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사 석가모니불
소재지: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200
교통편: 청송에서 국립공원 주왕산을 찾아가면, 공원 매표소
바로 옆에 있음.
대전사 석가모니불
자그마한 키에 허리를 약간 굽힌 자세로 앉아 계시는 이 부처님은 눈을 많이 뜨고 게시는 것이 특색이다.
눈을 많이 뜨셨으니 보시는 것도 많으실 거고, 따라서 중생의 아픔도 많이 보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확실한 조성 연대는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중기 소실된 절을 중건할 때 조성된 부처님이라고 생각된다.
1)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신 부처님
청송에 사는 심□□씨 집안은 대대로 대전사에 다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일제 말엽, 심씨가 일본 사람들에게 징용되어 보국대로 꿀려가게되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일념으로 더욱 대전사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한편 심씨는 일본 사람들에게 잡혀간 뒤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허름한 상선에 실려 부산항을 출발, 당시 일본군의 최전선인 남양 전선으로 항해하게 되었다.
때는 태평양전쟁 말엽이라, 패색이 짙은 일본군에게는 제공권과 제해권이 완전히 없었다.
그래서 그 배는 연합군의 공격에 전연 무방비 상태였으므로, 연합군의 비행기를 피해서 밤에 몰래 항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레이더」를 사용하던 연합군의 예리한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배가 태평양 서쪽에 다다랐을 때 염려했던 연합군의 심한 공습을 받고,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어져 그만 배가 기울더니 서서히 침몰하게 되었다.
심씨는 다른 많은 동료들과 함께 배가 폭발할 때 충격으로 바대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평소 수영을 잘 못하는 심씨는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그저 일없이 허우적거렸다.
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다만 고향의 어
머니와, 대전사의 부처님뿐이었다.
심씨는 마음속으로 「부처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하고 간곡히 빌었다.
파도는 높고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운데 팔에 힘은 점점 빠져 몸이 물 속에 자꾸만 가라앉으려했다.
「부처님 살려 주세요. 대전사 부처님 저를 살려 주세요. .............」하고 그의 절규는 더욱 간절했다.
바로 그때 였다.
웬일인지 물 속으로 가라 안든 심씨의 몸이 물위로 북 뜨는 것이었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캄캄한 밤 태평양 한 가운데서 생각지도 않는, 커다란 널빤지 하나가 심씨 배 밑에 철썩 달라붙어 심씨의 몸을 물위에 뜨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심는 널빤지를 꼭 잡고 「부처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하고 한없이 기도를 하였다.
날이 밝자 주변을 지나던 필리핀 어부들에게 발견되어 꼭 죽을 목숨이 다시 살아났다.
심씨는 그때부터 필리핀에서 숨어살다가, 그해 가을 해방이 되어 고향에 무사히 돌아왔다.
지금은 80을 바라보는 적지 않는 나이지만, 이렇게 사라 있는 것이 모두 대전사 부처님 덕이라고 말하며, 대전사 부처님께 더욱 감사하며 살고 있다.
(대전사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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