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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唐詩(당시) 同餞陽將軍兼原州都督御史中丞(동전양장군겸원주도독어사중승) 蘇頲(소정)

청남

 

 

唐詩(당시) 同餞陽將軍兼原州都督御史中丞(동전양장군겸원주도독어사중승) 蘇頲(소정)

 

右地接龜沙(우지접귀사)中朝任虎牙(중조임호아)然明方改俗(연명방개속)

去病不爲家(거병불위가)將禮登壇盛(장예등단성)軍容出塞華(군용출새화)

朔風搖漢鼓(삭풍요한고)邊月思胡笳(변월사호가)旗合無邀正(기합무요정)

冠危有觸邪(관위유촉사)當看勞旋日(당간로선일)及此御溝花(급차어구화)

 

흉노의 우측 땅은 龜沙(구사)와 접해있으므로

조정에서도 그 곳에 유능한 장군을 임명하게 되었네

張然明(장연명)과 같이 사방 이민족을 감화해서 풍속을 고치고

郭去病(곽거병)과 같이 집을 돌보지 않고 신명을 바치라는 거네

장수를 임명하는 의식은 성대하고 엄숙하며

요새를 나가는 군대의 위용은 화려하리라.

그러나 차가운 북풍이 불어 漢軍(한군)戰鼓(전고)를 울리고

변방에 뜨는 달은 胡笳(호가) 소리 더욱 쓸쓸하게 할 것이리.

깃발을 앞세우고 나아가는 정도 앞에 대적할 자 없을 것이며

어사의 관을 두려워해서 기강숙청의 효과는 아주 크리라.

그대가 도독으로서의 대임을 마치고 무사히 개선하는 날은

아마도 이 혜자의 꽃이 만발하는 다음 해 봄일 것이리.

 

陽將軍(양장군)... 陽嶠(양교)일지도 모르나 확실하지 않다. 陽嶠(양교)는 낙양 출신이며 모든 시험에 급제해서 將陵尉(장능위), 詹事司直(첨사사직)등을 거쳐 장안에서 使中丞(어사중승)이 되었다. 睿宗(예종) 尙書右丞(상서우승)으로 진급하 涇州(경주) 도독이 되었다.

原州(원주)........ ()原州(원주) 平涼郡(평량군)이며 인구 33천 정도가 있었다. 지금 甘肅省(감숙성) 固原(고원) 부근이다. 武德(무덕) 7년이래 原州都督府( 주도독부)가 설치되었으나 景雲(경운) 연간에 개편되어 (), (), (), (), (), ()六州(육주)를 관장하기 위해 涇州都督府( 주도독부)가 설치되었다.

御史中丞(어사중승)... 御史臺(어사대)中丞(중승)3명이 있고, 4품하이고, 刑法典章(형법 전장)으로 백관의 죄악을 다스리는 관직이다.

蘇頲(소정: 670727)... 자는 廷碩(정석), 장안 사람. 어려서 재주가 있어 한번보고 백마다의 글귀를 모두 암기해냈다. 진사 급제 후 烏程尉(오정위)가 되었다. 武后(무후) 萬歲登封(만세등봉)의 해, 賢良方正(현량방정)으로 승진했고, 監察御使( 찰어사)가 되었으며, 中宗(중종)神龍(신룡) 중에 給事中(급사중)에 옮기 , 修文館學士(수문관학사), 中書舍人(중서사인)에 이르렀다. 玄宗(현종) 그의 글을 좋아해서 工部侍郞(공부시랑)에서 紫薇侍郞(자미시랑)으로 옮기고 宰相(재상)으로 임명했다. 문장으로 널리 세상에 알려졌으며 張說(장설) 함께 세상에서 燕許大手筆(연허대수필)이라 일컬어졌다.

右地(우지)....... 南面(남면)해서 右側(우측) 즉 중국의 서쪽. 漢代(한대)에 흉노가 있었 던 지방을 가리킴.

龜沙(귀사)....... 龜玆(구자)또는 流沙(유사) 즉 사막지방을 말한다. 龜玆(구자)漢代(한대) 天山南路(천산남로)에 있었던 나라.

中朝(중조)........ 중국의 조정.

虎牙(호아)........ 將軍(장군). 漢代(한대)의 장군 호칭.

然明(연명)........ 後漢(후한)張奐(장환). 자는 然明(연명). 燉煌(돈황) 酒泉(주천)의 사람. 桓帝(환제)永壽(영수) 연간에 所屬國(소속국) 都尉(도위)가된 이래, 다음 靈帝(영제) 때까지 3회나 邊將(변장)이 되어 몸을 바르게 하고 청렴하여 크 게 위엄을 떨쳤으며, 미개야만의 풍속을 고쳐 선정을 폈으므로 변방의 사람 들로부터 많은 추앙을 받았다.

去病(거병)........ 前漢(전한)의 장군 霍去病(곽거병: BC 140BC 117). 武帝(무제)의 황후 衛氏(위씨)의 언니이자 대장군 衛靑(위청)의 누이인 衛少兒(위소아)와 곽중 유 사이의 아들. 18세에 天子(천자)侍中(시중)이 되었고, 騎射(기사) 능하여 위청을 따라 흉노토벌의 공을 세워 冠軍侯(관군후)에 봉해졌다. BC 121驃騎(표기) 장군이 되어 무훈을 세웠으며, 그해 가을 흉노의 渾邪王 (흔사왕)()에 투항함에 있어 이를 수용하는데 공을 세웠다. BC 119 년 봄에는 외숙 위청과 각기 5만 기를 이끌고 흉노를 쳐서 이를 고비 사막 북쪽으로 쫓고, 그 공로로 大司馬(대사마)에 임명되었는데 불과 24세의 나이 로 병사하였다. 그의 무덤 앞의 石馬(석마)BC 2세기 말의 작품으로도 유 명하다.

將禮登壇(장예등단)...漢高祖(한고조)韓信(한신)을 대장으로 임명할 때, 蕭何(소하)의 권유로 吉日(길일)을 택해서 齋戒(재계)하고 단을 모아 예를 갖추어 임명식을 한 고 사에 의한다.

胡笳(호가)....... 이민족이 부는 피리소리.

旗合(기합)....... 깃발이 질서가 있고 흐트러지지 않는 모양.

無邀正(무요정)... 정정당당한 진용에 대해서 대적하지 못한다. 손자병법에 正正(정정)한 깃발 을 맞아 싸우지 말고, 堂堂(당당)한 지용을 공격하지 말라라고 있다.

冠危有觸邪(관위유촉사)... 관을 높이 쓰고 있다. 御使中丞(어사중승)의 관을 말한다. 사된 일을 식별해서 이를 벌주는 것.

勞旋(노선)........ 군대가 개선했을 때, 천자가 그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연회.

御溝(어구)........ 궁성 내외를 흐르는 혜자. 즉 인공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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