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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唐詩(당시) 下山歌(하산가) 宋之問(송지문)

청남

 

唐詩(당시) 下山歌(하산가) 宋之問(송지문)

 

 

下嵩山兮多所思(하숭산혜다소사) 携佳人兮步遲遲(휴가인혜보지지)

松間明月長如此(송간명월장여차) 君再遊兮復何時(군재유혜복하시)

 

嵩山(숭산)을 내려오는데 온갖 생각 떠오르며

친구와 함께 하니 발걸음 늦어지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달은 언제까지나 이러할 턴데

그대와 손잡고 다시 여기서 노는 것은 그 어느 때일까.

下山歌(하산가)... 친구와 嵩山(숭산)에 놀다가 그 산을 내려오는 도중에서 지은 시.

嵩山(숭산)........ 洛陽(낙양) 동쪽에 있는 산.

()............ 동반하다. 함께하다.

佳人(가인)....... 미녀를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여기서는 良友(양우)를 말 한다.

遲遲(지지)....... 천천히

 

佳人(가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王無競(왕무경)이 아닌가 추측한다. 그의 시에 宋之問(송지문) 下山歌(하산가)和答(화답)이라는 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이 시만으로 그가 송지문과 동했다고는 단정 할 수 없다.

和宋之問下山歌(화송지문하산가) 王無競(왕무경)

日云暮兮下嵩山(일운모혜하숭산) 路連綿兮樹石間(노연면혜수석간)

出谷口兮見明月(출곡구혜견명월) 心徘徊兮不能還(심배회혜불능환)

 

 

逐臣北地承嚴譴(축신북지승엄견) 調到南中每相見(조도남중매상견)

豈意南中岐路多(개의남중기로다) 千山萬水分鄕縣(천산만수분향현)

雲搖雨散各飜飛(운요우산각번비) 海闊天長音信稀(해활천장음신희)

處處山川同瘴癘(처처산천동장려) 自憐能得幾人歸(자련능득기인귀)

 

추방된 신하는 북쪽 땅에서 엄한 꾸지람을 받았도다.

친한 친구 모두 함께 영남으로 유배되니 서로 얼굴이나 볼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뜻밖에도 嶺南(영남)은 넓어서 갈림길이 너무나 많고

수 천의 산 수만의 강이 각자 가는 곳을 갈라놓고 있지않나.

우리들은 구름이 흩어지고 비가 뿌리듯이 사방으로 날려가 버렸다네

바다는 넓고 하늘은 멀어 서로 소식도 끊어지고

가는 곳 산천은 모두 풍토병이 있는 곳이니

스스로 가여운 이 신세 몇사람이나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리.

則天武后(칙천무후: 625705)... 중국 ()나라 제3대 왕 高宗(고종)의 황후. 성은 (), 본명은 조. 중국의 유일한 女帝(여제)로서, 15(690705)동안 전국을 지배하였다. 빼어난 미모로 14살 때 제 2太宗(태종)의 후궁이 되었고, 태종이 죽자 비구니가 되었다가 다시 고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다. 후 간계를 써서 황후를 쫓아내고 스스로 황후가 되어 황태자 () 폐위시켰다. 683년 고종의 건강을 핑계삼 아 스스로 정무를 관장, 독재권력을 휘두르며 天后(천후)라 칭하였다. 고종이 죽자 자신 의 아들 중종(中宗)예종(睿宗)을 차례로 즉위시키고 황족을 탄압하였으며, 690 혁명을 단행하여 국호를 ()로 고치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천하의 여걸도 나이는 할 수 없어 長安(장안) 5(705) 노병으로 자리에 눕자, 천하의 인망을 얻어 취임한 老宰相(노재상) 張柬之(장간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지와 규합해서, 羽林軍(우림군)을 동원 궁중에 진입해서, 당시 武后(무후)의 총애를 받고 횡포를 부리며 썩은 정치를 일삼던 張易之(장역지) 張宗昌(장종창) 형제를 죽이는 혁명을 성공했다. 그리하여 中宗(중종)이 복위되고 武后(무후)上陽宮(상양궁)에 연금하고 國號(국호)()으로 돌리는 한 편 () 형제의 일당을 숙청하기에 이르렀다. 張易之(장역지)와 친교를 맺고 우러러보던 宋之問(송지문) 등의 文人(문인)들은 이때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杜五審言(두오심언: 645708)... 송지문과 함께 奉州(봉주)로 추방된 文人(문인).

沈三佺期(심삼전기: 650714)... 송지문과 함께 驩州(환주)로 추방된 文人(문인)

閻五朝隱(염오조은: ?712)... 자를 友情(우정)이라하며 趙州(조주) 사람. 진사과를 제하고 孝弟廉讓科(효제렴양과)등에 합격했다. 則天武后(즉천무후)의 신임을 받고, 給事中(급사중)에 오르 고 뒤에 麟臺少監(인대소감)이 되었다. 張易之(장역지)과 연유되었다고 추방 당했다. 그러다가 景龍(경룡) 초 다시 소환되어 著作郞(저작랑)이 되었다가 秘書少監(비서소감)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뒤 죽었다.

王二無競(왕이무경: 652705)... 자는 仲烈(중열), 東萊(동래) 사람. 대대로 재산이 많았으며 타고난 성품이 호탕하였다. 급제후 監察御使(감찰어사)를 역임했고 神龍( ) 초 남을 비방했다하여 蘇州(소주) 司馬(사마)로 좌천되었으나 잠시 뒤 張易之(장역지)와 친교가 있었다하여 廣州(광주)로 추방되었다. 그와 원수진 사람이 나라의 명령이라고 거짓 속여 그를 죽었다.

逐臣(축신)..... 추방된 신하.

北地(북지)..... 북쪽에 있는 장안을 이름.

嚴譴(엄견)..... 엄한 문책.

南中(남중)...... 嶺南(영남). 당나라 때 영남이란 지금의 雲南(운남), 廣東(광동) 廣西(광서), 印度支那(인도지나) 등을 말 했다.

岐路(기로)..... 갈림 길.

鄕縣(향현)...... ()보다 작은 행정구역.

雲搖雨散(운요우산)... 구름과 같이 얾겨가고, 비와 같이 흩어져 가다.

瘴癘(장려)...... 남방의 고열다습 속에 독기가 숨어 있다고 믿었다. 풍토병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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