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詩(당시) 奉和聖製早度蒲關(봉화성제조도포관) 張九齡(장구령)
魏武中流處(위무중유처)軒皇問道廻(헌황문도회)長堤春樹發(장제춘수발)
高掌曙雲開(고장서운개)龍負王舟度(용부왕주도)人占仙氣來(인점선기래)
河津會日月(하진회일월)天仗役風雷(천장역풍뢰)東顧重關盡(동고중관진)
西馳萬國陪(서치만국배)還聞股肱郡(환문고굉군)元首詠康哉(원수영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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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魏(위)의 武帝(무제)가 이곳 中流(중류)에 배를 띄우고
軒皇(현황)의 고사같이 도를 묻고 돌아오네
긴 제방의 나무에는 봄꽃이 한창 피었고
손바닥 모양인 높은 절벽은 새벽 구름 열리니 보이네
용은 왕의 배를 업고 물을 건너고
사람은 점을 처서 황제가 오는 것을 알고 있네
황하 나루에 천자의 깃발 나부끼어 일월이 서로 만나듯 빛나고
천자의 의장대 風雷神(풍뢰신) 구사하듯 위엄 있게 지나가네
동쪽을 바라보니 여러 개의 관문 여기서 끝이 났고
서쪽으로 달려보니 萬國(만국)의 제후들 더욱 추종하네
또한 듣기는 수족과 같은 군이라고 일컫던 河東(하동)지방 인민은
고대 舜(순)과 皐陶(고도)가 화창하듯 금상의 평안을 노래하네
【註】
蒲關(포관)....... 蒲津關(포진관)의 약칭. 玄宗(현종)의 원작에는 早度蒲津關(조도포진관)이라 되어있다.
魏武中流(위무중유)... 전국시대 魏(위)의 武候(무후)가 西河(서하) 중류에 배를 띄운 고사. 史記 (사기) 吳起傳(오기전)에 「魏(위)의 武候(무후) 西河(서하)를 배를 타고 내 려오다. 中流(중류)에 이르러 사방을 돌아보며 吳起(오기)를 보고 말하기를 “아름답구나 산하. 이것이 魏國(위국)의 보배로구나” 라고 했다. 吳起(오기) 가 대답하기를 “德(덕)이 있어야 위험이 없습니다.”라고 했다.」라 있다. 여기 가 그 西河(서하)의 中流(중류)라고 믿었다.
軒皇(헌황)...... 黃帝(황제) 軒轅氏(헌원씨)가 空同山(공동산)에 가서 廣成子(광성자)에 도를 물었다는 이야기. 莊子(장자) 在宥篇(재유편)에 있다.
高掌(고장)....... 앞에 나와 있음.
龍負王舟(용부왕주)... 淮南子(회남자) 精神訓(정신훈)에 龍負王舟(용부왕주)라는 말이 있다. 「禹 (우)는 남쪽 지방을 순회하며 강을 건너다. 黃龍(황룡) 배를 등에 매고 운반 하다. 배 안의 사람들 기겁을 하고 사색이 되었다. 禹(우) 즐겁게 웃으며 “나 는 명을 하늘로부터 받아, 전력을 다해 만민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生(생) 은 잠시 의지하는 것, 죽음은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로 평정 을 잃을 손가.” 용을 보기 태연하며 안색을 변하지 아니했다. 용은 결국 귀를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들며 사라져 가버렸다.」
人占仙氣來(인점선기래)... 列仙傳(열선전)에 「老子(노자) 西遊(서유)함. 函谷關(함곡관)의 令(영) 인 尹喜(윤희) 먼저 동쪽에서 紫氣(자기) 있는 것을 보고, 眞人(진인) 마땅 히 바로 여기를 지나감을 안다.」라고 있다. 唐(당)의 황제는 老子(노자)의 자손이라는 것으로서 玄元(현원)황제의 칭호를 老子(노자)와 관련시켰다.
河津(하진)...... 하늘의 강에 비유한다. 그르므로 日月(일월)과 만났다고 한다.
天仗(천장)....... 天子(천자)의 儀仗(의장).
重關(중관)....... 南岸(남안)에 函谷關(함곡관), 潼關(동관)이 있고 북안에 蒲津關(포진관)이 있다.
股肱郡(고굉군)... 漢(한)의 文帝(문제)가 河東(하동)의 태수였던 季布(계포)를 부를 때, 「河東 (하동)은 나의 股肱(고굉)의 郡(군)이다」라고 했다. 중요한 지역이라는 말.
元首詠康哉(원수영강재)... 書經(서경) 益稷篇(익직편)에 舜帝(순제)의 노래에 「股肱(고굉) 기쁘구나, 元首(원수) 일어 나구나, 百工(백공) 잘 따르구나」라고 있으며, 여 기 和(화)한 皐陶(고도)의 노래에 「元首(원수) 밝구나, 股肱(고굉) 선량하구 나, 庶事(서사) 편안하구나」라고 있다. 여기서는 玄宗(현종)의 御製(어제)에 대해 近臣(근신)이 唱和(창화)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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