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月二日初到惠州(십월이일초도혜주) 蘇東坡(소동파)
彷彿曾游豈夢中(방불증유개몽중) 欣然雞犬識新豐(흔연계견식신풍)
吏民驚怪坐何事(리민경괴좌하사) 父老相攜迎此翁(부노상휴영차옹)
蘇武豈知還漠北(소무개지환막배) 管寧自欲老遼東(관녕자욕노료동)
嶺南萬戶皆春色(령남만호개춘색) 會有幽人客寓公(회유유인객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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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처음 혜주에 도착.
여기 와보니 꿈에서 본 것 아니고 전에 와본 것 같은데
마치 개와 닭도 新豊(신풍)의 지리 아는 것 같이
관리와 민간 무슨 죄로 왔나하고 놀라는데
그 지방 노인이 이 늙은이를 손잡아 맞아주네.
蘇武(소무)는 사막 북쪽에서 어찌 돌아갈 줄 알았으며
管寧(관녕)은 스스로 遼東(요동)에서 늙으려 했네.
영남에 萬戶(만호)는 모두 봄같이 온화하니
이 寓公(우공)을 객으로 맞아주는 이도 있겠지.
【註】
新豐(신풍) 漢(한)의 高祖(고조)는 長安(장안)를 수도로 정한 다음 沛縣(래현)의 豊邑(풍읍)을 그리워하는 부친을 위하여 지금의 陜西省(협서성) 潼縣(동현) 동쪽에 新豊(신풍)을 건설하였다. 西京雜記(서경잡기)에 의하면, 그 읍의 거리와 집 등 모두를 신풍과 꼭 같이 만들어 豊邑(풍읍)에서 이주된 백성은 도로 입구에서 자기 방을 알 수 있었고, 도로에 방사된 개오 닭은 서로 다투어 각각의 자운 집으로 갔다고 한다.
.蘇武(소무)...... 漢武帝(한무제) 때 蘇武(소무)가 匈奴(흉노)에 갈 使者(사자)가 되어 갔다가 그 곳에 억류되어 세월이 지났으나, 昭帝(소제) 때 한과 화친이 되어 蘇武(소무)를 돌려보내도록 청했다. 처음에는 「그는 이미 죽었다.」라고 했으나 「天子(천자)가 上林(상림)에서 기러기를 쏘았더니 발에 편지가 있었다. 그것이 소무가 보낸 글 이므로 그는 아직 살아 있다.」라고 하자 흉노는 그를 돌려보냈다. 19년 만이다. 그때부터 통신을 雁書(안서), 雁帛(안백)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漠北(막배) 고비사막 북쪽. 지금의 몽골공화국
管寧(관녕) 삼국시대 魏(위) 나라 사람. 黃巾(황건)의 난을 피해 태수 公孫度(공손도)를 찾아 遼東(요동)으로 가서 山谷(산곡)에 여박을 짓고 시서를 강의하였으며 고관으로 초빙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遼東(료동) 遼東(요동)반도 부근.
萬戶(만호) 술의 이름.
寓公(우공) 나라를 잃고 타국으로 전전하는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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