屈原塔(굴원탑) 蘇東坡(소동파)
楚人悲屈原(초인비굴원) 千載意未歇(천재의미헐)
精魂飄何處(정혼표하처) 父老空哽咽(부노공경열)
至今滄江上(지금창강상) 投飯救饑渴(투반구기갈)
遺風成競渡(유풍성경도) 哀叫楚山裂(애규초산렬)
屈原古壯士(굴원고장사) 就死意甚烈(취사의심열)
世俗安得知(세속안득지) 眷眷不忍決(권권부인결)
南賓舊屬楚(남빈구속초) 山上有遺塔(산상유유탑)
應是奉拂人(응시봉불인) 恐子就淪滅(공자취륜멸)
此事雖無憑(차사수무빙) 此意固已切(차의고이절)
古人誰不死(고인수부사) 何必較考折(하필교고절)
名聲實無窮(명성실무궁) 富貴亦暫熱(부귀역잠열)
大夫知此理(대부지차리) 所以持死節(소이지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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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屈原塔(굴원탑)
초나라 사람들 굴원을 슬퍼하기
천년이 지나도 그 마음 변치 않아.
그의 영혼 어디를 방황하는지
노인들 허망하게 오열하네.
지금까지도 푸른 강 위에
기갈을 면케 하려 밥을 던지고
배 젓는 경기의 풍속도 남아 있는데
楚山(초산)도 찢어질 정도로 슬피 우네.
屈原(굴원)은 옛날의 장사
죽음에 임하여 그 기상 장렬하니
세속의 사람들 알가나 할까
뒤돌아보니 그 슬픔 차마 참을 수 없네.
南賓(남빈)은 옛날 초나라에 속하고
산 위에 굴원의 탑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그의 사적이 살아질까 두려워 세운 것.
여기 이렇게 하는 것이 아무 연고 없다 해도
이 뜻은 말할 것 없이 이미 간절한데
옛 사람 누가 죽지 않으려만
어찌 반드시 장수와 요절을 비교하는가.
명성은 진실로 무궁한 것이고
부귀는 잠시 뜨거운 것에 지나지 않으니
대장부는 이 이치를 알고
죽어서 절의를 지킨 것이네.
【註】
屈原(굴원)....... 楚(초)의 懷王(회왕)의 左徒(좌도)가 되었으나, 참언으로 추방당했다. 楚辭(초 사) 離騷(이소)의 賦(부)를 지었다. 懷王(회왕)의 아들인 頃襄王(겨양왕)도 또 한 참언을 믿고 호남으로 보냈다. 굴원은 九章(구장)의 시름의 마음을 담아 九歌 (구가), 天問(천문), 漁父(어부) 등 여러 작품을 남기고, 湘水(상수)에 몸을 던 져 자살하고 말았다.
哽咽(경열) 곡을 해도 목이 매어 소리도 나오지 않음.
滄江(창강) 춥고 푸른 물.
投飯(투반) 5월 5일이 屈原(굴원)이 泪羅(누라) 물에 잡긴 날인데, 이날 楚人(초인)들은 대통에 쌀을 넣어 물속에 던진다. 그것도 屈原(굴원)이 먹기 전에 용이 먼저 먹지 않도록 대통 입구를 棟(동) 나무 잎으로 닫고 오색실로 묶었다고 한다. 또한 5월 5일 강위에서는 먼저 배를 타고 달리는 경기가 있는데 그것은 물에 빠진 屈原(굴원)을 빨리 구하기 위해 배를 빨리 부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眷眷(권권) 뒤돌아본다. 마음이 끌린다는 뜻.
南賓(남빈) 唐代(당대) 南賓郡(남빈군)이 있던 忠州(충주).
子(자) 공자, 맹자처럼 남자에 대한 미칭.
憑(빙) 증거.
固(고) 말 할 것도 없이.
考折(고절) 長壽(장수)와 夭折(요절)
大夫(대부) 屈原(굴원)은 楚(초)의 三閭(삼려)大夫(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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