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雪居士(부설거사)
浮雪居士(부설거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난 사람이며 성은 陣(진)씨, 이름은 光世(광세) 였다.
어려서 출가하여 경주 불국사에서 圓淨(원정)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靈照(영조)·靈熙(영희) 등과 함께 智異山(지리산)· 天冠山(천관산)· 愣伽山(능가산) 등지에 수년 동안 수도하다가 文殊道場(문수도량)을 순례하기 위하여 오대산으로 가던 중,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들이 있는 杜陵(두릉)의 仇無寃(구무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그 집에 있는 18세의 딸 妙花(묘화)는 나면서부터 벙어리였으나 부설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열렸으며, 그때부터 묘화는 부설을 사모하게 되어 함께 살자고 하였다.
부설은 승려의 신분으로서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자 묘화는 자살을 기도하였다.
그러자 부설은 「모든 보살의 자비는 중생을 인연 따라 제도하는 것이로다.」하며 묘화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그후 15년을 살면서 아들 登雲(등운)과 딸 月明(월명)을 낳아 부인에게 맡기고 별당을 지어 수도에만 전념하였다.
그 뒤 수년이 지난 다음 영희와 영조가 부설을 찾아왔을 때 세 사람은 서로의 조력을 시험하였다.
질그릇 병 세개에 물을 가득 채워서 줄에 매달아두고 병을 쳐서 깨트려도 물이 흘러내리는지 아닌지로 도력을 간음하기로 하였다.
영희도 영조도 병을 치자 병이 깨지며 물이 흘러내렸지만 부설이 그 병을 치자 병은 깨어졌으나 물은 공중에 매달려 있었으며 흘러내리지 않았다.
부설은 거사로서 열심히 수행하여, 수행공덕이 스님을 능가했던 것이다.
부설은 참된 법신에 생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는 설법을 한뒤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영희와 영조가 茶毘(다비)하여 사리를 妙寂峰(묘적봉) 남쪽에 안치하였다.
그때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은 출가 수도하여 도를 깨우쳤으며, 부인 묘화는 110세까지 살다가 죽기 전에 집을 보시하여 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은 부설거사가 도력을 시험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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