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버려진 형제
오랜 아승지겁 옛날에 남인도 「마열바질」 나라에 長那(장나)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는 「마나사라」라는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사이좋게 잘 살았는데, 나이가 많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항상 천신에게 기도하며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랬더니 감응이 있어서 「마니사라」 부인은 다행스럽게도 곧 잉태해서 달과 같고 옥과 같은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뒤 3년만에 또 아들 하나를 낳았다.
장자는 너무나 기뻐서 곧 바라문 관상가를 불어 아들의 장래를 감정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관상가는 두 아들의 관상을 살펴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두 아이는 용모도 단정하고 여러 가지 묘한 실상을 갖추었으나 부모와의 인연이 박해서 나이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게 될 운명입니다.」
장자는 조금 슬펐으나 그들을 더욱 사랑하고, 형을 早離(조리) 동생을 速離(속리)라고 이름을 지었다.
세월은 흘러 형 “조리”가 8살, 동생 “속리”가 5살 되던 8월달에 어머니 「마나사라」 부인은 몹쓸 병에 걸렸다.
장자는 온갖 좋은 약을 구해다가 간병을 했으나 부인의 병은 더욱 깊어만 가서 드디어 최후가 다가왔다.
부인은 두 아들을 불어놓고, 엄마가 죽은 뒤라도 아버지에게 극진히 효도를 다하고 꼭 착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만 죽고 말았다.
두 아들과 장자의 슬픔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울고 또 울면서 장래를 잘 지냈다.
초상도 치르고 49일도 지나고 100일도 지나게되었다.
그러나 일단 인연이 다해 저승으로 간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
장자의 친구들은 안살림을 꾸려갈 새 배우자를 주선했는데, 그 근방에 사는 比羅長者(비라장자)의 딸이 물망에 올라 그를 새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녀는 용모와 자태가 죽은 「마나사라」부인과 많이 닮았으므로 아이들도 그를 친 어미니처럼 잘 따르고 후처도 아이들을 잘 보살펴서 집안은 다시 평온을 찾았다.
그런데 어느 해 큰 흉년이 들어 들판에 곡식이 모두 말라죽어 양식이 없어서 온 동네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다.
장자는 아들과 세 아내를 남겨둔체 배를 타고 먼 나라로 곡식을 사러갔다.
장자가 떠나자 후처는 갑자기 나뿐 생각을 했다.
만일 장자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어떻게 뒷바라지해 갈 것인가, 또 돈을 많이 벌어서 돌아온다고 해도 내가 낳은 자식은 서자취급당하고 저 애들에게만 상속될 것이니 차라리 아버지가 없을 때 저 애들을 죽여버리자.
그리하여 계모는 두 아이들에게
「애들아! 저 남쪽으로 배를 타고 가면 큰 섬 하나가 있는데 그 섬에는 기이한 화초도 많고 좋은 과실도 많으니 엄마랑 함께 소풍을 가자」라고 말하고 그들을 그리로 대려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버리고 말았다.
애들은 한참 놀다가 아무리 불어봐도 계모가 보이지 않는다.
그 섬은 무인도라서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해변에 흩어진 미역줄거리를 주어 먹었으나 그것마저 다 먹어버리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졌다. 그러나 조리는 마음 속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꼭 살아서 아버지에게 효도를 해야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기갈과 추위는 그들을 오래 견들수 없게 했다.
“조리”는 “속리”에게
「우리는 이제 죽을 시간이 다가 왔다. 그러나 정신이나 차리고 죽자. 우리가 여기서 죽더라도 우리의 혼은 성현이 되고 보살이 되자.」
라고 하면서 비록 서투르기는 하지만 32가지의 원( 관세음보살 32대원)을 세우고 이것을 혈서로서 상의에 써서 나무가지에 걸어 놓고 마침내 최후의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편 장자는 檀那羅山(단나라산)에 가서 鎭頭甘果(진두감과)를 많이 무역해서 낙타와 말과 코끼리에 바리바리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먼저 뛰어 나와야 할 두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후처는 천연스럽게 두 아들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장자는 아들의 행방을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무역해온 물건의 반을 준다고 공고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두 아들을 계모가 무인도에 데려가는 것을 봤다고 알려 주었다.
장자는 미친 듯이 그 섬으로 달려가서 목이 터지도록 아들의 이름을 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까마귀와 까치의 밥이된 불쌍한 두 아들의 썩은 사채만이 남아 있었다.
장자는 자식의 유해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한없이 울었다.
그러다가 햇볕에 바래져서 희미해진 조리의 혈서를 발견했다.
장자는 정신을 돌려서 읽어 가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득 道心(도심)이 생겨났고 아들의 간절한 소원을 다 읽은 다음 하늘을 우러러보며
「원컨대 나도 모든 악한 중생을 제도하고 조속히 불도를 이루오리다.」라고 발원하고 500가지의 대원을 세웠다.
장자는 후처가 저지른 악독한 소행을 다 전생에 자기가 지은 바 業因(업인)으로 생긴 과보라고 생각하고 너그러이 용서하는 한편 오히려 악독한 후처를 불쌍하게 여겼다.
“조리”는 관세음 보살의 전생이고, “속리”는 대세지보살의 전생이라고 한다.
<관세음본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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