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寶林寺) 청룡.
소재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迦智山(가지산)에 있는 절.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가운데 제일 먼저 개산(開山)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중심 사찰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체징(體澄)이 860년에 창건하였고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수를 거쳐 오다가 6·25 때 소실되기 전까지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큰 절이었으나, 대웅전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버리고, 옛 건물은 천왕문(天王門)· 사천왕(四天王)· 외호문(外護門)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부도(浮屠)와 석탑(石塔)은 타지 않아 많은 문화재가 있다.
1) 연못을 매워 절터를 잡은 寶林寺(보림사)
寶林寺(보림사)의 절터는 원래 물이 깊은 못이었다는데, 신라의 명승 지눌(知訥)이 절을 짓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좋은 터를 찾던 중 이곳 迦智山(가지산) 가에 도달해 살펴보니, 지금의 절터가 풍수지리적(風水地理的)으로 나무랄 대 없이 좋은 터였으나 불행하게도 물이 가득한 못이었다.
지눌은 그 못을 메우고 거기 절을 짓기 위해,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도술을 부려 여러 사람에게 눈병을 앓게 한 뒤, 그 치료방법으로 누구든지 눈에 병이 있는 사람은 장흥 가지산 아래 연못에 돌 한 덩이와 숯 한 덩이를 던져 넣으면 눈병이 낫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자 눈병을 앓은 사람은 다투어 못을 찾아가서 돌과 숯을 던져 넣어 얼마 뒤 연못은 편편하게 매워졌다.
이렇게 해서 못이 메워지자 그 안에 살고 있던 뱀 · 이무기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청룡(靑龍)과 황룡(黃龍)만은 끝까지 나가지 않고 그 터에 버티고 있으므로 지눌(知訥)이 지팡이로 쳐서 쫓아냈다.
못에서 쫓겨난 두 용은 그곳 용소(龍沼)에 이르러 서로 승천(昇天)하려고 싸움을 벌이다가 청룡(靑龍)이 날쌔게 꼬리를 치는 바람에 그 꼬리에 마자 산기슭이 도막나면서 패어 용소가 생겨났다.
결국 청룡(靑龍)은 싸움에 이겨 승천(昇天)했으나 황룡(黃龍)은 피를 흘리며 돌아다니다가 죽고 말았는데, 이때 넘은 고개가 현재 장흥의 “피재”이고 죽은 자리가 장평면 청룡리라 한다.
그리고 용소가 위치한 마을 이름도 용문동(龍門洞)이라 하며, 늑룡(勒龍)이라는 마을이 그 이웃에 있고, 부산면과 장평면의 경계에는 용두봉(龍頭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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