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창건 유래
중국 양무제 때 지공화상께서 임종에 동국답산기라는 책을 제자들에게 건네주면서 「내가 죽은 얼마 후에 신라에서 두 명승이 찾아와 을 구할 터이니 이 책을 전하라」 유언하시고 열반하셨다.
그 뒤에 과연 신라에서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와서 법을 구하거늘 지공화상의 제자들이 반기며 스승의 유언을 말씀드리고 동국답산기를 전했다.
두 스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지공화상의 탑묘(塔墓)에 찾아가 「사람에게는 고금(古今)이 있을지언정 진리에서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 하는 가르침을 생각하며 일주일을 밤낮으로 기도하며 법문을 청하였더니 탑 속에서 지공화상이 모습을 나타내어 두 스님의 구도심을 찬탄하고 의발(衣鉢)을 전해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나라 우두산(지금의 가야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그곳에 대가람을 창건하라」 하시고는 다시 탑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응, 이정 두 스님은 탑묘를 향하여 다시 한번 예배드리고 고국 신라로 돌아왔다.
중국에 가서 구법의 길을 마치고 고국 신라에 돌아온 두 스님은 바로 우두산을 찾아 나섰다.
맑은 물이 흐르고 산세가 빼어난 곳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를 깔고 풀밭에 앉아 선정(禪定)에 들었더니 문득 이마에서 광명이 발하여 하늘로 뻗쳐 올랐다.
그때 마침 나라에서는 제40대 애장왕의 왕후께서 몹쓸 명을 얻어 백방으로 약을 써봐도 효험이 없자 신하들을 널리 보내어 도승(道借)을 구하게 되었다.
한 신하가 우두산 근처를 지나다가 하늘에 뻗쳐 오르는 신령한 빛을 찾아 숲길을 헤쳐가니 선정삼매 속에서 방광(放光)하는 두 스님을 뵙고 예를 올린 후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내력을 이야기하자 오색실을 내어주면서 실의 한 끝은 궁전 뜰 앞의 배나무 가지에 매고 한 끝은 병실의 문고리에 매어두라고 일러주었다.
신하가 돌아가서 왕에게 사실을 말하고서 두 스님이 시키는 대로 시행해 보았다. 그랬더니 궁전 뜰 앞의 배나무가 말라 죽으면서 왕후의 오랜 병이 완쾌되고 소생하였다.
애장왕과 왕후 그리고 여러 신하들이 크게 기뻐하고 또한 놀라와 하였다.
-출전: 해인사 벽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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