 唐(당) 나라 개국한 날도 아득히 먼일이며 쓸쓸하기 그지없고
흘러간 애환 이 강산 구석구석에 가득하네
【註】
昭陵(소릉)....... 唐(당) 太祖(태조)의 능이며 지금의 陜西省(협서성) 醴泉(예천) 九嵕山(구종 산)에 있음.
舊俗(구속)........ 前朝(전조)의 민중. 隋(수)의 백성을 말한다.
庸主(용주)....... 凡庸(범용)한 군주. 六朝(육조)의 군주들을 말한다.
問(문)............ 책임을 묻고 煬帝(양제)를 칠 군사를 일으킴.
獨夫(독부)....... 포악무도한 군주. 민심이 떠나 고독한 상태에 있으므로 이미 구주라고 할 수 없고 獨夫(독부)라고 한다. 書經(서경) 秦書(진서)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 는 煬帝(양제)를 가리킨다.
讖(참).......... 미래의 예언.
龍鳳質(용봉질)... 天子(천자)의 인상. 唐書本紀(당서본기)에 太宗(태종)이 4세 때, 어는 관상 가가 「鳳凰(봉황)의 자태가 있으니 장래 반드시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 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한다.
虎狼都(호랑도)... 秦(진)의 수도. 關中(관중). 史記(사기) 蘇秦傳(소진전)에 「대저 秦(진)은 虎狼(호랑)의 나라이다. 천하는 삼킬 심사가 있다」라고 있으며, 秦(진)의 殘 虐(잔학) 무도함을 의미하고, 또한 같은 關中(관중)에 都邑(도읍)을 정한 隋 (수)를 말하기도 한다.
天屬(천속)....... 천연의 관계. 부자형제 등을 말한다.
堯典(요전)....... 堯(요)가 한 일. 堯(요)는 그의 아들 丹朱(단주)를 버리고 천자의 위를 舜 (순)에게 이양했다. 당의 고조는 당의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얼마 뒤 실질 적인 건국의 공로자인 次子(차자)인 太宗(태종)에게 讓位(양위)했다.
禹謨(우모)....... 大禹(대우)의 施策(시책).
風雲(풍운)....... 군신의 만남을 말한다. 漢(한)의 王褒(왕포) 성주득신송에 「세상에 聖智(성 지)를 가진 군주가 있은 다음에 현명한 신하가 있다. 그르므로 범이 울부짖 으며 冽風(렬풍)이 일고, 용이 일어나서 그름에 이른다.」라고 있다.
絶足(절족)........ 뛰어난 인물에 비유. 拾遺記(습유기) 다르면, 周(주)의 穆王(목왕)에게 8필 의 준마가 있었는데 1은 絶足(절족), 2는 飜羽(번우)라고 했다.
高衢(고구)........ 天路(천로), 大道(대도)를 말한다. 魏(위)의 王粲(왕찬)의 登樓賦(등루부)에 「일원이 넘어가려는 것을 생각하고, 물 밝기를 기다려도 아직 이루지 못했네. 간절히 바라기는 王道(왕도) 한번 열려 高衢(고구)의 힘을 빌려 달려가기 원하네」라고 있다.
直詞(직사)......... 直諫(직간). 솔직한 諫言(간언).
戮辱(육욕)........ 형벌을 받아 더럽혀 진다.
崎嶇(기구)....... 험준한 길.
往者(왕자)........ 往年(왕년). 앞서간 세월.
災(재)............ 天災(천재).
蒼生(창생)....... 백성. 인민.
喘(천)............ 허덕이다. 숨이 차다.
率土(솔토)....... 나라 안 모든 곳. 詩經(시경) 小雅北(소아북)에 「溥天下(부천하), 王土(왕토) 아님 곳이 없고, 卒土(졸토)의 浜(빈), 王臣(왕신)아님이 없다」라는 말에서 인용.
盪滌(탕척)....... 씻는 것. 재해를 씻어버림.
洪鑪(홍로)........ 커다란 鐪(로). 천지에 비유. 莊子(장자)의 大宗師(대종사)에 「하늘을 갖고 大鐪(대로)로 삼고, 造化(조화)를 갖고 大冶(대야)로 삼는다.」라고 있다.
陵邑(능읍)........ 능 부근의 邑(읍).
幽人(유인)....... 周易(주역) 履掛(이괘)에 「幽人貞吉(유인정길)」이라 있고, 그 주석에 「幽人 (유인)은 道(도)를 안고 正(정)을 지키며 악을 행하지 않는 것임」이라 했다. 여기서는 작가 자신인 杜甫(두보)를 이르는 말이다.
鼎湖(정호)........ 黃帝(황제)가 鼎(정)을 만든 곳이며, 거기서 黃帝(황제)가 昇天(승천)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太宗(태종)이 죽은 것과 그의 묘를 말한다. 史記 (사기),孝武本紀(효무본기)에 「黃帝(황제) 首山(수산)의 종을 캐서 鼎(정)을 荊山(형 산) 아래에서 만들다. 鼎(정)이 이미 다 만들어졌을 때, 용이 내려와 胡髥(호염)을 늘 려 뜨려 黃帝(황제)를 맞는다. 黃帝(황제)올라탄다. 群臣(군신) 후궁 황제를 따라서 용에 오르는 자 70여명, 용은 올라가서 사라졌다. 나의 小臣(소신) 올라 갈 수가 없어서 모두 용의 龍髥(용염)을 잡았다. 龍髥(용염)이 빠져버 렸다. 黃帝(황제)가 활을 떨어뜨렸다. 백성들 우러러 바라보았다. 黃帝(황제) 는 이미 하늘에 올라갔다. 그러자 그 활과 용의 胡髥(호염)을 들고 소리를 쳤다. 그래서 후세 사람은 그곳의 이름을 鼎湖(정호)라 했고, 그 활을 烏號 (오호)라 했다.」라고 있다.
玉衣(옥의)...... 옥으로 장식한 의복. 漢高祖(한고조) 廟(묘) 속에 넣어두었던 御衣(어의)가 함 속에서 나와 殿上(전상)에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鐵馬汗常趨(철마한상추)... 安祿山(안록산)의 군대가 潼關(동관)에 침입해서 관군이 敗(패)했을 때, 賊將(적장) 崔乾裕(최건유)가 좌우를 인솔하고 질주하는 것을 아군 진지 에서 바라 보니 마치 귀신과 같이 보였다. 그러자 黃旗(황기)의 군사 수 백 명이 나타났다. 관군은 적인 줄 알고 가까이 가지 않았다. 바로 乾裕(건유) 의 부대로 殺到(쇄도)했으나 중과부족으로 이길 기미가 없었으며, 여러 차례 물러섰다가 다시 공격하며 여러 차례 싸웠다. 그리고 잠시 뒤 그 모습이 보 이지 않게 되었다. 뒤에 昭陵(소능)의 官(관)이 이날, 靈宮(영궁) 앞에 石人 (석인)과 石馬(석마)가 땀을 흘렸다는 보고를 했다. 당시 그러한 소문이 일 찍부터 퍼져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만일 이 작품이 장안 회복 뒤의 작 품이라면 의미가 잘 통한다. 그러나 그러한 전설은 옛날부터 있었으므로 확 실한 것은 아니다.
松柏(송백)...... 묘 가에는 松柏(송백)을 많이 심는다.
虛殿(허전)....... 사람이 없는 宮殿(궁전). 陵墓(능묘)에 있는 건물.
流恨(유한)....... 가득 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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