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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蘇東坡(소동파) 詩選(시선) 解說(해설)

청남

 

 

蘇東坡(소동파詩選(시선解說(해설)

 

()蘇軾(소식1036~1101), 자는 子瞻(자첨), 호는 東坡居士(동파거사), 蘇東坡(소동파)라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坡公(파공), 坡仙(파선) 등으로 부르며 경모된다. 소위 唐宋(당송) 八大家(팔대가) 가운데 세 사람이 蘇氏(소씨) 부자이며 부친인 蘇洵(소순)老蘇(노소)라 하고, 동생인 蘇轍(소철)小蘇(소소)라하며 蘇軾(소식)大蘇(대소)라고 한다.

정계의 거두로서는, 歐陽修(구양수)를 스승으로 舊法黨(구법당)에 속하고, 王安石(왕안석)新法黨(신법당)에 대항하였다.

黃州(황주)5, 南海(남해) 그것도 바다를 건넌 海南島(해남도)3년을 포함한 7년의 유배생활에, 그날그날 먹는 음식까지도 자기 손으로 경작해서 얻지 않으면 않되는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 것도 黨爭(당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자로서의, 또한 예술가로서의 명성은 정치가로서 보다 더 능가하다. 부친과 동생과 함께 당송팔대가라고 꼽히는 것은, 歐陽修(구양수)가 제창한 고문복고 운동에 참가해서, 行雲(流水(행운유수)같이, 가야 될 곳에 가고, 그치기 않으면 안될 곳에 그치는 경쾌하고 능숙한 문장을 구사한 散文(산문)의 실적 때문이라고 본다.

시는 말할 수 없이 능하고 各體(각체)를 다 잘하며, 마음이 항상 평온하여 음률도 거기 따라 조화되어 있다. 그리하여 유동성을 지닌 名篇(명편)은 선배인 梅堯臣(매요신)高談(고담)으로도 뚫을 수 없던 벽을 깨트려 宋詩(송시)의 새로운 면을 열었다.

 

문학가 정치가 만능의 예술가 그리고 불교신자인 蘇東坡(소동파)라는 사람이 한 인간으로서의 살아간 모습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蘇軾(소식)이 태어나서 그리고 살아간 시대는 北宋(북송)의 가장 화려한 번성기였다. 산업은 발달하고 국외무역은 번창했다. 석탄을 이용한 火力(화력)의 혁명으로 銅鐵(동철)의 연금술이 진보되어 생산량은 유래 없이 늘어났다. 외부적으로 西夏(서하)의 위협이 없지는 않았고 내부적으로 권력의 중심세력사이의 인간관계가 험한 점도 있었지만, 대체로 평화롭고 화려한 시대였다.

 

蘇氏(소씨)의 가계는 蘇味道(소미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欒城(란성) 사람으로 測天武后(측천무후) 조정의 재상까지 되었으나, 무사안일을 표방하는 사람으로 별다른 공적을 세우지 못했고, 나중에 죄에 연좌되어 眉州(미주) 刺史(자사)로 좌천되어 그곳에 죽은 인물이다. 蘇家(소가)가 있었던 곳은 명주의 산지로 유명하고, 成都(성도)에서도 가깝다.

蘇氏(소씨)도 명주 판매에 관여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蘇軾(소식)의 시에 의하면 농사에 더 힘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蘇軾(소식)에게는 景先(경선)이라는 형이 있었으나 蘇軾(소식)이 세 살 때 죽었음으로, 세 살 아래인 蘇轍(소철)과 두 형제만 남게 되고, 이 두 사람이 끝가지 변하지 않는 兄弟愛(형제애) 소에 아름답게 살아갔다.

자매로는 두 사람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柳子玉(류자옥)의 아들인 柳仲遠(류중원)의 아내가 되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程正輔(정정보)의 아내가 되었다.

아버지 형제에는 ()() 두 형이 있었는데 ()은 진사에 급제하여 임관하였다.

아버지 ()蘇軾(소식)이 태어났을 때 28세 이었으나 그때부터 분발하여 본격적인 학문을 하여, 蘇軾(소식)10세 일 때인 慶曆(경력) 5년에서 3년간 宦游(환유)가 되어 관리생활의 견습생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소식의 어린 시절의 교육은 거의 모친인 ()씨가 했다고 보아도 좋다.

()의 명문 ()씨 집에서 온 蘇洵(소순)의 처는 교양 있는 부인으로 남편이 없는 사이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 부인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아주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살생을 싫어하는 마음을 하인들까지 감화를 받아, 뜰에 새들을 귀여워하여, 대나무와 화초가 무성한 蘇氏(소씨) 집안 뜰에 새들이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기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고 한다.

 

뒤에 蘇軾(소식)이 지사가 되었을 때 한상 진심으로 백성의 노고를 살펴서 서정을 베풀었음으로, 그가 전임을 하게 되자 주민들이 나와, 말고삐를 잡고 못 가게 하던 일이나, 멀리 유배에 가서 꽃과 새들에게 그 애정을 쏟아 극명한 묘사를 한 점은, 자식을 사랑으로 키운 어머니의 애정이 그때 나타난 것으로 본다.

 

蘇軾(소식)眉山縣(미산현)에서 天慶觀(천경관) 도사에게 배우고 잇었을 때 수도에서 온 사람이 선생에게 책을 한 권 보였다. 慶曆聖德詩(경력성덕시)라는 제목의 책이며 당 ldb명한 11명의 시를 모은 책이었다.

8세의 蘇軾(소식)은 옆에서 보고 있다가, 낭랑한 소리로 그 시를 잘 읽다 놀란 선생은 11명 중에서도 韓琦(한기), 范仲淹(범중엄), 富弼(부필), 歐陽修(구양수)의 네 사람은 人傑(인걸)이다.라고 가르쳤다.

아버지도 그때 歐陽修(구양수)의 시를 암송하며 자식들에게 그 글을 교본으로 시를 짓게 하였다. 蘇氏(소씨) 형제가 시험을 친 嘉祐(가우) 2년에는 歐陽修(구양수)知貢擧(지공거)로서 시험을 주관하고 있었다. 그것은 歐陽修(구양수) 등이 주장하는 詩文(시문)의 사상, 생각한 것은 생각한대로 솔직히 써내려간다.라는 古文復古(고문복고)의 시문이, 宋初(송초) 유행하는 美文(미문)西崑體(서곤체) 시와 다른 면모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해 시험을 주관한 구양수는, 지금까지 관례인 과거시험의 작문으로 常道(상도)를 밟아온 장식만 잘하고 중심이 결여된 문장은 전부 낙방을 시켰다.

그때 시험관의 한 사람인 梅堯臣(매요신)이 추천한 한 편의 문장을 읽던 歐陽修(구양수)는 매우 만족하였다. 그 답안을 장원으로 급제 시키려 하다가, 그 작품의 구성이 자기 문하의 曾鞏(증공)의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둘째로 합격시켰다고 한다. 그것은 蘇軾(소식)의 문장이었다. 曾鞏(증공)도 그의 동생과 함께 그해 합격을 하였다.

그리하여 蘇軾(소식)官界(관계)詩壇(시단)歐陽修(구양수)의 직계 제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때 관습은 과거시험에서 자기를 급제 시킨 시험관을 ()라고 부르는 것이 상례였다.

그해 3, 天子(천자)가 직접 시험을 주관하는 殿試(전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얼마 뒤 모친의 상을 당해 부자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모친상을 입었다. 상은 3년 상이며, 상을 당하면 일체 공무를 버리고 관직을 사퇴하고 귀향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 상을 마치고 부자 세 사람이 蜀江(촉강)을 내려가 다시 首都(수도)를 목표로 배를 타고 갈 때부터 蘇軾(소식)의 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蘇軾(소식)의 생활은 各期別(각기별)로 해설에 있으나 가단이 서술하면, 다시 首都(수도)로 돌아간 것이 24, 그리하여 26세에 鳳翊府(봉익부) 簽判(첨판)이 되어 陜西省(협서성) 鳳翊府(봉익부)에 부임한 것이 괸리생활의 시작이었다. 杭州(항주) 通判(통판), 密州(밀주) 知事(지사), 徐州(서주) 知事(지사)를 역임하고 湖州(호주) 지사가 되어 얼마 뒤 지금까지 지은 시 가운데 조정을 비방한 작품이 있다하여 투옥되었다. 44세 일 때다.

사형을 각오했는데 湖北省(호북성) 黃州(황주)로 유배되었다. 黃州(황주) 5년 생활 속에 그의 詩想(시상)은 더욱 맑게 잘 나타나 저 유명한 赤壁賦(적벽부)를 비롯하여 많음 명작을 남겼다.

죄를 용서받고 다시 首都(수도)로 돌아간 것은 55살 때였다. 中書舍人(중서사인), 翰林學士(한림학사)知制誥(지제고), 그리고 천자의 侍讀(시독) 등을 임명받았다.

그러나 스스로 청해서 다시 杭州(항주)知事(지사)가 되고, 潁州(영주), 揚州(양주), 定州(정주) 지사를 역임하였으나, 험악한 黨爭(당쟁)이 벌어진 중앙에서, 그가 翰林院(한림원)에서 천자를 뒤로 업고 가끔 조정을 비방했다고 상소하는 자가 있어, 모든 관직을 삭탈당하고 海南島(해남도)로 유배되었다.

南海(남해)에서 약 7년간의 생활을 보낸 65세 때, 哲宗(철종)의 죽음과 함게 政界(정계)에 일시적인 변화가 생겨, 죄 사면을 받고 바다를 건너 大臾嶺(대유영)을 넘어 中原(중원)으로 돌아가 常州(상주)에서 66세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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