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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唐詩(당시) 人日寄杜二拾遺(인일기두이습유) 高適(고적)

청남

 

 

唐詩(당시) 人日寄杜二拾遺(인일기두이습유) 高適(고적)

 

 

人日題詩寄草堂(인일제시기초당) 遙憐故人思故鄕(요련고인사고향)

柳條弄色不忍見(유조롱색불인견) 梅花滿枝空斷腸(매화만지공단장)

身任南蕃無所預(신임남번무소예) 心懷百憂復千慮(심회백우복천려)

今年人日空相憶(금년인일공상억) 明年人日知何處(명년인일지하처)

一臥東山三十春(일와동산삼십춘) 豈知書劍老風塵(기지서검노풍진)

龍鍾還忝二千石(용종환첨이천석) 愧爾東西南北人(괴이동서남북인)

 

人日(인일)인 오늘 시를 지어 초당에 있는 그대에게 보네니

멀리 고향 떠나 있는 그대 고향 생각 간절하리라 생각하네.

버들가지는 싹트는데 차마 홀로 볼 수 없고

매화가 만발하니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자아내네.

나는 좌천되어 南潘國(남반국)에 있으니 중앙의 일 알길 없고

마음에 온갖 시름 안고 근심스러운 일들뿐이라네.

금년의 人日(인일)은 이렇게 허망한 생각으로 보내지만

내년의 人日(인일)에는 서로 어디 있을지 어찌 알리

한번 동산에 들어간지 30, 거기서도 절개를 변치 않았는데

우연히 관계에 나가 문사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처지로 늙어만 가네.

노년에도 얕은 직책에 얽매여 보잘것 없는 녹을 받고 있으니

속박 없이 동서남북 자유로이 방랑하는 그대에게 부끄럽구나.

人日(인일)....... 정월 초7. 민간의 풍습으로 정월 1일을 鷄日(계일), 2일을 狗日(구일), 3 일을 豕日(시일), 4일을 羊日(양일), 5일을 牛日(우일), 6일을 馬日(마일), 7일을 人日(인일), 8일을 穀日(곡일)이라 정하고 그것으로서 일년중의 흉풍 을 점쳤다. 人日(인일)에는 친척과 친구가 모여 선물을 나누고 잔치를 벌렸 .

杜二(두이)...... 杜甫(두보)를 이름.

拾遺(습유)...... 官名(관명). 供奉(공봉) 諷諫(풍간)을 관장한다. 官等(관등)은 낮으나 천자 가까이 나가므로 淸官(청관)이라 했다.

草堂(초당)...... 杜甫(두보)成都(성도) 浣花溪(완화계)에 있었던 집. 왕화초당.

故人(고인)...... 친구. 여기서는 벗인 杜甫(두보)를 일컬음.

柳條(유조)....... 버들가지.

()............ 작가 자신의 몸.

南蕃(남번)....... ()을 말한다. 그는 蜀州(촉주), 彭州(팽주)刺史(자사)였다.

無所預(무소예)... 중앙의 중대한 정치에 대해서는 전연 알 수가 없다.

一臥東山三十春(일와동산삼십춘)... 東山(동산)謝安石(사안석)故事(고사). 高適(고적)은 자 신의 이력을 사안석에 비교하였다. 謝安(사안:320385), 자는 安石(안석). 젊을 때부터 명성이 높았고, 여러 번 관계에 나오라는 권유가 있었으나 신병 을 빙자해서 임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 관계에 나오지 못한다는 당국의 명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기화로 臨安(임안) 산에 있는 東山(동산) 이라는 것에 별장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살고 있었다. 동생이 謝萬(사만) 西中郎將(서중낭장)이 되어 藩鎭(번진)의 중임을 맡게되었지만 隱者(은자) 謝安石(사안석)의 명성이 더 높았다. 40세 때 西征大將軍(서정대장군) 桓溫 (환온)의 청으로 司馬(사마)의 관직을 받았다. 中丞(중승)高崧(고숭) 暴威(폭위)를 누르며 조정에 충성을 다했으며 中書監(중서감)으로 진출했다.

그런데 前秦(전진)苻堅(부견)이 일거에 東晋(동진)을 괴멸하려 대군을 거 느리고 남하하여 淮肥(회비)에 포진했다. ()安石(안석)을 토벌대장으 로 임명하고 防戰(방전)시켰다. 安石(안석)의 지휘하에 謝石(사석), 謝玄( )이 적을 맞아 대승리를 거두었다. 前秦(전진)은 이때부터 쇠퇴하기 시작 했다. 安石(안석)은 그 공으로 太傅(태부)에 가지 승진했다. 高適(고적) 安石(안석)보다 10살이나 적은 50살 경에 정식으로 관직에 올랐다. 20 50까지 30년간 野人(야인)으로 지낸바 있다.

書劍(서검)...... 책과 칼은 선비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 문무를 표현함.

風塵(풍진)....... 속세의 고생.

龍鍾(용종)....... 노쇠해서 기운이 없어지는 것.

二千石(이천석)... 한나라 때 지방장관의 녹.

東西南北人(동서남북인)...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방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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