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수도(雪山修道)
사랑하는 아내와 왕궁을 뒤로 하고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선 싯다르타는 더 이상 태자의 몸이 아니었다. 그는 “반드시 큰 깨달음을 얻으리라.”고 스스로 맹세하고 숲속으로 갔다.
알맞은 곳을 찾은 그는 좌선을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날이 어두워지면 사납고 날카로운 맹수의 울부짖음이 소름끼치게 하였고, 사늘하고 습기 찬 밤공기가 찢어진 옷을 헤집고 스며들었다.
싯다르타는 스승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서 진리를 구하기보다 수행의 힘이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에 박가바 선인을 찾아갔다. 그 선인의 제자들은 모두가 고행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무렵 인도에서는 많은 수행자들이 온갖 고행을 힘써 실천하는 것을 수도 방법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야만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난다고 믿었다. 싯다르타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 같은 고행을 합니까?”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서지요.”
“즐거움을 얻기 위해 괴로움을 참는다니, 천상의 즐거움이 다하고 나면 다시 인간 세계에 내려와서 고통을 겪어야 할 텐데...”
싯다르타는 마음에 회의가 생겨 그를 떠나고 말았다.
싯다르타는 오래 전부터 알라라칼라마 선인에 대한 높은 평판을 들어 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처소로 찾아갔다. 그는 괴로운 세계에서 해탈하려면 선정(禪定)을 통하여 무념무상(無念無想)에 이르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싯다르티는 알라라칼라마와 함께 선정을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법(法) 역시 바른 깨달음과 열반을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고 여겨 그곳을 떠났다.
싯다프타는 다시 왕사성 교외에 사는 웃다카라마풋타 선인을 찾아갔다. 이곳에서도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스스로 깨달아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깨달음과 해탈의 길과는 거리가 있음을 느끼고서, 결국 최고의 진리는 스스로 깨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였다.
그러하여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스스로 수도하기에 알맞은 곳을 찾아 나섰다. 고행자 싯다르타는 가야산의 중턱에 이르러 큰 나무 아래에 풀을 깔고 앉았다. 그러고는 이재 껏 아무도 해본 일이 없는 모진 고행을 시작하였다.
처음 얼마 동안은 하루에 한 끼씩 먹었으나 차츰 끼니 수를 줄여가 이틀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레에 한 끼, 마침내는 보름에 한 끼를 먹었다. 야윌 대로 야윈 그의 옴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뱃가죽에 손을 대면 등뼈가 만져졌다. 깊숙이 꺼진 눈두덩이 속에서 오직 두 눈만이 광채릎 내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6년에 걸쳐 이러한 극심한 고행을 행하였다. 이것으로 자신의 무한한 정신력은 믿게 되었으니 바라는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혹독한 고행으로도 최상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섯다르타는 고행에서 떠나 새 출발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곧, 육체를 괴롭히는 것으로 방법을 삼을 것이 아니라 육체의 힘을 잘 이용해야 하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함께 고행을 하던 다른 수행지들은 섯다르타가 타락하여 고행의 길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먼저 쇠약해진 몸의 건강부터 되찾아야 한다는 판단이 섰기에 싯다르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니란자라 강으로 가서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 수자타라는 소녀가 주는 우유죽을 받아먹고 기운을 회복하였다.
이때에 그는 “이 우유죽을 먹으면 반드시 힘이 생겨 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뒤에 좌선하기에 알맞은 곳을 찾아 나섰다. 그의 가슴은 확신과 희망으로 가득찼다.
보리수나무 아래에 가니 풀을 베던 소년이 나무 아래에다 풀을 한 아름 깔아 주었다. 섯다르티는 동쪽 하늘을 향하여 단정히 가부좌하고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맹세하였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없어져도 좋다.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딜음에 이르기 까지는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
그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깊고 고요한 명상에 들어갔다. 칠일째 되는 날 새벽, 동쪽 하늘에 셋별이 반짝이는 순간, 섯다르타의 가슴에 오랜 어둠이 걷히고 밝음이 찾아왔다. 싯다르타의 성도(成道) 그것은 바로 인류의 새벽이었다. (출전: 해인사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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