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詩(당시) 烏夜啼(오야제) 李白(이백)
黃雲城邊烏欲棲(황운성변오욕서) 歸飛啞啞枝上啼(귀비아아지상제)
機中織錦秦川女(기중직금진천녀) 碧紗如煙隔窓語(벽사여연격창어)
停梭悵然憶遠人(정사창연억원인) 獨宿空房淚如雨(독숙공방루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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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노랗게 황혼이 물든 성터에 까마귀 깃들고저
날아와서 까악까악 가지에서 울어대네
베틀에서 비단을 짜는 秦川(진천)의 여자
안개 같은 푸른 주렴 속에서 혼잣말 하다가
못 견디어 북 멈추고 멀리 떠난 님 생각하며
계속 되는 속수 공방에 비오듯 눈물 흘리네.
【註】
烏夜啼(오야제)... 樂府題(악부제)의 하나로 연인이나 남편을 그리는 여성의 정을 노래한 것임. 원래 劉宋(유송)의 臨川王(임천왕) 義慶(의경: 403~443)이 지었다. 멀리 있 는 임을 그리는 여성의 슬픔을 읊은 악곡이다. 梁(양)의 簡文帝(간문제)나 北周(북주)의 庾信(유신)도 이 악부제로 쓴 시가 있다.
啞啞(아아)...... 까마귀 우는 소리.
秦川女(진천녀)... 秦川(진천)은 秦(진)의 지방 일대를 이르는 말이다. 거기에 있는 여자라는 뜻이지만, 그 속에는 蘇若蘭(소약란)의 고사가 암시되어 있다. 前秦(전진) 苻堅(부견)의 시대에, 秦州(진주) 자사 竇滔(두도)에게 蘇氏(소씨)라는 부인 이 있었다. 그녀는 陳留(진류)의 令(영) 蘇道賢(소도현)의 제3녀 이다. 16살 에 竇(두)이 아내가 되었다. 竇(두)는 풍체도 좋고 한문도 깊었으며 지방장 관으로서 공적도 있었다. 한 때 제왕의 명을 어깃다 해서 燉煌(돈황) 수비역 으로 좌천되었으나, 苻堅(부견)이 東晋(동진)으로부터 襄陽(양양)을 빼앗을 때, 그 중요지역을 지킬만한 사람은 竇滔(두도)가 적당하다는 공론으로 그에 게 安南將軍(안남장군)를 임명해서 襄陽(양양)을 지키게 했다. 竇(두)에게는 趙陽臺(조양대)라는 寵姬(총희)가 있었다. 가무에도 능하고 미모도 뛰어났다. 蘇若蘭(소약란) 역시 아름다웠지만 질투심이 매우 강했다. 그래서 陽臺(양 대)가 숨어사는 곳을 찾아 가 그녀를 잡아서 매우 때리고 목욕을 했다. 竇滔 (두도)는 노해서 襄陽(양양)에 갈 때 陽臺(양대)를 대리고 가서, 蘇若蘭(소 약란)과는 소식을 끊었다. 악란이 23살 때 였다. 그래서 홀로 독수공방하던 약란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시름에 찬 마음을 비단 속에 840자의 글짜로 짜 넣었다. 그 글이 廻文詩(회문시)이다. 그것을 하인에게 주어 襄陽 (양양)에 보냈다. 그것을 본 竇滔(두도)는 너무나 감동해서 陽臺(양대)를 關 中(관중)으로 돌려보내고, 차를 특별히 마련해서 정중히 蘇(소) 부인을 襄陽 (양양)으로 불러 드렸다고 한다.
隔窓語(격창어)... 창너머 무엇인가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보인다는 뜻.
梭(사)........ 베를 짜는 북.
悵然(창연).... 멍하니 서글프고 애달프게.
憶遠人(억원인)... 멀리 떨어져 있는 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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