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3권 (중국편)
(16) 북종(北)의 신수선사(神秀禪師)
신수스님은 제 32대 홍인대사의 제1세 법제이다.
스님은 개봉위씨(開封威氏)이다. 어릴때에 유업 (儒業)을 가까이 하여 널리 섭렵해서 아는 것이 많더니 조금 있다가 출가하여 스승을 찾고 도를 찾았다. 근주 쌍봉에 있는 동산사(東山寺)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를 만나 좌선으로 업을 삼다가 탄복하되
「참으로 나의 스승이다」하고 고행하기를 마음에 맹서하여 나무하기와 물 깃기를 자기의 임무로 알고 도를 구하였다. 홍인이 남몰래 그를 알고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말했다.
「내가 제도한 사람이 많으나 깨달음에 그를 미칠 이가 없다.」
홍인이 열반에 든 뒤에 신수가 강릉의 당양사(當陽寺)에 머물렀는데 당의 측천무후가 듣고 서울로 불러서 궁내의 도량에서 공양하고 더욱 공경
스런 예를 베풀었다. 그리고는 여산에 도문사(度門寺)를 두도록 명령하여 그의 공덕을 기리었다.
이때에 왕공사서(王公士庶)가 모두 그가 있는 곳을 향하여 배례하였고 중종(中宗)이 즉위하자 더욱 정중히 여겼다. 대신이 제자의 예로써 법요를 물으니 대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一切佛法 일체불법 自心本有 자심본유
將心外求 장심외구 捨父逃走 사부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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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모든 부처님 법은
자기 마음속에 본래 있는 것이네
그런데도 마음 밖에서 구하고자 한
아비를 버리고 도망가는 꼴이니라.
【注】
모든 사람은 모두 다 불성(佛性)을 갖고 있다. 마음속에 잠재하는 이 불성을 닦고 가꾸어나가는 것이 바로 수행의 참 길이다. 그르므로 진실로 도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서 깨달음을 구할 것이지, 외부에서 찾을 수는 없다. 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신룡 2년에 동도 천공사에서 열반에 드니 대통선사(大通禪師)라 시호를 내리고 우의(羽儀)를 갖추어 용문에 빈소를 차리게 하였는데 황제는 다리에까지 전송하였고 왕공사서는 모두 장지에까지 참석하였다.
장열과 징사(徵士)인 노홍일(盧鴻一)이 제각기 비에 제사하였고 문인인 보적 (普寂)과 의복(義福) 등은 모두가 조야(朝野)의 존경을 받았다.
출전: 불교통신대학 “경덕전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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