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출산 위봉사 부처님
보 물: 제608호(보광전)
소재지: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일
교통편: 전주에서 진안쪽으로 약 12가면 소양면 소재지에 이른다.
거기서 500m 쭘 더 가다가 북쪽 대흥리 골짝으로 간다.
(송광사에서 약 5km 더 간다.)
전주 팔경의 하나인 위봉폭포와 천혜요새 위봉산성을 안고 있는 주출산 남쪽에 잘리잡은 이 절은 신라 진평왕 26년(604년)때 창건된 유서깊은 신라 고찰이다.
신라말기에 崔龍角(최룡각)이라는 사람이 이곳을 우연히 지나다가 세 마리의 봉황새가 절터를 에워싸고 싸움을 함으로, 절 이름을 한때 圍鳳寺(위봉사)라고 한적도 있었다.
이 절 나한전의 나한님들은 신통력과 영험이 커서 나한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분비고 있다.
1) 쌀과 소금을 보내 주신 부처님
옛날 나옹화상이 이 절을 중창하였을 때만해도, 1000여명의 스님이 수행하였고 28채의 화려한 당우와 10동의 암자를 거느린 대 가람이었다.
그러나 무상한 세월이 흘러, 사세는 급격히 퇴락 되고 절의 토지에서 나는 수입으로는 행사를 계속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명 남지 않았는 스님들의 식량도 모자랐다.
당시 주지로 있던 노스님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아미타불 앞에 꿇어앉아 「소승의 힘으로는 더 이상 절을 유지할 수 없음으로 절을 떠나려고 하직 이사를 하나이다.」하였다.
그날 밤 어럼푸시 졸다가 꿈을 꾸니 법당의 부처님이 말하기를「법사는 아직 여기 있거라. 내가 사람을 시켜 권선을 해서 공들일 비용을 나오게 하리라.」
주지 스님은 꿈이 너무나도 이상해서 절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후 13일만에 웬 사람이 둘이서 말과 소에 무엇을 싣고 문 앞에 이르렀다.
절에 있는 스님들이 나가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우리는 전주 사는 사람인데 일전에 위봉사에 계신다는 스님이 어떤 보살 <권선해주신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님과 함께 와서, 절의 사정이 군색하여 권선을 왔노라고 하시기에, 이웃 사람들과 함께 시주를 거두어 백미 6섬과 소금 4섬을 모아 가지고 왔습니다.」 라고 하였다.
스님은 절 안서는 아무도 나간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니올시다. 그분들은 우리를 대리고 여기까지 함께 같이 와서 저 위봉산성 앞에 이르자, 「절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우리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하며 이리로 미리 왔다고 하였다.
주지 스님은 그들을 법당에 데려가서 참배를 하게 하였더니, 부처님을 쳐다본 그들은 까짝 놀라며 「저 부처님 얼굴이 바로 그 스님 상이고, 부처님 뒤에 그려진 관세음보살 상이 바로 그 보살님의 얼굴과 꼭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놀라움과 두러움을 금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로부터, 절을 도우라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뜻에 따라 매년 쌀과 소금을 절에 바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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