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彌(사미)와의 약속
梵日國師(범일국사)가 한때 당나라에 들어가 明州(명주) 開國寺(개국사)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때 왼쪽 귀가 없는 한 沙彌(사미)가 범일국사에게 말하기를
「나도 국사님과 한 고향 사람입니다. 집은 溟州(명주, 지금의 강릉) 翼嶺縣(익령현) 德耆坊(덕기방)입니다.
스님께서 고국에 돌아가시거든 부디 우리 집을 지어 주십시오.」라고 한다.
국사는 사미의 말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사방을 유람하다가 鹽官禪師(염관선사)에게 법을 배운 다음 고국으로 돌아와서 崛山寺(굴산사)를 창건하고 포교에 힘쓰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에, 전에 만났던 사미가 창 앞에 나타나서
「국사님! 명주 개국사에 계실 때에 스님께서 우리 집을 지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집을 짓는 일이 어찌 이렇게도 늦습니까?」하는 것이었다.
범일국사는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는 곧 사람을 수십명 데리고 「익령현」으로 가서 사방으로 수소문해서 「덕기방」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길이 막연했다.
그러나 계속 수소문 해서 洛山(낙산)밑 한 촌락에 어떤 여인이 있는데 이름이 「덕기」요,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재 겨우 나이가 8살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늘 동리 앞 녹다리 밑에 가서 놀면서
「나 하고 같이 노는 아이는 “금색동자”래요.」라고 한다는 말을 국사는 전해 들었다.
국사는 곧 그리로 가서, 그 아이를 대리고 다리 밑으로 가 보았더니 돌부처가 한 분 있었다.
그래서 그 돌 부처님을 잘 살펴보았더니 왼쪽 귀가 없고 그 얼굴 모양이 전에 보던 沙彌(사미)와 같았다고 한다.
그 沙彌(사미)가 바로 正趣菩薩(정취보살)이 였다.
국사는 그 곳에 즉시 암자를 지어서 돌부처님를 잘 모셨다. (삼국유사)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