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 비로자나불
국 보: 제 호
소재지: 경북 열일군 송라면 애연산에 있는 고찰
교통편: 포항에서 동해고속도로를 따라 북으로 18km를 가다가 청하, 송라로 가는 구도를 따라 14km를 간다.
경북 8경의 하나인 내연산의 계곡을 옆에 끼고 있는 이 고찰은 사시사철 인산인해를 이루는 관광 명소이다.
그러나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시끄러운 세속의 잡다한 분위기와는 전연 달리 고찰이 품기는 높은 기품에 숙연해진다.
신라 진평왕 11년(589)에 日照禪師(일조선사)가 八面寶鏡(팔면보경)을 땅에 묻고 그 위에 지였다는 寂光殿(적광전)에는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부처님이 미소짓고 계신다.
1) 김 여인의 정절을 지켜 주신 비로자나부처님
부산 서면에 사는 57세 된 김□숙 여인은 24 때에 3살 위인 남편과 결혼을 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경하던 그들은 열심히 일을 했으나 노력하는 것만큼 돈이 잘 벌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늘 가난하게 살았고 항상 돈에 쪼들렸다.
어느 날 남편은 젊은 아내에게, 일본에 가서 돈을 벌어 올 태니 3년간만 집 잘 지키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온다는 이야기가 파다하였고, 기회만 있으면 일본으 <비로자나부처님> 로 밀항을 하려 했던 때였다.
말리다가 지쳐서 눈물로 배웅하는 아내를 남겨 두고 떠나가 버린 남편은, 약속한 3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고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과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았던 때라 남편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어린 딸 하나를 대리고 외롭게 사는 김 여인에게는 무척 힘들고 고달픈 생활이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남편과 함께 가본 적이 있었던 보경사를 찾아가서, 비로자나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다.
혼자 사는 젊은 여인에게는 언제나 유혹이 따른다.
김 여인의 처지를 잘 아는 여러 남자들이, 「밀항선을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듣하니, 당신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것입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나와 함께 살면 내가 행복을 보장하겠습니다.」하고 온갖 듣기 좋은 말로 유혹을 했다.
너무 외롭고 또한 살기 힘들어서 가끔은 팔자를 고쳐 볼까........ 생각할 때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럴 때면 문득, 잘 생긴 보경사 비로자나부처님 생각이 났다.
너무나 잘나고 늠름한 부처님 모습이 떠오르면, 「세상에 저 부처님만큼 잘나고 인자한 남자가 있으면 마음을 허락해도 좋지.... 그러나 내 남편 빼고는 어디 저 부처님만큼 잘난 남자가 이었어야지.........」 하고 번번이 마음을 주저 안쳤다.
때로는 극성스러운 남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몸을 맡겨 버릴까...라고 생각하는 날이면, 의래 부처님이 나타나서 말없이 미소지으며 김 여인의 마음을 꽤뚤어 보듯 손을 뻗쳐 집게손가락으 <살아 숨쉬는듯한 비로자나 부처님> 로 손가락질한다.
이와 같은 갈등을 겪으면서 어언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일본에 가서 좋은 사름을 만나 인쇄 기술을 배우고, 인쇄 기계까지 사가 지고 돌아왔다.
김□숙 여인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부산에서 작은 공장은 차린 그들은 그 뒤 많은 돈을 벌어서 지금은 큰 부자가 되어 잘 살고 있는데, 김□숙 여인은 그때 만일 보경사 부처님이 아니 였다면 오늘의 행복이 없었다고 말하며, 지금도 보경사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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