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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玉山寺(옥산사)

청남이메일
안동의 사찰 玉山寺(옥산사)

1. 위치: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 산146번지.
            054- 859- 5611
      

안동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마애불을 모시고 있고, 전국에도 그 유례가 드문 암굴 산신각을 모신 학가산의 가장 명당에 자리 잡은 옥산사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그 접근성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 문화와 편한 것만 찾는 현대인에게 험하고 가파른 산길을 가야하는 부담이 이 좋은 명소 참배의 기회를 놓치게 하고 있다.



       <옥산사 입구임을 알리는 입간판. 이 안내 판 지시대로 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된다.>


옥산사라는 사찰보다는 마애약사여래좌상(磨崖藥師如來坐像)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유명한 곳이다.  
이 절은 안동에서 영주로 가는 국도 5호선을 따라 20km 정도 떨어져 있는 북후면에 있는데 북후면 소재지 조금 못미처에 있는 북후 초등학교로 들어가는 길은 따라 가면 장기리 벽절골로 들어 갈 수 있다.

이 길로 접어들어서 학교를 지나면 옥산사 입구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동내 안으로 들어가면 옥계(玉溪) 강봉문(姜鳳文)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철종 11년(1860)에 창건한 벽계서원(碧溪書院)이 있다.



          <강봉문 선생을 배향한 벽계서원. 평소 서원 문이 잠겨있어 내부를 못 봐도 주변을 돌아 봐도 경치가 좋아 만족 할 것이다.>



         <서원 아래 넓은 공간에 있는 연자매. 그 앞 일대에 주차하면 안전하다.>

벽계서원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길을 따라 약 30분 정도 걸어 오르면 옥산사에 닿을 수 있다. 이 길은 가파르고 험한 길이지만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있어서 승용차로도 갈수 있다. 그러나 벽계서원 앞 넓은 공간에 차를 주차하고 서원을 둘러본 뒤 걸어서 오르는 길이 훨씬 운치 있고 건강에도 좋다.

시멘트로 포장은 되었어도 노폭이 좁아 차바퀴가 겨우 지나갈 정도이니 만일 승용차로 갈 때는 각별히 조심하고 초심자는 차를 주차하고 걸어 올라갈 것을 권장한다.
뿐만 아니고 산꼭대기에 가까이 가면 경사 또한 급해서 운전이 미숙한 사람에게는 힘이 많이 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옥산사가 자리 잡고 있는 玉山(옥산)은 해발 417m이며 산의 정상 부근에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산이 아름답고 숲이 울창하며 구슬과 같이 맑고 깨끗한 물이 계곡을 흘러 옥석(玉石)이 나던 곳이라 하여 玉山(옥산)이라 불었으며 사찰은 산 이름을 따서 玉山寺(옥산사)라 하였다.



      <대웅전 앞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5층 석탑이 있고 요사로 통하는 넓은 길이 탁트여 있다.>

2. 유래와 전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 중 하나인 옥산사는 언제 누가 창건하였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절의 뒤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창과 塼塔祉(전탑지)로 미루어 보아 신라 때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영가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옥산사는 부의 북쪽 32리 떨어진 옥산 속에 있는데, 그 북쪽 5리 지점에 바위굴이 있다. 月川塼塔(월천전탑)은 옹천역 남쪽에 있는 옥산의 북쪽에 있는데 5층이며 그 안에 석불이 있다.

玉山寺在府北三十二里玉山中 其北五里古穴 月川塼塔在瓮泉驛南玉山之北五層中有石佛
                         永嘉誌 卷之六 佛宇條, 古塔條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옥산사는 영가지가 편찬될 당시에만 해도 절과 전탑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절도 폐사되고 전탑도 파괴되어 지금은 탑재로 쓰였던 전돌 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화강암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전탑의 위치는 마애약사여래좌상에서 마주 보이는 곳으로 거리는 약 50m 정도 떨어진 능선에 있다. 마애불의 조성시기가 통일신라시대로 이 전탑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옥산사는 마애불과 전탑지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던 듯 중간에 폐사되어 그 연혁을 알 수 없고, 1964년에 “임추희”씨가 새로 법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창 당시에는 현재 법당으로 사용하는 건물 1동을 지어 인법당으로 사용하였다. 중창 당시 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좌측 1칸은 방으로 꾸며 스님이 거처하였으며, 가운데 2칸은 법당으로 사용하였고 우측 1칸은 부엌과 방으로 사용하였다.

옥산사를 중창하니 많은 신도들이 끊이지 않아 새로 요사채를 짓고 법당도 4칸 모두 사용하게 된다. 요사채를 짓기 위하여 준비할 때 중창자인 임추희씨는 죽고뒤를 이어 월담(月潭)스넘이 이곳에 와서 요사채를 1971년에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 본 새 요사와 해우소>  

법당의 뒤에 있는 월천전탑지로 오르는 길섶에 옥산사 중창유래를 적은 비석이 서 있는데 그 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옥산사 차아건에 관해 참고 하기 바란다.

玉山寺 創建 由來
玉山寺는 千數百年前 統一新羅時代에 初創하였고 寺字周圍에는 天然洞窟을 爲始하여 石澗藥水가 聳出하고 있으며 뒷산 岩壁위에는 大慈大悲하신 藥師如來佛의 大道像이 嚴存하시어 千古에 不滅하심에 李朝初期에 거센 背佛思想과 暴風에 寺字는 倒失되었으나 부처님 慈悲의 惠厚를 渴求하는 善男善女의 祈願法烈이 不絶하던 중 榮州에 居住하신 林秋姬씨 佛名 普賢行普薩을 중심으로 信徒님들의 敦篤한 信心으로 玉山寺를 創建하였다

<해>
玉山寺(옥산사) 창건 유내
玉山寺(옥산사)는 천 수백 년전 통일신나시대에 처음으로 창권 되었고
寺字(사자) 주위에는 천연동굴을 위시하여 석간 약수가 솟아 났으며 뒷산 암벽 위에는 대자대비하신 약사여내불의 크신 상이 엄연히 존재하시어 천고에 부별하심이다.
리조 초기에 거센 배불사상과 포풍에 寺字(사자)는 도실되었으나 부처님 자비의 혜후를 갈구하는 선남선녀의 기원하는 행렬이 끊기지 아니 하던 중 영주에 거주하신 林秋姬(임추희)씨 불명 普賢行普薩(보현행보살)을 중심으로 신도님들의 돈독한 신심으로 옥산사를 창건하였다.



         <옥산사의 핵심 부분. 멀리 산 위에 마애불상이 있고, 앞에 대웅전이 있으며, 대웅전  뒤 바위굴 속에 산신각이 있다. 대웅전 동편에
           탑을  세워 전체의 구도가 잘 조화되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3.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해발 417m인 옥산의 정상 조금 못미처 자리 잡은 옥산사는 大雄殿(대웅전)과 8칸의 요사채로 구성된 건축물과, 법당의 좌측 뒤에 있는 자연석굴속에 자리 잡은 산신각, 그 위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가.



           <대웅전 현판 글씨>

대웅전에 있는 주련.

                                        


佛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普現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隨緣赴感靡不周(수연부감미불주)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제좌)
                     - 화엄경 여래현상품 -

<해>
           부처님은 온 세상에 가득히 계시며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난다네.
           인연 따라 두루 나아가 감응하지만
           항상 깨달음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네.




가. 大雄殿(대웅전)

내가 방문한 날에 마침 스님이 출타하고 없어서 법당 내부를 볼 수가 없어 대웅전 내부의 상태를 소개 할 수가 없는 것이 몹시 유감이다.
능숙한 솜씨로 쓴 주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부의 규모도 몹시 거룩하리라고 상상만 하고 돌아왔다.



        <멀리 산상에 거북 바위가 보이고 그 아래에 마애불상이 계신다.>


나. 磨崖藥師如來坐像(마애약사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자료 제181호로 지정되어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법당의 좌측 뒤 높이 약 20m 정도 되는 자연암벽에 새겨져 있다.
이 자연암벽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마치 목을 쪽 뺀 거북이가 옥산의 정상을 향하여 기어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마애불은 바로 거북이의 머리를 떠받고 있는 바위 면에 조각돼 있다.




         <거북바위와 마애불상>


거북은 십장생의 하나이며, 용과 봉황, 기린과 같이 영물로 통하여 마애약사여래불을 받들어지는 신령한 동물이다.
거북은 오래 사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영물이므로, 인간이 병들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섬겨왔고, 물과 불을 자유스럽게 왕래할 수 있는 동물로서 초자연적인 신비스러운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바람 앞에 한 잎 갈대와 같이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경외의 대상인 거북 형상을 한 바위에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고 섬기는 것은 한층 더 믿음에 강한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애불의 상반신상. 얼굴의 모습이 저무나 정교하고 부처님의 자비로운 표전이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더욱 거룩하게 보인다.>


옥산사 마애불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조각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거북 형상을 한 바위에 자기의 소망을 담고 그것도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중생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해주며, 아픔을 아물게 해주는 약사여래불을 조각하는 것은 거북이 가지는 상징성과 약사여래불이 가지는 신앙적인 신비로운 힘이 잘 조화되어 인간을 구도해 준다는 믿음에서 가파른 옥산 정상에 마애불을 조각하였을 것이다.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암벽은 북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가운데에 약사여래불을조각하고 좌·우 협시보살로 일광과 월광보살을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산사 마애불상.>


그러나 가운데 약사여래좌상만 뚜렷할 뿐 좌·우협시보살은 거의 마멸되어 윤곽조차도 알아볼 수 없다. 본존불인 약사여래불의 머리 위에는 넓은 바위가 마치 처마처럼 불쪽 앞으로 튀어 나와 있다. 이것은 모자의 차양처럼 앞으로 불룩 내민 형태를 띠고 있어서 빗물이 마애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애불의 방향이 북동쪽을 향하고 있어 청량산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광선은 최대한 받아들이고 차가운 북풍은 거북 바위가 막아주며 비바람은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바위로 하여금 맞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전탑의 유허지. 언젠가는 여기 다시 전탑이 세워져 옛 모습을 찾을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마애불의 정면 50m 전방에는 5층으로 된 월천전탑이 우뚝 서 있어 해들 무렵 탑신 사이로 쏟아지는 태양 광선의 아름다움은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월천전탑은 부서지고 현재는 전탑지만 남아 있어 이러한 장관은 다시 볼 수는 없지만 전탑이 복원된다면 마애불 창건당시의 옛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동지방에는 이 마애불을 빼고는 다른 곳에 마애불이 없다. 학가산에 마애불을 조성할 만한 적당한 바위 많아도 어느 곳에도 마애불은 없고 오직 여기에만 있으므로 더욱 귀하고 자랑스럽다.



         <마애불과 산신각 앞 바위 앞에 세운 두 석등. 우리의 마음을 밝혀 주는 등불이어라.>



         <신비감이 넘치는 신령스러운 산신각. >


다 山神閣(산신각)

대웅전 좌측 뒤에 있는 자연 동굴을 이용하여 산신을 모시고 있다.
마애불의 아래에 큰 바위가 있고, 그 아래에 여러 개의 바위가 모여 작은 석굴을 이루고 있는 굴속에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든 호랑이 등에 올라 앉아 있는 산신상을 조성하여 모시고 있다. 굴속이 어두움으로 불을 항상 밝게 켜 두고 있는데, 바위에 반사되는 불빛에 비치는 산신상은 더욱 준엄해 보인다.



        <새요사 뒤에서 동편으로 보면 해우소가 보인다. 새 요사와 산 사이에는 넓은 공간을 두었는데  이런 산골에 이다지도 넓은 공간을
          확보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라. 寮舍(요사)

요사에도 문이 잠겨 있어 전에 쓴 기사를 올리기로 한다.
옛날에 쓰던 요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기인 요사는 시멘트 벽돌로 스레트 지붕을 이어 지어 팔작지붕을 한 건물로 1971년 월담스넘이 손수 지은 집이다.
좌측 1칸은 부엌으로 사용하며 가운데 2칸은 방으로 사용한다. 우측 1칸은 관운장의 탱화를 모시고 있는데 이는 옥산사를 중창한 창건주 보살이 관운장을 믿었기 때문에 사당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오래된 요사는 사용 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하루 빨리 철거하고 그 터에 다른 건물을 짓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낡은 건물 아래에 새로 큰 요사를 짓고 있으며 공가사 거의 마무리 단계까지 와있는데 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볼 수가 없었다.



        <공사중인 새 요사. 일부 입주를 한 듯 하며 마무리 공사만 남아 있는 듯 하다.>



        <하로 바삐 철거가 요망되는 헌 요사. 옛날에 여기서 차 접대도 받았는데 지금은 경내의 흉물로 남아 있다.>



        <크고 단단하게 잘 짓고 있는 새 요사.>


험한 산 속에 자리 잡은 옥산사의 전체 경내 면적은 약 1,000평 정도나 되며, 이런 열악한 지형에 이렇게 넓게 자리 잡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 여서 그저 놀라울 뿐이다.

20여 년 전 내자가 북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퇴근을 도우려 승용차를 갖고 학교에 가서 퇴근을 기다리다 시간이 있으면 늘 옥산사를 참배하고 잘 관찰 하였었다.
그게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물 같은 세월은 빨리도 흘러 어언 20여년이나 지나가 버렸다네.



          <요사 옆 언덕에 월담선사의 부도가 있다. 세운지 얼마 되지 않는듯하다.>



         <헌 요사 좌측에 있는 소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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