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존자의 듯도
부처님께서 차츰 나이가 많아지시자, 곁에 있으면서 시중을 들어줄 사뱀 필요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연세가 쉰다섯이 되던 해에 아난존자가 그 시자로 선정되었다.
사려 깊은 아난 존자는 자신의 책임이 막중함을 느끼고, 먼저 부처님께 세 가지 조건을 말씀드리고서야 시자의 소임을 맡아 수행하였다. 그 세 가진 조건은 첫째가 부처님의 옷과 음식을 절대로 받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부처님께서 신도들에게 초청받아 가실 때에는 수행하지 않는 것이며, 마지막 셋째는 언제든지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면서 모든 설볍을 하나도빠짐 없이 듣고 또 그전에 한 설법도다시 청하여 들을 수 있는것 들이었다.
아난 존자는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시자가 되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까지 이십오 년 동안 정성을 다하여 모시면서 모든 설법을 빠짐없이 듣고 기억하니, 사람들이 그를 십대 제자 기운데 다문제일(多聞第一)이 라고 일컬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교단을 이끌어가게 된 제자들은 교법과 계율을 하나로 모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가섭 존자를 비롯하여 사백 구십구 명의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 비구들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아난 존자는 선출되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비구들이 말하였다.
“아난은 부처님을 오랫동안 모신 사람으로, 늘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며 설법을 빠짐없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의심스러운 점은 부처님께 여쭈어 보았을 터이니, 아난을 결집회의에 넣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하지만 가섭 존자가 이를 반대하여 말하였다.
“안 됩니다. 아난은 비록 많이 듣기는 하였으나 도를 깨우치지 못하여 아직도 애욕에 빠지고 화를 쉬이 내는 등의 번뇌가 남아 있기에 곤란합니다.”
아난은 이 말을 듣고 비탄에 잠겼으나 그에 꺾이지 않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다.
아난은 벼랑 끝으로 나아 가 서서 양 발꿈치를 들고 합장한 채로 정진하며 ‘도를 깨우치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떨어져 죽고말리라’ 고 다짐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난은 한주일째 되는 날 드디어 아라한의 도를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제1차 경전편찬회의 결집(結集)에서 우파리 존자가 계율을 외고, 아난 존자는 교법을 외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오백 명의 비구들을 이끌고 이 결집회의를 주재한 가섭 존자가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최초의 설법은 어디에서 있었는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언젠가 부처님께서는 베나레스의 옛수행자들이 살던 곳에 계시었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설법 내용뿐 아니라 그 분위기까지 그대로 재현해 내었다. 그같은 아난존자의 송출에 그곳에 함께 모언 제자들은 부처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다시 눈앞에 보는 듯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불경이 이루어졌으며, 경전마다 첫머리는 아난 존자가 설법을 외던 형식대로“이와 같이 나는틀 었다(如是我聞) ”로 시작한다. 부처님의 설법을 경전으로 만들어 후세에 전하는 일에서 아난존자는 이렇듯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출전: 해인사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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