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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文殊寺(문수사)

청남이메일
안동의 사찰 文殊寺(문수사)

1. 위치 : 안동시 상아동 산126-1번지
             054- 859- 1391

문수사는 상아동 진모래 마을의 쩌본� 기습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진모래는 진몰개 또는 장사리(長沙里)로도 부르며 안동댐이 조성되기 전 동강의 흐름으로 생긴 긴 모래톱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다.

찾아 가는 길은 안동 시내에서 안동댐 쪽으로 가다가 작은 다리를 건너면 왼편에 서울로 향하는 중앙선 기차 철교가 보인다.
그 갈림 길 왼편에 소망사로 가는 안내판이 있는데, 잘 포장된 그 길을 따라 철교 밑을 통과해서 약 200m 정도가면 오른편으로 난 우회도로가 있다. 그 길로 접어들면 곧 영남산에 흘러내리는 작은 石川(석천)이 있고, 거대한 橋脚(교각)이 보이는데, 거기서 오른편으로 접어 들면 산 중턱에 문수사가 보인다.
문수사 앞까지 모든 도로가 모두 잘 포장이 되어 있어 접근성이 아주 좋아서 차로 쉽게 갈 수가 있어 아주 편리하다.



        <문수사 안내판>


2. 유래와 전설

문수사는 1975년에 안동에 있었던 박시춘 보살이 사재를 들여 극락전 1동, 산신각 1동, 요사 1동의 규모로 사찰을 건립하였다. 당시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규모는 오밀조밀 작으나 사찰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다 잘 구비하였다.

그 후 1978년에 주지인 효성과 신도들이 사찰을 구입하고 재단법인 대각회에 등록하였다. 주지인 효성(曉性)은 고향이 제주도 한림으로 19살에 출가하여 여러 곳의 사찰에서 수행한 덕 높은 스님이다.



        <대웅전 현판 글씨>


       <가파른 돌 계다위에 있는 때웅전. 사진 촬영 할 장소가 불편하여 처다보는 사진밖에 잡을 수가 없었다.>



        <대웅전의 전체 모습>



       <대웅전에 모신 본존불인 석가모니불과 협시 보살님.>



       <대웅전 안에 봉안된 칠성탱화.>



       <대웅전 안에 봉안된 신중탱화>  

3.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가. 대웅전
높이 140cm의 석재시멘트 기단 위에 조성된 이 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겸처마 팔작집이다. 어칸과 협칸에는 4분합 빛살문을 달았으며 건물의 내외부에는 단청을 둘렀다.
대웅전의 좌우 외벽과 뒷벽에는 고승과 선사를 소재로 한 5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 벽화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벽화의 설명 1. >
신라 말기의 고승인 원효대사(617~686)는 많은 일화를 남긴 한국불교의 거성이다.  대사께서 34세 때, 가장 친한 벗인 義湘大師(의상대사)와 함께 불법을 구하려 당나라에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넓은 들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억수 같은 소낙비를 동반한 폭풍이 불어 왔다.
해는 저물어 날은 어두운데, 주위를 살펴봐도 비바람을 피할만한 곳이 없었다.
온 몸이 비에 젖고 피로에 지쳐 기진맥진 할 무렵 겨우 비를 피할만한 땅굴을 하나 발견하여, 굴속으로 들어가서 잠을 자게 되었다.
잠자다가 목이 마른 원효는 물을 찾아 이리저리 더듬으니, 머리맡에 낡은 바가지가 하나 있는데 거기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 물을 마셨다. 물맛이 꿀맛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날이 새고 그 바가지를 보니, 그것은 바가지가 아니고 사람의 해골이 엇다.
지난밤에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 것이다.
그 바가지가 해골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지난밤에 그렇게도 맛이 있던 물이 갑자기 구역질이 나고 뱃속에 있던 모든 것을 다 토하고 말았다.
원효대사는 거기서 모든 것을 깨달았다.

        心生則種種法生(심생칙종종법생)
        心滅則髑髏不二(심멸칙촉루불이)
                마음이 일어나면 여러 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해골과 바가지가 둘이 아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三界(삼계)가 오직 마음뿐이라 하였는데, 내 마음이야 당나라에 가나 고국으로 돌아가나 항상 그 마음이 그 마음인 것을!」
하시며 그 길로 당나라 가시는 것을 그만두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벽화 2의 설명. >
두 번째 벽화는 고려 말의 나옹스님을 소재한 것이다. (위치상 사진촬영이 불가능하여 사진을 소개 못함 점 유감으로 생각한다.)




<벽화 3.의 설명>
방아를 찧으며 공부를 하던 혜능은 수행의 경지가 최상에 달해서 도통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홍인대사가 잘 보이는 곳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적어 놓았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菩提(보리)라는 나무는 본래 없고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명경도 또한 대가 아닐세
本來一無物(본래일무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나리요

이 게송을 본 오조 스님은 혜능스님의 공부가 이미 도통경지에 들어갔음을 알고,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육조 혜능을 찾아갔다.
그리고 쌀을 찧고 있는 혜능을 보고 「쌀은 다 찧었느냐?」        ( 공부는 다 되었는가 하는 뜻)하니,
혜능은
「쌀은 다 찧었는데 아직 키질을 못했습니다.」         (공부는 다 되었으나 아직 印可(인가)를 못 받았습니다. 라는 뜻) 라고 대답하였다.

오조스님은 돌연 지팡이로 방아머리를 탁, 탁, 탁, 세 번 치고 뒷짐을 지고 묵묵히 돌아 가버렸다.

혜능은 선뜻 그 뜻을 알아들었는데, 지팡이로 방아를 세 번 친 것은 밤 三更(삼경)을 뜻하는 것이요, 뒷짐을 지고 가신 것은 뒷문으로 오라는 의미 엇다.
그날 밤  삼경에 조실 방에 가니, 그곳에서는 병풍이 돌려 있고 그 병풍 뒤에 앉아서 오조스님으로부터 법통을 이어 받았다.
그리하여 六祖(육조) 慧能禪師(혜능선사)는 양자강 이남에서 禪宗(선종)을 크게 선양해서 南宗(남종)의 조종이 되었다.




<벽화 4의 설명.>
어느 날 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이조 제7대 임금이 된 세조임금님의 꿈에  형수 문종황후(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에이 더러운 인간아! 아무리 부귀영화가 좋기로서니 어찌 감히 조카를 죽이는가?」 하고 얼굴에 침을 뱉았다.
그런데 그날부터 세조대왕의 몸에는 병명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종기가 나서 아무 약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견디다 못한 세조는 금강산에 들어가 기도를 하려고 길을 떠나 斷髮嶺(단발령)에 이르니, 산색은 청정하여 마치 부처님 몸을 뵈옵는 것 같고 흐르는 냇물은 청정하여 마치 부처님 음성을 듣는 것만 같았다. 세조는 그대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될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좌우에서 만류하는 신하들의 권유로 머리 전부를 깍지 않고 위 부분만 잘라버렸다.
그리하여 그 고갯길을 그때부터 斷髮嶺(단발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단발령에서 발길을 돌린 세조는 금강산 행을 그만두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上院寺(상원사)로 갔다.

날씨가 몹시 무더운 어느 여름 날, 몸 안의 종기가 불어터지는 것만 같았다. 세조는 모든 시중들을 물리치고 홀로 시내에 들어가 더러운 부스럼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등에는 손이 닿지 않아 씻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동자가 「등을 문질러 드릴까요?」하고 소리쳤다.

동자는 오자마자 대왕의 등을 어떻게나 시원스럽게 잘 문질러 주는지 금방 하늘에라도 날아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당시 법에 임금님의 몸에 상처를 내면 살아남지 못하는 엄한 벌을 받도록 되어 있기에, 임금님은 동자를 보고
「동자야, 너 아무한테도 임금님을 봤다고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러자 동자는
「걱정 마십시오. 당신도 아무한테나 나를 봤다고 하지 마셔요.」
「너는 누구인데?」
「예, 나는 문수동자 올시다. 나를 여기서 친견했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왕이 그 말을 듣고 곧 뒤를 돌아보니 머리를 두 가닥으로 딴 동자가 금방 나무사이로 사라지는데 아무리 다시 찾아 봐도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대왕은 너무나 신기해서 그 동자의 모습을 곳 붓으로 그려 모시게 하고 다시 그것을 造像(조상)으로 해서 모시게 하였으니 지금 五臺山(오대산) 上院寺(상원사) 큰방에 모신 문수동자가 바로 그분이시다.
세조대왕은 그날로 모든 병이 씻은 듯이 나아서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그때부터 많은 불사를 하게 되었다.  



<벽화 5의 설명.>
禪宗(선종)의 제 2조인 慧可大師(혜가대사 487~593)는 중국 洛陽(낙양)사람이며 이름은 神光(신광)이고 성은 姬(희)씨다.
낙양 용문의 향산에서 득도하여 儒佛(유불)를 배우다가 32세에 향산으로 들어가 좌선, 40세에 승산 소림사에 達磨大師(달마대사)를 찾아가 법의 가르침을 청하였다.

바위 굴 속에 面壁(면벽) 하고 있는 달마 대사께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혜가는 堂(당) 안에 들지 못하고 뜰에 서서 법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밤새도록 꼼짝도 안하고  달마의 응답만 기다리고 서 있었다.  더구나 그날 밤엔 눈이 내려 혜가의 몸을 덮었으나 혜가는 의연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달마대사는 아침에야 내다보니 어제 찾아온 사람이 눈 속에 그대로 서 있으므로 「그대는 무슨 까닭에 나를 찾아 왔는가?」하고 입을 열었다.

「법의 가르침을 받으려 왔습니다.」라고 혜가는 대답하였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달마께서는 위엄 있는 큰 소리로 「너의 믿음을 바치라!」 하였다.
혜가는 지체 없이 예리한 칼을 뽑아 왼팔을 끊어서 바치니 땅에서 파초 잎이 솟아나 끊어진 팔을 바치었다.
그제야 입당이 허가되었고, 혜가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달마의 가르침을 받고 禪宗(선종)의 第二祖(제이조)가 되었다.




      <극락전 현팔 글씨>



       <극락전 전경. 대웅전보다 한 계단 아래 지은 극락전. 작지만 아담하고 단청이 잘 되어 있다.>



       <극락전에 정성스레 모셔진 부처님.>



        <극락전 안에 신중탱화.>



         <극락전 안에 있는 영단.>



         <극락전 안에 있는 많은 영가의 사진. 모두 문수사에서 천도 받아 극락에 왕생한 분들이다.>



나. 극락전
극락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집으로 크기는 6평이다.
석재시멘트로 30cm의 기단을 쌓고 동그란 주춧돌을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전면의 좌우 칸에는 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내부에는 불단을 조성하여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봉안하였고 탱화로는 후불탱화와 신중탱화를 모셨다.




           <문수사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산신각.>



            <산신각 안에 모신 산신상. >

다. 산신각
산신각은 2평 크기로 극락전과 함께 1975년에 조성되었다.
구조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풍판을 달고 외부에는 단청을 하였다.
내부 중앙에는 단을 설치하여 호랑이를 탄 산신상을 봉안하였다.

라. 기타
1985년에 대웅전과 함께 건립한 신도회관과 요사 1동이 있다.
신도회관은 총30평의 콘크리트 슬래브 건물로 법회와 행사의 장소로 이용되며. 요사는 스님이 거처하는 곳으로 창건 당시에 조성된 요사가 낡아져서 헐고 근년에 개축한 건물로 총 26평 규모의 콘크리트 슬래브 집이다.
스님은 평소 이 요사에서 기거하며 기도와 수행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와는 오래도록 알게 지내며, 학식이 높고 세상을 달관한 혜안이 잇어 옛날에는 자주 찾아가서 대화도 하고 가르침도 받던 아주 존경스러운 스님이시다.



          <극락전 옆에 있는 문수사 종. 이 종소리 울리면 모든 중생계의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지리라.>



           <문수사 전각에 풍경. 춘풍추우 바람속에 은은히 울려 산사를 찾는 사람 가슴에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문수사의 약수 바위 틈에서 나는 이 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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