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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平和寺(평화사)

청남이메일

안동의 사찰 평화사

1, 위치 : 안동시 성곡동 1408번지.
             054- 821- 6244

구 용상파출소에서 길 건너편으로 난 복개된 길을 약 따라 200m 정도 들어가면 길 왼쪽으로 평화사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고, 그 방향으로 가는 포장된 길이 있다.



          <도로 가에 있는 평화사 안내판. 여기서 산길로 오른다.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되어있어 통행의 불편이 별로 없다. >


이 길을 따라 약 700m를 올라가면 “선왕데”라 하는 곳에 평화사가 있다.
길은 팔 포장이 되어 있고 경사도 그만하면 불편없이 차가 갈만 길이지만 주변에 가옥이 인접해있으니 조심을 요한다.

“선왕데이”란 성황당이 있다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날 고려 공민왕이 홍건전의 난을 피해 안동에 왔을 때, 이곳에서 궁녀와 마부가 죽자 그 후 안동지방에는 역질과 흉년이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당을 짓고 죽은 궁녀와 마부의 혼을 달래는 제사를 올리니 변고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 후 그곳에 한 집 두 집 사당 주변에 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지니 마을 이름을“선왕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언덕 길에 있는 평화사 안내판. 미적 감각이 듬뿍 담긴 정겨운 안내판.>



또 사당 주변에는 토성을 쌓아 동·서·남문을 내고 토성 윗부분에 말 다섯 필이 달릴 수 있게 오마도(五馬道)를 내었다고 전해지며 높은 봉 위에는 깃발을 꽃아 강 건너 안동부(安東府)에 연락을 취했다는 깃대봉도 있다.
그 후 큰 호랑이 두 마리가 사당을 지키고 있었으나 산림이 황폐해지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평화사 서편에 있는 당당한 종각. 이 큰 종소리 울리면 산 아래 모든 중생의 번민과 고통이 다 살아지고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리라.>


또 다른 전설은 다음과 같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왔을 때 한 여랑(女娘)을 데리고 와서 늘 귀여워하며 가까이 두게 되었다. 그러면서 왕은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홍건적과 대치하였다.
여랑은 왕이 전황을 살피러 싸움터에 나서면 따라가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홍건적의 복병이 쓴 화살에 왕이 맞을 찰나 여랑이 몸을 날려 대신 맞고 쓰러졌다.
왕은 자기의 목숨을 몸으로 막아 살려준 여랑을 극진이 간호하였지만, 화살이 너무 깊이 꽂혀 죽게 되었는데 여랑의 혼이라도 홍건적을 물리치고 성을 지키는 신이 되겠다고 유언한 뒤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 싸움은 평정되고 왕은 다시 환도하게 되었지만 여랑을 잃은 슬픔에 이곳에 당집을 지어 여랑신사(女娘神祠)라 하고 안동부사로 하여금 매년 정월 열나흘날 밤에 당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

“선왕데이”가 있는 주변의 산은 일월산의 지맥으로 평화사가 자리잡으면서  노국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19세기에 간행된 영가지의 본부도를 보면 성황산(城隍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선왕데이’에 전해져 오는 여랑신사와 관련되어 지은 산명(山名 )으로 여겨 진다.

2. 유내와 전설

대한불교 도생조계종 종정인 사불스님이 주석하는 평화사는 1987년에 주지 최사불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불스님은 경주 최씨로 26세의 젊은 나이 때 우형이 병이 와서 3년 동안 병마와 싸우던 중 청량산 장군봉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기도하던 중에 신령님이 나타나서 어느 곳에 가면 흑장미가 있을 테니 그 꽃을 따서 먹으라는 계시를 하였다.

그리하여 즉시 그곳에 가보니 과연 흑장미가 만발해 있어서 그 꽃을 먹었다고 한다. 스님은 그 후 병이 완쾌되었고 일신상의 모든 어려움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은혜와 가피력이라 생각하여 부처님의 고마은 자비심에 깊에 감복하고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고, 29세 때 안동시 평화동의 판자집에 작은 법당을 꾸며 청량산에서 모시던 관세음보살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후 1987년에는 지금의 자리에 무량수전, 산신각을 짓고 평화사란 이름을 걸고 신앙공동체를 형성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평화사의 본전인 무량수전. 이 안에 신비의 수박이 있다. 내가 방문 했을 때도 4개의 수박이 관세음보살 앞에 있었다.>



          <무량수전 현판.>



        <무령수전에 안에 안치된 주불인 아미타부처님과 나란히 한 삼존불.>



          <사불스님이 천량산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님과 그 앞에 있는 신비의 수박 4개.>



          <평화사의 신중탱화>



          <극락전에 안치된 지장보살님과 미륵보살님.>



3.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평화사는 “선황데이”의 경사면을 잘 이용하여 무량수전, 칠성각, 산신각 종각 등의 건물이 나란히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고 기타 건물로는 요사와 사불스님 공덕비와 공민당 등이 있다.

무량수전은 산신각과 함께 평화사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잘 단청된 전통공법의 법당으로 서 규모는 작지만 지형에 맞게 아주 아름답게 잘 지은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기는 약 27평 정도나 되며 튼튼하게 잘 지었다.

정면 벽에는 다음과 같은 거룩한 주련이 걸려 있어 한결 법당을 돋보이게 한다.


                                        


自從今身至佛身(자종금신지불신)
堅持禁戒不毁犯(견지금계부훼범)
唯願諸佛作證明(유원제불작증명)
寧捨身命終不退(영사신명종부퇴)

<해>
          제가 지금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계율 범하지 않으려 하오니
          오직 원컨대 모든 부처님 증명하소서!
          결코 이 목숨 다하도록 물러나지 않겠나이다.

내부에는 불단을 조성하여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등의 협시보살을 봉안하였다. 협시보살의 측면에는 관세음보살과 약사여래를 봉안하였고, 우측 벽면에 조성된 불단 위에는 지장보살을 모셨다.

특히 측면에 따로 봉안한 관세음보살은 사불스님이 평화사를 창건하기 전 29세 때부터 모신 부처님으로 “신비의 수박”의 이적과 관련된 부처님이라 한다.

“신비의 수박”이란 썩지 않는 수박으로 매년 부처님 오신 날 사불스님이 시장에서 구입한 수박 3~4 덩어리를 이 관세음보살에 공양을 올리면 동짓날 음복할 때까지 썩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곳에 주거나, 다른 부처님 앞에 올려 봐도 동지가지 되면 모두 썩어버리는데 오직 이 관세음보살 앞에 올린 수박만은 동지 때 까지 썩찌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수박을 신비의 수박이라 하여 매우 진귀하며 평화사의 명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수박은 동짓날 법회가 끝난 후 개봉하여 인연이 있는 사람과 나누어 먹는다.

탱화에는 거룩한 후불탱화와 지장탱화 등이 있다.




          <칠성각 현판 글씨>



          <칠성각의 전경. 규모는 작아도 구조가 아담하며 바닥은 온돌로 따뜻한 온기가 돈다.  사불스님은 주로 여기서 기도하고 신도들을
            접견하신다.>



          <칠석각 안에 안치된 칠성부처님.>


칠성각은 11평 규모이며 상부는 목조로 맞배지붕이고 하부는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단을 조성하여 칠성상과 칠성탱화를 봉안하였다.
그리고 사불스님은 종무소가 따로 있어도 이 칠성각에서 낮에는 집무를 하고, 신도들도 칠성각에서 만나 상당을 하고 있으니 사불 스님이 바로 칠성의 화신이 아닐지 모른다.

연륜이 쌓여 자비가 몸에 배인 스님은 욕심이 없고 모두에게 베풀려는 맑고 빈 마음으로 수행을 하고 있으니 그 큰 덕에 감화 되어 전국에서 많은 신도들이 모여 들고 있다.



             <산신각 현판>





            <산신각. 칠성각 옆에 있으며 사찰 규모에 맞게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신각 내부 벽면에 있는 산신탱화와 그 앞에 산신상.>

        
산신각은 4평으로 맞배지붕이고 내부에는 산신상과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대리석 기단 위에 검은 색 돌로 잘 다듬어진 창건주 사불스님의 공덕비. 스님의 공덕은 평화사의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남을
            것이다.>


신도들이 세운 사불스님의 공덕비는 신비의 수박을 먹고 효험을 얻은 신도와 주민들이 사불스님을 위해 절 동편에 세운 것으로 크기는 거북받침이 높이 60cm이고 비신과 개석은 높이가 각각160m 정도이다. 불기 2538년 갑술년 정월 이십육일에 신도회 칠성회원이 건립한 것이다.

기타 경내의 건물로는 “선황데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는 “공민당”이 있다.
이 사당은 창건 년대는 알 수 없으나 상량문에 따르면 도광 13년(183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며 6.25때 당집이 거의 파괴된 것을 과거 성곡동장 임점진(林点,鎭)이  사재를 들어 중수하였다.



         <공민당 형판 글씨>



    <공민당 내부의 있는 그림. 그림 기법으로 보아 연대가 오래 된 것은 아닌데 그래도 100여년 전 부터 전해오고 있다 한다.>

     


           <공민당 전경. 지형이 좁고 가파로와 촬영하는 위치가 좋지 않아 사진에 미흡한 점이 있다. >

                

1995년에 사불이 시비를 지원받아 보수하고 여랑신사라는 현판대신 공민당(恭愍堂)이라는 현판을 걸고 관리와 제사를 지내 오고 있다.
“공민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와가로서 앞 칸은 판자로 벽을 만들었으며 됫 칸은 흙으로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당 내부의 바닥에는 비닐자리를 깔고 상(床)을 놓았으며 정면 벽에는 가로 138cm, 세로 87cm의 부녀신도(父女神圖)를 봉안하였다.

평화에는 다른 절에 없는 유명한 “심비의 수박”과, 공민왕의 전설이 담김 “공민당”과 살아 있는 부천님의 화신인 자비로운 “사불 스님”이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고 시내에서 아주 가까우면서도 산세 좋고 경치 좋은 명당에 자리 잡은 이 절은 특히 접근성이 좋아 많은 젊은 신도들이 참배하며 기도로 소원을 성취하고 있다.



           <산신각 앞에서 보면 동쪽에 공민당이 있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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