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詩(당시) 薊丘覽古(계구람고) 陳子昻(진자앙)
南登碣石館(남등갈석관)遙望黃金臺(요망황금대)丘陵盡喬木(구릉진교목)
昭王安在哉(소왕안재재)覇圖悵已矣(패도창이의)驅馬復歸來(구마복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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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薊丘(계구) 남쪽 碣石宮(갈석궁) 옛터에 올라
아득히 黃金臺(황금대)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며 서 있네.
丘陵(구능)에는 교목만이 가득 서 있으며 다른 것은 없고
저 유명한 燕(연)의 昭王(소왕)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가 기획한 국가재건의 사업은 터도 망도 없어졌네
나는 말을 달려서 갔던 길을 되돌아 왔네.
【註】
陳子昻(진자앙:660~702)... 則天武后(즉천무후)의 神功(신공) 원년(697), 그는 전국시대의 燕 (연)의 古都(고도)를 찾아갔다. 그 유적을 구경하고 다녔으나 城(성)과 연못 등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薊丘(계구)에 올라 옛날을 그리며 시를 일곱 수 지어 長安(장안) 終南山(종남산)에 있는 盧藏用(노장용)에게 보냈다. 이 시는 구 두 번째 시다.
薊丘(계구)....... 지명. 지금의 北京(북경) 德勝門(덕승문) 서북에 해당하는 곳. 唐代(당대)에 는 幽州(유주) 氾陽郡(범양군) 薊縣(계현)에 속했다고 한다.
覽古(람고)...... 懷古(회고)와 같음. 舊蹟(구적)을 보고 옛날을 생각한다라는 뜻.
碣石館(갈석관)... 幽州(유주) 薊縣(계현) 서쪽 30리에 碣石山(갈석산)이 있는데, 거기에 燕 (연)의 昭王(소왕)이 碣石宮(갈석궁)을 지어 鄒衍(추연)이라는 학자를 살게 하고, 스스로 제자의 예를 취하며, 그에게 배웠다. 碣(갈)石宮(석궁)을 碣石 館(갈석관)이라 썼는데, 물론 건물이 남아 있지 않다. 그 건물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곳에 올라 간 것임.
黃金臺(황금대)... 碣石(갈석) 서남에 있다. 昭王(소왕)이 千金(천금)을 臺上(대상)에 두고, 천 하의 賢士(현사)를 초청했다. 고로 후세 사람이 이를 黃金臺(황금대)라고 한 다. 일명 招賢臺(초현대)라고도 한다.
喬木(교목)....... 키가 큰 나무.
昭王(소왕)....... 전국시대의 한 名君(명군). 燕(연)이 齋(재)의 공격으로 國勢(국세)가 심히 쇠퇴했을 때 즉위해서, 천하의 賢士(현사)를 초청해서 富國强兵(부국강병)책 으로 부흥을 기도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齋(재)를 격파하고 천하의 覇權(패 권)을 잡게 되었다.
安(안)............ 어디에.
覇圖(패도)...... 覇者(패자)가 되는 策略(책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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