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3권 (중국편)
(26) 숭악(崇嶽) 원규선사(元珪禪師)
스님은 이궐(伊闕)사람이다. 성은 이(李)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여 당의 영순(永淳) 2년에 구족계를 받고 한거사(閑居寺)에서 계율을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중에 혜안국사(慧安國師)를 뵈이니 진종(眞宗)으로 써 보여 주니 현묘한 이치를 몽땅 깨닫고 숭악의 방도(龐塢)에다 터를 잡고 살았다. 하루는 이상한 사람이 峨冠官(職名)차림의 허리에 두르는 옷과 아래 두르는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뒤를 따른 이가 매우 많고 걸음을 점잖게 걸으면서 대사에게 문안을 드린다 하였다.
대사가 그의 외형을 보니 특이함이 예삿 사람이 아니므로 말하였다. 「어디서 무슨 일로 오셨소.」
스님께서 저를 어찌 아시겠습니까.」
「나는 부처와 중생을 동등하게 본다. 나는 한눈으로 보거늘 어찌 분별하겠는가.」
「나는 이 숭악산의 산신으로서 능히 사람들을 나고 죽게 하거늘 대사께서 어찌 동일하게 보십니까?」
「나는 본래 나지도 않았거늘 어찌 죽게 하겠는가. 나는 몸과 허공이 동등한 것으로 보고 나와 그대가 동등한 것으로 본다. 그대는 능히 허공과 그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아무리 허공을 무너뜨리고 그대 자신을 무너뜨린다 하여도 나는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그대는 이와 같이 하지도 못하고 어찌 나를 나고 죽게 하겠는가.」
산신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나도 다른 신보다는 총명하고 정직하다고 여겼는데 어찌 스님 같이 광대한 지혜와 변재를 가진 이가 있을 줄이야 알았겠읍니까. 바라건대 바른 계를 주시어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을 건느게 해 주십시오.」
「그대가 계를 달라는 것이 곧 계이다.」
「그런 이치는 제가 들어도 삭막할 뿐이니 오직 스님의 계를 구할 뿐입니다.」대사는 곧 그를 위해 자리를 펴고 향로를 잡고 책상을 반듯이 놓고 말했다. 「그대에게 5계를 주겠으니 잘 지키겠으면 「능히 지키겠소」하고 대답하라. 만일 지키지 못하겠으면 「못하겠소」하고 대답하라.」
「삼가 가르침을 받겠읍니다.」
「그대는 음행을 하지 않겠는가.」
「장가는 들어야겠읍니다.」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색욕을 부리지 않음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읍니다.」
「그대는 도적질을 않겠는가?」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도적질을 하겠읍니까?」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먹이면 복을 준다」하고 「공양치 않으면 재앙을
준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읍니다.」
「그대는 살생치 않겠는가?」
「실제로 그 권리를 잡고 있거늘 어찌 죽이지 않는다 하겠읍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 알고서 죽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읍니다.」
「그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는가?」
「나는 정직하거늘 어찌 거짓말을 하겠읍니까.」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앞과 뒤가 천심에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읍니다.」
「그대는 능히 술로 인한 낭패를 당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능히 지키겠읍니다.」
「위에서 말한 것이 부처님의 계이다. 또 있음의 마음으로 받들어 지녀도 구속 되는 마음이 없고 있음의 마음으로 남을 위해도 나와 남이란 생각이 없어야 하나니 능히 이와 같이 하면 천지보다 앞서 났어도 정령이 아니요. 천지보다 뒤에 죽어도 늙음이 아니다. 종일토록 변화하여도 요동이 아니고 끝끝내 적묵하여도 멈춤이 아니다.이 이치를 깨달으면 비록 장가를 들어도 아내가 아니요. 비록 음식을 받아도 취하는 것이 아니요. 비록 권리를 잡아도 권세가 아니요. 비록 작용함이 있어도 고의가 아니요 비록 취해도 혼몽함이 아니다. 만일 만물에 대하여 무심할 수 있다면 색욕을 부려도 음행이 아니요. 복을 주고 재앙을 주어도 도적질이 아니요. 착오와 의심으로 죽여도 살생이 아니요. 앞뒤가 천리에어기어도 거짓말이 아니요. 혼몽하여 뒤바뀌어도 취함이 아니다. 이것을 무심이라 한다. 무심이 되면 계가 없고 계가 없으면 또 무심이어서 부처도 중생도 너도 나도 없으니 너가 없으면 누가 계를 지키는가.」
「저의 신통이 부처님의 다음은 되리라 여깁니다.」
「그대의 신통은 열 귀절에서 다섯 가지는 능하지 못하고 부처님은 열 귀절에서 세 가지가 능하지 못하다.」
산신이 깜짝 놀라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물었다.
「그 사실을 알려 주십시오.」
「그대가 상제(上帝)를 거역하고 동쪽 하늘로 가면서 서쪽으로 일곱 가지 광채를 비치겠는가?
「못합니다.」
「그대가 지기(地祗)를 욱박지르고 5악을 뭉개고 4해를 동결시키겠는가?」「못합니다.」
「그것이 다섯 가지 능하지 못한 것이다. 부처님은 온갖 형상을 공하게 하여 만법의 지혜를 이루셨으나 결정된 업은 없애지 못하고, 부처님은 뭇 중생의 성품을 다 아시고 억만 겁의 일을 기억하시나 인연 없는 중생을 제도하지는 못하고 부처님은 한량없는 유정을 제도하시나 중생세계를 다하게 하지는 못하나니 이것이 세 가지 능하지 못함이다. 결정된 업은 견고한 것은 아니요, 인연이 없다함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요, 중생세계도 본래 증감이 없는 것이어서 어떤 한 사람이 유위의 법에 집착될만한 것이 없다. 유의의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을 무위의 법이라 하고 무위의 법을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을 무심이라 한다. 내가 부처님의 말씀을 알기에는 신통이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무심으로써 온갖 법을 통달했을 뿐이다.」
「저는 진실로 어리석어서 <공>의 이치를 들은 적이 없었아오나 이제 대사께서 주신 계를 잘 받들어 행하겠읍니다. 이제 인자하신 덕화에 보답하기 위하여 저의 능력을 다하겠읍니다.」
「내가 몸을 관찰하건대 물질이 아니고 법을 관찰하건대 무상하다고 여기거늘공연히 다시 무슨 욕망이 있겠는가.」
「대사께서 꼭 저에게 세간 일을 하도록 분부해 주시면 저의 조그만한 신통을 부려서 세간의 발심한 이와 처음으로 발심한 이와 아직 발심치 않은 이와 신심이 없는 이와 신심이 굳은 이들이 다섯 무리가 저의 신통의 자취를 보고는 부처와 귀신의 능함과 능하지 못함과 자연과 자연이 아님을 두루 알게 하겠읍니다.」
「그러지 말라. 그러지 말라.」
「부처님께서도 신장에게 불법을 옹호하게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십니까. 바라건대 잘 가르쳐 주십시오.」
동암사(東岩寺) 둘레에는 나무가 없고 북수(北)에는 숲이 있지만 의지가 되지 않는다. 그대가 북수의 그 나무를 옮겨다 동암에 심어 주겠는가.」
그리고는 곧 절을 하고 물러갔다. 대사가 문까지 전송하고서 보니 그 위의의 성대함이 왕과도 같았다. 바람 안개 연기 노을이 어지러이 뒤섞기고 당기와 번기와 고리와 패물이 하늘을 찌를듯이 넘실거렸다. 그날 밤에 과연 폭풍이 우짖고 구름과 번개가 설치고 집이 흔들리고 자는 새들이 놀라서 울었다. 대사가 대중에 일렀다.
「놀라지 말라. 산신이 나에게 약속한 일이 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북수의 솔밭이 몽땅 동암 곁으로 옮겨졌는데 첩첩이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나 죽은 뒤에라도 행여 입 밖에 내지 말라. 만일 말을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나를 요망하다 하리라.」
개원 4년 병진에 문인들에게 유언을 했다.
「내가 처음엔 절 동쪽의 마루턱에 살았는데 내가 죽거든 거기에다 뼈를 묻어라.」
이 말을 마치고는 태연히 몸을 바꾸니 수명은 73세였고 문인들이 탑을 세웠다.
출전: 불교통신대학 “경덕전등록”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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