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辰歲人日作 時聞黃河已復北流 老臣舊數論此 今斯言乃驗
(경신세인일작 시문황하이부배류 노신구삭논차 금사언내험)
二首(이수) -1- 蘇東坡(소동파)
老去仍棲隔海村(노거잉서격해촌) 夢中時見作詩孫(몽중시견작시손)
天涯已慣逢人日(천애이관봉인일) 歸路猶欣過鬼門(귀노유흔과귀문)
三策已應思賈讓(삼책이응사가양) 孤忠終未赦虞翻(고충종미사우번)
典衣剩買河源米(전의잉매하원미) 屈指新篘作上元(굴지신추작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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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인일 시를 지을 때 황하는 이미 북류해야 한다고 老臣(노신)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다. 지금 그 말에 증거로 두 수를 지음.
늙어서도 아직 바다 건너 살고 있으니
꿈속에서나마 가끔 시를 짓는 손자를 보네.
하늘 끝에 살며 人日(인일) 마지 하는 것도 습관이 되었지만
鬼門關(귀문관)을 지나 귀로에 들어서면 얼마나 좋을까.
賈讓(가양)은 治水三策(치수삼책)을 이미 생각해 내었고
외로운 충신 虞翻(우번)은 끝내 사면 받지 못하였는데
전당포에 옷을 제피고 河源(하원)의 쌀을 사
새로 술을 빚어 上元(상원)을 맞으려 손꼽아 기다리네.
【註】
人日(인일) 정월 7일.
老臣舊數論此(노신구삭논차) 熙寧(희녕) 중에 黃河(황하)가 범람하여 治水策(치수책)이 두 파로 갈라 져 격론을 이루었다. 文彦博(문언박) 呂大防(여대방) 등은 塞(새) 즉 東流(동류)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蘇轍(소철) 范百祿(범백록) 등은 疏(소) 즉 北流(북류)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元裕(원유) 년간을 통해 심한 論爭(논쟁)이 반복되었다. 東坡(동파)는 그의 동생과 함께 北流(북류)의 의견을 말하였다.
今斯言乃驗(금사언내험) 자기가 주장하는 北流說(북류설)에 대해 하늘이 그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作詩孫(작시손) 시를 짓는 손자.
鬼門(귀문) 鬼門關(귀문관). 容州(용주) 交阯(교지) 가두에 있으며 이 관 남쪽이 특히 기후가 나빠 鬼門關(귀문관)이라 하게 되엇다.
賈讓(가양) 漢(한) 哀帝(애제) 때 治河(치하) 三策(삼책)을 만들었다. 三策(삼책) 중 상책은 河水(하수)를 소통시켜 北流(북류) 시키기로 하는 것이었다.
虞翻(우번) 삼국시대 吳(오) 사람. 交(교)州(주) 자사로 유배되어 10여년 소환되지 못하고 죽었다. 易學者(역학자)로서 유명하다.
河源(하원) 惠州(혜주)에 소속된 河源縣(하원현). 쌀의 산지.
新篘(신추) 술을 담그는 술독을 보호하는 큰 대광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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