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巖禪師(지암선사)
중국 道信(도신)의 제2세 법제자.
스님은 아곡(阿曲) 사람이며, 성은 화(華)씨였다. 지혜와 용맹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고 키가 일곱 자 여섯 치나 되었다.
隋(수)의 대업 때에 낭장(郎將)이 되어서 항상 활 끝에다 물 거르는 주머니를 하나를 달고 다니며 물을 떠먹었고 자주 자주 대장을 따라 토벌을 나가서 공을 세 웠다.
唐(당) 무덕 때에 나이 40세가 되어 마침내는 출가를 원하여 舒州(서주) 皖共山(환공산)에 들어가니 寶月(보월)선사 밑에서 공부를 해서 득도시하였다.
그 뒤 어떤 날 좌선을 하는데 키가 열자가 넘는 이상한 스님이 보였는데 모습이 헌출 하고 말소리가 깔끔하였다. 그가 대사께 말하기를
「그대는 10생 80에 중이 되었으니 부지런히 정진하라.」
말을 마치자 이내 사라졌다.
일찍이 산골에서 선정에 들었는데 갑자기 산골 물이 넘쳤으나 대사가 태연히 요동치 않으니 물이 저절로 물러갔다. 이때에 어떤 사냥꾼이 지나다가 이를 보고 허물을 고쳐 착한 일을 하였다.
또 옛날에 같이 군사에 종사하던 두 친구가 있었는데 대사가 숨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산으로 찾아 들어와서 말했다.
「郎將(낭장)은 미쳤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광증을 쉬려 하는데 그대들은 광증이 바야흐로 일어난다. 대저 색을 좋아하고 소리를 탐하고 영화를 탐하고 은총을 바라는 것은 생사에 헤매일 뿐이니 어찌 생사를 벗어나리요.」
두 사람은 깊이 감동하고 탄식하고 물러갔다.
대사는 貞觀(정관) 17년에 建業(건업)으로 돌아가 牛頭山(우두산)에 들어가 우두 법융선사를 뵙고 큰 일을 밝혔다.
선사가 대사에게 말했다.
「내가 도신대사(道信大師)의 참 비결을 받아 얻은 바가 모두 없어졌다. 설사 어떤 법이 열반보다 殊勝(수승)한 것이 있다고 하여도 나는 꿈과 요술이라 말하노라. 대저 한 티끌이 날아와 허공을 가리고 한 겨자씨가 떨어져서 땅을 덮는다 하더라도 그대는 지금 이런 소견을 초과했으니 내가 더 무엇을 하랴 山門(산문)을 인도 할 일을 그대에게 맡긴다.」
대사는 분부를 받고 우두산문 제2세가 되었다.
뒤에 그는 다시 정법을 慧方禪師(혜방선사)에게 전하고 백마사(白馬寺)와 棲玄寺(서현사)에 머물렀는데 다시 석두성(石頭城)으로 옮겨서 살다가 의봉(儀鳳) 2년 정월 10일에 입멸하였다.
그런데 얼굴빛이 변하지 않고 몸매의 굴신(屈伸)함이 살았을 때 같고 방안에 이상한 향기가 가득하여 열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유언에 따라 수장(水葬)을 지내니, 세상 수명은 78세, 법랍은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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