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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龍珠庵(용주암)

청남

 

 

안동의 사찰 龍珠庵(용주암)

 

위치:    안동시 풍산읍 풍산태사로 1671- 16

전화:   054)- 856- 3455

모빌:    010- 8584- 4616.

주지:   성공.

 

안동시에서 서쪽 예천 가는 길을 따라 솔티 고개를 넘어 가면, 새로 이전한 시외버스 정류장이 왼편에 보인다.

거기서 약 1km정도를 더 가서 좌측으로 가는 길의 신호를 받아 그 길로 접어들면, 왼편에 낙동강을 끼고 경관이 아름다운

시골길이 펼쳐진다,

그 길가에는 퇴계선생의 수제자인 권호문 선생의 서원인 청산서원도 있고,

또한 선생의 정자인 언어정 등 유서 깊은 유구들이 많이 있다.

 

 길을 따라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가면 회곡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도로가에

<용주암> 입간판이 보인다.

 

용주암은 그 입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불과 500m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차량을 길가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도 쉽고,

또한 용주암에도 주차장이 있어 노약자나 특별한 볼 이 있는 사람은 차로 가도 아무 문제가없다.

 

 

 

 

 

 

길 가에 있는 용주암 안내판.

 

 

길을 따라 가면 언덕 위에 용주암이 자리잡고 있다.

길이 구불구불!

인생길도 이 길처럼 순탄하고 바르지만은 않다.

 

 

 

용주암 입구에의 정자와

그 유명한 코끼리 바위가 아련히 보인다...

 

 

용주암의 창건 유래

 

용주암를 창건한 김 보살은 젊을 때, 무척 건강하고 부지런했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몸이 나른하고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여

아무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고,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여러 병원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아봤는데도 뚜렷한 병명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본인이 느끼는 몸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이 심하고 괴로웠다.

 

아무튼 약발이 받지 않으니 몇 년의 세월을 시름으로 보낸 보살은 답답한 가슴을 이기지 못하였고,

그 아픔과 고통을 초인적인 신의 힘을 빌려 치유하려고 생각 했지만, 어느 신에게 의지해야 될지 그것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중시조인 그 유명한 김방경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의지하고 싶어서

안동시 용산동에 작은 방을 하나 얻어 두 분의 혼백을 모시고 1,000일 기도를 올리기로 했다.

 

매일 매일 깨끗한 정화수를 떠 놓고 향을 피운 다음, 두 분을 모시고 무작정 절을 하며 마음을 닦았고, 지성으로 기도하기를  1,000일이 되었다.

즉 3년 세월을 일염으로 기도를 하였다.

 

그랬더니 바로 1,000일 기도가 끝나던 그날 밤 꿈에, 위엄이 높으시고 인자해 보이는 김방경 장군과,

소복을 입고 머리가 백발인 품격 가득한 할머니께서 두 시녀를 데리고 나타나셔서 조용히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너의 조상인 김방경 내외이니라.

너의 정성이 지극하여 우리 둘이서 너를 거두어 줄 터이니, 할머니 집 가까이 와서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여라.

거기는 국신당 할머니께서도 계시니 모두 함께 너를 도울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김보살은 꿈 속에서도 너무나 감격하고 기뻐서 눈물을 흘렸는데 깨어 보니 베개가 온통 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김방경 장군의 부인인 할머니 묘와, 국신당이 있는 곳은 풍산 수동이 아닐까?>  하고, 곧 용산동을 떠나,

김보살은 무작정 풍산 회곡에  집을  한 칸 마련하여 일념으로 김방경 할머니 할아버지와 국신당 할머니를 위하여

치성을 드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렇게 아팠던 몸도 말끔히 낫고, 말문이 열리기 시작하였으며, 어렴풋이 미래를 꾀뚫어 보는 눈도 생기며,

답답하던 가슴도 무척 편안해졌다.

 

그래서 이 모두가 세 분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치성 드리기를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국신당 할머니께서 다시 꿈 속에 나타나셔서

 

얼굴에 인자한 웃음 띠시고

<네 정성이 그만하니 먼저 마음을 비워라.

그리고 이제 내가 너에게 영원히 자리잡고 살 복된 터전을 알려주고,  또한 8만 4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잘 길드려서 함께 살며 ,

또한 너도 8만 4천 중생들의 어려운 病苦(병고)를 씻어주고 그들의 아품을 어루만져 주어라.>하시며 품에서 낡은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시더니

<네가 자리 잡을 곳은 바로 여기니라!> 하시며 두루마리를  펴서 보여 주시는데, 그 종이를 자세히 들어다 보니 거기에는

커다란 코끼리가 한 마리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꿈 속에서도 다급해져서

 <거기가 어디입니까?> 하고 물으려니 그만 국신당할머니는 연기처럼 스스르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시지 않았다.

 

그 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고민고민하다가,

우선 먼저 마음을 비우라 하시니 法名(법명)을 <먼저 비운다.>라는 뜻이 담긴 先空(선공)이라 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어려운 문제는 조상신께 여쭈어 봐야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先空(선공) 보살은 그의 할아버지인 국난을 구하신  유명한 <김방경> 장군 내외분께 물어보기로 하고, 

할아버지의 부인인 할머니 산소가 김 보살의 집  가까운 뒷산에 있었으므로,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 제사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위폐를 모시고 지성으로 마음을 모았다

 

<할머니, 코끼리 그림이 무슨 뜻인지 제발 좀 가르쳐 주세요!>하고 100일 동안을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그랬더니 정성이 조상 할머니의 마음에 닿았는지 100일 째 되던 날 새벽 꿈 속에

<내 사랑스러운 후손아! 내 천년 집에서 해 지는 쪽으로 산 줄기를 타고 일 마장을 가면 거기 큰 코끼리 바위가 있는데

거기가 바로 네가 찾는 곳이고 국신당 할머니가 암시하는 곳이니라. 내일 해뜨기 전에 어서 가서 찾아 보아라!> 하시었다.

보살은 너무 기뻣다.

 

뜬 눈으로 밤을 세운 先空(선공)  보살은 할머니가 가르쳐 주시는 데로 산 등선을 넘어 여기 저기 자세히 주위를 잘 살펴보니,

정말로 숲 속에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동쪽을 보고 서 있었다.

 

先空(선공) 보살은 너무나 기뻐 그 자리에 털석 주저 앉아 엉엉 목 놓아 울었다.

 

그리하여 先空(선공) 보살은 국신당 할머니와, 김방경 조상 할아버지, 할머니 세 분 덕택에 영원히 살아갈 안식처를  찾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일이었다.

 

그 곳에 터를 닦고 집을 지었는데, 국신당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8만4천의 군사는 어디에 있는지 그것 또한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다시 조상 신인 김방경 할머니께 묻기로하고 열심히 기도를 하던 중, 비몽사몽 간에 할머니께서 또 나타나셔서

<내 사랑스러운 손녀야! 저 낙동강 가에 가 보아라 머리가 빛나는 군사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거다.> 라 하였다.

 

그래서 허겁지겁 강가로 나가보니 과연 아침 햇빛을 받으며 물에 곱게 닳은 많은 돌돌이 미소짓듯 서 있었다.

 

그 후 선공보살은 김방경 장군과 두 할머니의 계시를 받고 많은 군사들을 모았는데,

그 돌들이 모두 군사들이지만 속인들의 눈에는 그저 예쁜 돌로 만 보인다.

 

지금도 자주 꿈 속에 김방경 장군과 두 할머니가 자주 나타나셔서 앞으로 나갈 길을 가르쳐 주시기에

김보살은 국신당 할머니와 조상 신을 모시고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

 

先空(선공)  보살은 두 분 할머니께서 바라시는대로  8만 4천의 중생들의 아픔을 치료해 줄 각오로 열심히 기도 드리고

김방경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뜻하시바를 그분들을 대신하여 말을 하며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고 사람들이 편안하도록 잘 인도 하고있다.

 

 

 

 

국신당 할머니께서 일러준 대로 김 보살이 어렵게 찾아 낸 코끼리 바위.

인도에서는 코끼리를 무척 신성시 한다.

도솔천에 계시던 부처님도 흰 코끼리를 타고

이 세상에 내려와서 마야 부인 몸속에 들어가서 사람으로 탄생 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 옛날 공민왕이 지칠 대로 지쳐 안동가지 몽진해 왔을 때 이 코끼리 바위 옆에 셈 솟는

맑은 물을 마시고 다시 기운을 채려 안동 읍으로 무사히 들어가실 수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고 거룩한 이 코끼리 바위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으며 참배하고

기도하는 사람마다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코끼리 바위 앞의 거북바위.

사진의 각도가 잘못되어 거북 같아 보이지 않지만

실물을 보면 영락 없는 거북이다.

거북은 우리 인간에게 한량없는 긴 수명을 안겨주는 신령스러운 영물이다.

그래서 용주암에서 기도를 하면

건강하고 오래 살도록 거북의 신령이 도와준다.

 

 

태음의 기운이 천지를 감싸는 밤이 돌아 왔다.

조명하래 펼쳐진 아련한 용주암의 정원은 정감과 신비로움이 함께 감돈다.

이 정원은 홀로 천천히 걸으면 우주와 합일되어

마음속에 한없는 환희심과 영혼의 승화를 경험하게 되리라.

나무와 돌이 만들어 낸 신비로움에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용주암 뜰에 사포시 눈이 내렸다.

세상의 온갖 더러움 것을 모두 덮어주고 깨끗이 치장해 주는 눈은 우리 마음의 시름마저 거두어 주는 것만 같다.

이 깨끗한 정원에 스님이 발자국을 지으면 아마도 태초의 원시림을 걷는 듯한 마음이리라.

굽이굽이 이어진 저 길 끝 간 데에는 누가 있을까?

아마도 김방경 할아버지가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손짓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홀로두면 스스로 온갖 재주를 부려 공간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용주암 뜰에 있는 이 소나무도 흰 눈 속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그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반듯하게 서 있는 3층탑과 잘 어울려 한 폭의 환상의 그림을 연출한다.

 

 

아름다운 하늘의 빛이 감도는 용주암의 삼존불상.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연출 할 수 없는 신비로운 빛의 조화가 넘쳐나는 이 법당에는 성심껏 기도를 올리면

한 가지 소원은 다 이루 진다고해서 각지에서 많은 참배객들이 앞 다투어 몰려와 기도를 한다고 한다.

 

 

 

용주암의 정자.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공해 없는 시원한 바람은

이 정자에 앉아 담소하는 사람의 마음마저 깨끗하게 씻어준다.

 

 

 

 

 

 

 

 

                            김방경 장군의 무신복 차림 영정과, 문신복 차림 영정.

김방경은 문무를 다 겸비한 분이므로 묘소 영정도

문관복 무관복을 입은 두 영정이 있다.

 

 

김방경(金方慶)

김방경(金方慶)은 안동에서 세도를 부리던 선안동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안동시 풍산읍 회곡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바로 선공(先攻) 보살이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의 가계를 보면 공의 조부 김민성과 백부 김창, 아버지 김효인 모두 과거급제를 통해 중앙관계로 나가 활동한

혁혁한 가문이다.

당시 음서제도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안일하게 벼슬하지 아니하고 모두 후대에 이르기까지 과거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정계 진출하였으며 김방경 역시 무과에 급제하여 중앙정계로 나가게 된다.

 

 

 

선공보살 집 뒤에 있는 김방경 장군 부인 묘.

김방경 장군의 묘는 와룡면에 있지만 부인의 묘는

바로 선공보살이 사는 집 뒤에 있다. 

 

 

 

 

김방경 공의 묘는 와룡면 감애리에 있으며

뒤에 보이는 묘는 관산김씨 예안파 입항조인 김효로의 묘이다.

고향인 회곡에서 멀리 있는 것은

명당을 찾다가 보니 고향과 거리가 떨어졌다..

 

 

 

김방경(金方慶) 공에 관련해서 고려사 열전 등 여러 문헌에 많이 나타나 있다.

고려사 사관(史官)은 그의 인품이 <믿음과 신의가 두터우며, 사람됨이 너그럽고 관대 하고, 모든 일이 대범하여 작은 일에

구애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병법(兵法)에 대해서도 <제왕운기>를 집필한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는 그의 군사지휘에 대해 <마치 팔이 손가락을 부리는 것과 같았고 한번 거사하여 병사를 움직이면 마치 양떼를 몰아가듯이 적을 단번에 평정하였다.>고 하는데서 알 수 있듯 누구보다 탁월한 병법의 소유자였고 전략가였음을 알 수 있다.

 

 

 

집 뒤에 있는 김방경 장군 사당.

이 사당 앞에서 기도를 올린 선공보살은

비로소 입이 열리고

금빛 가루가 온 몸에 뿌려지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이승휴와는 서신을 왕래하는 정도로 상당한 학문적 수준을 보이는데 온갖 병서(兵書)들은 물론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유교경전 까지도 잘 읽어 모든 면에 해박하고 諸子百家(제자백가)에도 식견이 있었으며 특히 주역(周易)’에도 조예가 깊을 만큼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관직생활은 원대한 꿈을 펼치기 보다는 고낭의 세월이었다.

정의를 위해 간사한 무리들과 야합하지 않는 굳은 절개 때문에 파란 많은 관직 생활을 했는데 그 과정들은 역사책에 잘 기록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집 뒤에 있는 김방경 장군의 유허비각.

김방경 장군은 이 곳이 생활의 터전이었다..

 

 

김방경이 89세 노환으로 별세할 때 까지 충렬왕은 수차례 김방경의 집에 찾아가 정을 나누고 정사를 자문했다.

어느 왕조에서도 국왕과 같은 시호를 받은 신하는 없었다.

충렬공 김방경은 고려의 훌륭한 임금과 16공신을 모신 숭의전에 배향되는 영광을 얻은 자랑스러운 분이다.

 

김방경 사후 손자 김승택, 김영후, 김영돈, 그들의 손자 김구용, 김사형으로 이어진 후손들은 안동을 충효의 고장으로 만드는데 중앙 정계의 핵심적인 세력으로 남아있으며 노력한 사람이었다.

 

극도의 혼란기에 중책을 맡아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고려의 자존과 왕권을 지키려 했던 명재상 충렬공 김방경!

그는 진정 안동이 낳은 위대한 인물로 우리의 영원한 자랑일 것이다.

 

그런 훌륭한 분이 바로 선공(先空) 보살의 직계 조상이니,

선공(先空) 보살의 피 속에도 김방경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김방경 장군이 갖고 놀았다던 공기돌.

모두 5개가 있다는데 2개 밖에 찾지 못하였다. 

 

 

 

장군 바위.

저 큰 돌은 김방경 장군이 혼자 힘으로 저기

올려 놓았다고 한다.

 

 

 

 

물고기 바위.

김방경 장군이 낙동강에서 낚아

산에 던져 놓았다고 한다.

 

 

 

 

법당에 모신 삼존불상.

이 부처님에게 매일 일념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용상동에 있을 때 기도하며 쓰던 유품.

 

 

 

창을 들고 악귀를 물리치며 용주암을 지켜주는 미륵보살의 화신.

 

 

 

지장보살님과 미륵보살님.

 

 

 

 

 

마치 큰 나무 둥치같이 생긴 이 듬직한 돌은

무게가 천근같은 귀인의 풍성과 인격같기도 하다.

우리는 이 돌처럼

흔들림 없이 살다가 가자.

.

 

 

 

이 날렵한 돌은 여인의 몸속에 자리잡은

새 생명의 움이 트는 아기에 비유된다.

.

 

 

죽 늘어선 이 돌들은 8만 4천 군사 중에서

무장을 한 충실한 사병들이다.

한 치의 흐트림 없이 질서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

충성을 다하는 국신당 할머니의 군대와 같다.

 

 

 

용주암 보살님의 돌 사랑은 남달리 열정적이다.

땅 속에 묻힌 큰 바위의 상단을 살려서

마루를 깔고 운치있는 공간을 만들어

기도하고 공부하고 심신을 수련하는 높은 식견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고민왕의 전설이 담긴 코끼리 바위 아래 자리 잡은 아담한 용주암은

앞으로는 낙동강 푸른 물이 흘러가고, 뒤로는 학가산이 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솟아있다.

 

용주암의 창건은 실로 그 유명한 김방경 장군의 계시에 따라 이룩되었다고 하며

그 계시를 몸소 받은 선공스님이 정성을 모아 이룩한 보찰이다.

 

 

그리고 용주암의 수륙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수륙재란 물()과 육지()에 살다가 죽은 수많은 고혼들을 위한 재인데,

보통 다른 절에서 지내는 수륙재는 근래에 죽은 고혼을 위한다면,

용주암의 수륙재는 근래에 죽은 고혼은 물론이고 공민왕을 위해 목숨 바친 고혼들과, 김방경 장군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한 고혼 까지 다 소급해서 지내는 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규모도 엄청 크고 1,000년의 역사적인 의의가 있기 때문에

경향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성대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내가 어릴 때도(70년 전)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구경하로 왔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 그 맥을 이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나는 물론이고, 이 방면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실로 감회가 큰 수륙재이기도 하다.

 

 

 

 

선공스님의 유려하고도 정성어린 진행으로 수륙재는 늘 성대하고 거룩하게 진행되어

구천을 떠다니는 고혼은 모두 구원을 받아 극락왕생하게 되니

저승은 물론이고 이승까지도 하늘과 땅, 그리고 온 산천에 평화와 행복이 넘쳐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용주암을 중심으로 100리 주변에는,

봄에는 꽃이 아름답게 피고, 가을에는 곡식이 풍요롭게 익고, 물은 맑게 흐르며,

바람은 시원하고, 공기는 상쾌하다.

물난리, 화재, 눈사태, 지진, 등 자연재해도 거의 없다.

 

 

 

이는 오직 용주암의 수륙재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이 땅에 원한 맺힌 원귀가 없고

하늘이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시기 때문이 아닐까?

실로 용주암의 수륙재에는 이렇게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

 

 

국신당 할머니께서 계시는 국신당 사당.

 

 

풍산읍에서 안동으로 가는 뒷길을 약 6Km 정더 가면 1칸 남짓한 성황당이 있는데 이를 국신당이라 부른다.

국신당은 600여 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이 지방까지 피란을 왔을 때의 일로부터 시작된다.

공민왕은 쫓기는 형편이어서 왕을 뒤따르던 신하들도 점차 이탈하기 시작해서 그 수가 하나 둘씩 날이 갈수록 줄게 되었으며 이곳 풍산에 도착했을 때는 불과 5, 6명에 지나지 않았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정.

현재 안동시 성북동 평화사의 공민당에 소장되어 있음.

 

 

다급한 공민왕은 풍산 동쪽 상리동 산 정상에 허수아비 병정을 곳곳에 세우고 남으로 피신을 하였다 한다.

 

마침 이때가 가을철이라 아침 안개가 끼어 공민왕을 쫓던 도적의 무리가 산 위를 보니 적군을 한  눈에 집어 삼키려는

기세로 많은 군사가 아래쪽을 향해 활을 쏘는 형용을 하기에 겁에 질린 적군은 후퇴하였다.

 

그리하여 공민왕은 이곳 무성한 대나무 숲에서 휴식을 취하여 무사했었다하여 이것을 기려 마을 사람들은 국신당을 세워

공민황의 영정을 모시게 되었다.

 

국신당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넔을 달래주는 신령스러운 국신당 할머니가 있어, 지금은 선공(先空) 보살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여 김방경 조상신과 함께 선공보살을 잘 보살펴 주고 도와주며 입을 열게 해주고 계신다고 한다.

그래서 선공보살도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꼭 국신당 할머니를 찾아가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인사를 하고 있다.

 

 

 

 

천년 만년을 지나가도 변하지 않는 돌의 기상처럼

변하는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창건주 보살의 마음처럼

이 거대한 돌들은 서로 함께 앉아

심오한 인생 철학을 논하고 있다..

 

 

 

.

 

 

용주암에서 내다보면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암자를 잘 감싸고 있고

멀리 낙동강의 본류가 도도히 흐르는 것이 보인다.

 강 저 멀리 소백산(小白山) 줄기인 안산(案山)이 암자를 보호하듯 자리하고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의

명당(明堂) 속에 코끼리 바위의 정기를 받은 이 암자는

김방경 내외분과 국신당 할머니의 도움 아래 소원을 성취하는

영험있는 명당도량(明堂道場)으로 길이 발전 할 것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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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봉정사일주문.jpg 鳳停寺 柱聯(봉정사주련) 청남 17-05-08 3162
130 1489653546518.jpg 南長寺 柱聯(남장사 주련) 청남 17-05-08 2022
129 오어사 (3).jpg 雲梯山吾魚寺(운제산오어사) 청남 17-02-11 2194
128 청암사 (1).JPG 佛靈山靑巖寺(불영산청암사) 청남 17-02-11 2205
127 고방사.JPG 白馬山古方寺(백마산고방사) 청남 17-02-10 2417
126 부귀사정-1.jpg 영천의 사찰 <浮龜寺(부귀사)> 청남 15-01-11 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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