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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西岳寺(서악사)

청남이메일
西岳寺(서악사)

1.位置(위치): 안동시 태화동 604번지
                   054- 852- 9126

서악사는 안동시 태화동 경덕중학교 뒤 태화산 기습에 자리 잡고 있다.
시내에서 서쪽 외곽에 있는 이 지역은 토지구획정리와 더불어 주변 환경이 주택지로 개발되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나 오히려 초행길인 사람은 바둑판과 같이 정리된 골목길과 비슷비슷한 주택으로 인하여 헤매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장 손쉽게 찾아가는 길은 중아 고등학교 정문까지 가서 담장을 끼고 서쪽으로 l00m 정도 가면 좌측으로 대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산 중턱에 우뚝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누각을 찾을 수 있다.

이 누각이 광감루이고 누각 서쪽에 서악사가 자리잡고 있다.


        
<가파른 돌계단 위에 서악사 정문이 보인다.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계단석으로 이용한 관계로 울퉁불퉁하여 잘못하면 넘어 질 위험마저 있어서 계단 한 가운데 단단한 난간을 만들어 노약자 들이 손으로 잡고 안전하게 오르도록 배려하였다.>




        < 서악사의 현판. <태화산 서악사>라 적혀 있다.>


최근 시세가 커지자 서악사가 위치한 태화산은 도심 속에 공원으로 변모되고 있다.

서악사의 뒤쪽인 안동시 옥동지역에도 신시가지 개발로 구획정리가 끝나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따라서 태화봉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건강증진을 위한 등산로로 각광 받고 있으며 천년 고찰 서악사와 관왕묘가 자리잡고 있는 신앙 공간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더욱이 이곳으로 떨어지는 석양이 아름다워 西岳寺樓前日落(서악사루전일락)이라하여 안동팔경 중 하나로 꼽혔다.

2. 유내와 전과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인 서악사는 본부(本府)의 四嶽(사악) 중의 하나로 지덕을 돕기 위한 비보사찰이다.

본부의 사악은 동은 동악이라 하며 절이 있다.

안동부의 동쪽 7리에 있으며, 남은 남산인데 순천사가 있다.
부의 남쪽 15리 쯤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었다.
서쪽에는 서악이 있는데 절이 있다. 바로 서악사이며 부의 서쪽 5리에 있다.
북쪽에는 금학산인데 수정사라는 절이 있다. 부의 북쪽 35리쯤에 위치한다.

본부의 호장이 매년 계절 마다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다.

四嶽東曰關 東嶽有寺 在雰七里 南曰南山有 順天寺在 府南十五里 今廢 西曰西嶽有 寺在 府西五里 北曰琴鶴山 有寺曰水晶 在府北三十五里 本府戶長庶每年四時 備祭處祀
                永嘉誌 券之二 山川條

호장은 고려 때 향리의 으뜸으로 신라시대에는 촌주, 고려 초에는 당대등 이라 이르다가 고려 6대 성종2년(983)에 이 이름으로 고쳐서 조선조까지 사용 하였다.

        
          서악사 정문에 그려져 있는 서악사의 수호신인 금각역사. 양쪽 문에 다 있다.
金剛(금강)은 원래 八大菩薩(팔대보살)이 化現(화현)하여 나타난 八大明王(팔대명왕)을 말한다.  明王(명왕)이란 보통의 방법으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忿怒(분노)의 상으로 나타난 尊(존)을 말하며, 八大金剛(팔대금강)은 다음과 같다.
        ① 靑除災金剛(청제재금강)
        ② 碧毒金剛(벽독금강)
        ③ 黃隨求金剛(황수구금강)
        ④ 白淨水金剛(백정수금강)
        ⑤ 赤聲火金剛(적성화금강)
        ⑥ 定除災金剛(정제재금강)
        ⑦ 紫賢神金剛(자현신금강)
        ⑧ 大神力金剛(대신력금강)
이들 금강역사는 어떤 무기로서도 당할 수 없는 金剛杵(금강저)를 손에 들고 항상 부처님 곁에서 호신역을 하고 있다.

본부의 사악 중의 하나인 서악에 자리 잡은 서악사는 본부의 방진을 비보하기 위한 사찰로 기록되어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이들의 모습도 다양하며, 인도에서는 裸身(나신)으로 나타나고, 중앙 아세아 동쪽에서는 무장한 무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중국 고래의 力士(역사)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며, 해이한 마음으로 사찰의 경내를 배회하다가 이들 금강역사의 분노의 찬 무서운 모습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고 정신이 반짝 든다.
그리하여 긴장되고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존상을 우러러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본부의 사악 중의 하나인 서악에 자리 잡은 서악사는 본부의 방진을 비보하기 위한 사찰로 기록되어있다.

「악사는 부의 서쪽 5리 지점에 있으며 본부 사악의 하나이다. 역시 방진을 비보하는 것이다. 석불이 두 개가 있는데 모두 동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각기 한 쪽다리를 펴서 흘러오는 물을 차는 모양을 하였다.
또 두 불상 모두 양손을 들고 있는데 오른손은 물러가는 기를 끌어안는 모습이며 왼손은 오는 기를 흔들어내는 모양이다.

모두 오는 기와 가는 기를 조화시켜 흩어지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것이다.

西嶽寺在府西五里 本府四嶽之一 亦爲裨補方鎭者 有石佛兩像皆向東南 各展一足若蹴破來水然 各揚兩手以右手把抱去氣以 左手簛揚來氣 皆欲使來去之氣 調和不散失云
       永壽誌 券之六 佛宇條

위의 기록으로 미루어보아도 서악사의 창건 시기나 내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른 몇몇 자료도 영가지와 별 차이가 없어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서악사의 천불전. 불교는 다신교이다. 도를 이루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있다. 너도 나도 모두 부처가 될 수 있고 또한 지금까지 성물한 사람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하여 천불 만불이 있을 수 있다.>



           <천불정의 현판.>

서악사에서 소장 하고 있는 사기(寺記)인 서악사기(西嶽寺記), 태화산 운대사 상량기문(太華山雲臺寺上樑記文), 극락전 삼존불상 개금기(極樂殿 三尊佛改金記)에도 사찰의 자세한 내력에 대해서는 기록 하치 못하고 있고 구전되어 오는 사찰의 창건과 사찰의 명칭 그리고 영조 이후의 극락전을 중창한 사실들에 대하여 적고 있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서악사의 창건은 신라 말 경문왕(景文王) 때 도선국사에 의하여 세워졌다.
사찰의 명칭도 창건당시에는 운대사(雲臺寺)였다가 후에 서악사로 개명 되었다.

개명된 이유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본부의 사악의 하나인 서악에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서악사기나 운대사상량기문 같이 현재 남아있는 자료들은 주로 영조 때 이루어진 극락전 중창불사 이후의 사실들을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록이 쓰여진 1800년대에는 이미 옛날의 기록들은 모두 없어져 참고 할 만한 자료들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같다.

앞의 기록들에 의하면 거의 폐사가 된 이절에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진 것은 벽파 해운이 법주(法主)로 있던 영조 24년(1748)이다.

이 보다 4년 앞선 갑자년(1744)에 태화산 중턱에 있던 절을 아래로 옮기고 좌우에 승사(僧舍)를 지었으나 법당은 짓지 못하였다.

4년 뒤인 1748년 광수(廣守), 최상(最尙), 굉후(宏後) 3인이 풍산헌 삼백사(三百寺)의 오래된 목재를 옮겨서 법당을 짓고 학가산 백운암에 있던 삼존불을 옮기고 이듬해 이 삼존불에 다시 금을 입히는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하였다.

이 삼존불은 현재 극락전에 봉안 되어있다.
극락전은 영조 당시에 삼백사의 구재를 옮겨지었다는 기록외에는 중수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건물로 생각된다. 본부 사악의 하나인 서악의 허한 기를 보충하고 지덕을 쌓아 제액초복하여 길한·기운은 받아들이고 갈무리하며 흥한 기운은 내몰고 막음으로서 평안을 누리고자 서악주위에 여러 가지 비보압승물을 세우게 된다.

영가지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서악(西嶽)의 비보압승물을 살펴보면, 먼저 숲을 조성하여 허한 기운을 보충하기위한 칠림(桼林)의 기록이있다.

칠림은 서악의 동쪽에 있는 모은루 서쪽에 있다.
서쪽으로는 내산이 있는데 굶은 호랑이 형상을 하고 바로 본부와 마주 하고있는 모양이 매우 흥하였고, 또 계암이 있어서 역시 흥한 모양을 하였다.

이 칠림이 있음으로써 그 흥한 것을 가렸다.
산 밑에는 깊은 못이 있어서 그 형상을 삼켜 가리기도하고 내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종이를 만드는 절구를 두고 그 기운을 찧어 부수었다고 한다.

桼林在西岳東 慕恩樓西 西有來山如餓虎形 直臨本府狀甚凶 有鷄巖亦凶狀 有是桼林以藏之 其山下有灑池 呑泄其形又置紙擣破其氣云
        永嘉誌 券之五

위의 기록에 나오는 모은루는 천순(天順) 갑신년(1464)에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정해년(쩐67)에 교체된 한치의(韓致義)가 세운 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서악의 서쪽에 있는 내산이 굶은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고 계암이 있어 이 또한 흉하였는데 칠림을 조성하여 흥한것을 가렸다고 한다.

산 밑에는 서영지(西映池)를 파서 내산의 굶은 호랑이 기운을 삼켰다고 한다.

3.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 극락전 현판. 지금 수리중이여서 전경 사진촬영이 불가능하였다.>



          <극락전에 모셔진 삼존불상.>



         < 극락전 안에 지장탱화.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을 묘사한 불화로,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많이 봉안된다. 이 탱화의 기본형은 지장보살과 좌우보처(左右補處)인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중심으로 명부시왕(冥府十王)·사자(使者)·장군(將軍)·졸사(卒使), 사방을 지키는 호법신 사천왕(四天王)을 안배하는 것이 통례이다. 서악사의 지장탱화도 대략 이 범주의 탱화이다. 참고로 지장탱화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① 지장독존도(地藏獨尊圖), ② 지장삼존도(地藏三尊圖), ③ 지장삼존신중도(地藏三尊神衆圖), ④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등이다. >



          <극락전 안에 신중탱화.
부처님과 불법을 옹호하는 호법신장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주존이 동진보살이고 그 위쪽에 제석천왕과 대범천왕, 일천자, 월천자, 산신, 용왕신, 서낭신, 조왕신 등 각 신장들을 24위, 34위, 104위까지 그려 넣은 불화인데, 서악사 신중탱화에서도 여러 존상을 찾아 볼 수 있다. >



          <극락전 안에 아미타불상. 손의 수인은 무외인을 하고 있다.>



 <고색이 찬란한 극락전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이는 단청.
옛날에 잘 한 단청이 세월의 힘으로 이렇게 형용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상으로 변해 있다. 원형이 길이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이 신묘부비한 색상은 지금 어떤 기법을 써도 다시 재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노하우가 가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절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기 간절히 바란다.>
         


極樂殿(극락전)
서악사의 본전으로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중정에서 250cm정도 자연석 석축을 쌓고 자연석 기단위에 주출돌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3칸, 측면2칸의 크기이며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사용하였다.
이 건물은 영조 때 삼백사의 구재를 옮겨지었다는  기록 외에는 중수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건물로 추정된다.

공포는 다포양식에 익공형을 가미한 건물로 부연을 달아 다른 건물보다 크고 단청이 잘되어있다.
건물의 정면 어칸과 좌·우협칸에는 사분합 넉살문이 설치되어있고 좌측면과 우측면의 전면에도 외문으로 된 넉살문이 나있다.

극락전의 내부에는 마루를 깔고 어칸의 됫 벽에서 약60cm 정도 띄워서 볼벽과 불단을 조성하여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두 건물 사이로 보이는 누각은 서악사와 나란히 자리 잡은 <관왕묘>이다.
관왕묘(關王廟)는 관우(關羽)를 신앙하기 위하여 건립된 묘당(廟堂)으로 관성묘(關聖廟)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부터 관왕묘를 건립하여 일반 서민에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정유의 왜란 때에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관왕묘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주불은 좌불이며 좌우 협시보살은 입상이다.

이 삼존불은 학가산 백운암에 모셔져있던 것을 백운암이 폐사 되자 이곳으로 옮겨 왔고 이듬해 삼존불에 금을 입히는 개금불사를 하였다고 개금기에 기록 되어있다.

첫 개금불사가 1749년에 있은 후에도 3차례 더 개금불사가 있어서 불상의 보존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법당의 천정은 우물 천정으로 되어 있고 내부에 범종이 걸려있다.

좌측 문 위에는 삼존불의 개금불사에 대한 기록인 극락전 삼존불상 개금기현판이 걸려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極樂殿三尊佛像改金記
太華山雲臺寺羅代古刹而 世稱西嶽云者寺 在安東邑之西岳也創如 史文獻無徵不可考矣 英祖二十四年甲成辰創極樂殿 鶴駕山白雲庵 三尊佛像移安而雲翌年己巳有碧波大師改金越乙卯 月虛禪師改金而伊來年華久遠 金色濕廢昭和十五年八月十五日 住持九峯大師與化主李晋光 華宣誓于佛前竭力 彈誠于淸新大衆 受淨財 證師總ニ百金圖改金利成佛事回向於是玉毫騰輝金色炳耀 遂使世人油然興起信仰之心何其題哉大凡功德之成就必由其人而不記蹟而垂後則래熟知夫今日改金佛事之有功乎不撥妄拙爲之記而列有功據主芳名于左
        佛紀二ニ千千九百六十七年 天中節 信徒朝本東元記

극락전의 성보는 다음과 같다.
본존불인 아미타불은 흙으로 제작되었으며 크기는 높이100cm, 너비77cm이며 좌불이다.
좌·우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나무로 제작하였으며 크기는 둘다 높이106cm, 너비44cm인 입상이다.

본존불의 뒤에 있는 후불탱화는 삼베와 한지를 이용하여 그렀고 크기는 가로 239cm, 높이 153cm이다. 본존불의 좌측에는 지장탱화를 봉안 하였다.
1989년에 제작한 것으로 한지와 비단에 그렸다. 크기는 가로 230cm, 높이150cm이다.

우측에는 신중탱화를 봉안하였다. 제작은 1989년이며 크기는 지장탱화와 같다.

범종은 1980년에 제작하였는데 재료는 동을 사용하고 크기는 구경 60cm, 높이 100cm이다.


           <돌계단 위에 있는 삼성각.
불교가 우리나라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민간 신앙인 산신신앙과 도교의 칠성신앙 등을 불교가 수용하면서 생겨난 단각이 삼성각(三聖閣)이다. 곧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모신 경우를 삼성각이라하며, 각각 따로 모셨을 때는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이라 불린다. 법당 뒤쪽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신다. >



            <산신각 내부의 탱화. 좌로부터 독성탱화, 아미타 탱화, 산신탱화.
어느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홀로 공부해서 훌륭한 阿羅漢果(아라한과)를 얻고 緣覺(연각)을 이룬 성자가 있다.  바로 「나반존자」 그분이다.
옛날 그는 혼자서 도를 깨친다는 큰 꿈을 안고 홀로 天台山(천태산)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바위 위에 정좌하고 깊은 定(정)에 들어가서, 釋迦牟尼(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것처럼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서 만고에 빛나는 대 성자가 되었다.
나반존자의 스승은 하늘의 뜬 구름이요, 계곡을 흐르는 물이요, 철따라 우는 풀벌래들이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대자연의 운행하며 철철이 변하는 무상한 산천의 경치가 모두 그의 스승이 였다.>
  

나. 山靈閣(산영각)
극락전의 우측 조금위에 자연석 기단과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줬다.
정면 1칸, 측면1 칸의 작은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에 풍판이 없다. 건물 내부에는 마루를 깔고 후면 벽에는 불단을 설치하고 좌측으로부터 산신상· 독성상·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삼성각으로서 칠성신이 아닌 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이하나 약사여래불을 모실 전각이 없어서 이곳에 봉안한 듯 하다.

약사여래불 뒷벽에 칠성탱화를 모시고 있다. 성보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약사여래좌상은 석조 개금으로 1962년부터 이곳에 모시고 있다.
크기는 높이5Ocm, 너비43cm이다.
독성상은 흙으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높이 46cm, 너비29cm이다.
산신상은 돌로 제작하였고 높이 44cm, 폭118cm이다.

벽면의 탱화는 산신각 좌측에 산신템화, 우측에 칠성탱화를 모시고 있으며, 크기는 높이 15cm, 너비110cm정도이다.

다. 凝香閣(응향각)

극락전의 좌측에 자연석으로 기단과 주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현재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지붕은 흩처마 맞배지붕에 풍판은 없다.

정면의 양쪽에 반 칸 크기의 퇴를 내어 수납공간으로 사용하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좌측 한 칸은 주지가 사용하고 있으며 종무소를 겸하고있다.
우측 2칸은 통칸으로 방을 꾸였다. 좌·우 협칸에 출입문으로 띠살문을 달았고 어간에는 머름중방을 설치하여 문을 열었을 경우에도 밖에서 방안이 잘 보이지 않도록 하였으며 작은 살창과 여닫을 수있는 띠살문을 달았다라.


           <뜰에 있는 오래된 석탑.>



           <이 당우에 현판을 미처 보지 못하였는데 아마도 선설당이 아닐까.>



          <알들이 가꾼 뜰 아래 국화가 심겨 있다. 꽃을 피우려는 스님의 마음이 또한 중생의 마음에도 똑 같이 번뇌를 끊고, 열반의 꽃을 피워 주려고 것이 아닐까. 이 장면을 바라보니 스님의 정이 느껴진다.>  

          
라. 說禪堂(설선당), 尋劍堂(심검당)
응향각 앞에 있는 요사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보수를 하면서 개량하여 지붕과 기둥을 제외하고는 옛 모습을 찾기 어렵고 내부에도 벽을 헐고 넓은 공간을 꾸며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서악사 천물전의 내부.
천불전에는 보통 천불을 모시거나 과거 천불. 현재 천불. 미래 천불 하여 삼천불 등을 모시는 경우도 있는데 다불사상(多佛思想)에서 온 것으로 보통 현겁 천불(賢劫 千佛)을 주로 모시므로 천불전을 많이 조성 한다. 누구든지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을 상징하는 전각이다. 서악사는 천불을 모신 것으로 생각된다.>



         <썰렁한 가을이 와서 춥을가바 부처님께 옷을 입혔다. 스님의 따스한 마음이 읽어 진다.>



         망자의 명복을 빌어 주는 서악사 영단.
적혀 있는 글씨는 다음과 같다.
나무 좌우보처 관음세지 양대보살(南無左右補處觀音勢至兩大菩薩)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南無 極樂導師 阿彌陀佛)
나무 접인망령 인로왕보살(南無 接引亡靈 路王菩薩)
모두 망장의 연혼을 편하게 인도해주시는 불보살의 명호이다.>




         <옷을 입은 부처님이 많다. 아마도 겨울에는 난방도 해주실가?>



         <천불전 안에 있는 종.>



         <도솔천 내원궁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닷집. 사진의 상태가 나빠 실물과 너무 거리가 멀다. 실제로 보면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아무리 눈이 무딘 사람이라도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마. 千佛殿(천불전)
산령각 앞에 새로 신축한 건물이다.
외관만 마무리되었고 아직 내부공간과 단청은 되지 않았다.
이 전은 본전인 극락전이 좁고 협소하여 신축하였다. 극락전의 삼존불을 이곳으로 옮기고 목불로 된 천불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현재 천불상을 조각하고있다.
다듬돌 3충 기단과 원형 주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고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을 사용하였다.


          <이 당우에 종무소와 공양간이 있다. 여기서 차 대접을 받은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새벽에 찾아가 스님들이 예불을 올리는 시기이므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왔다. 아침햇살이 당우에 비치는 것이 보인다.>


서악사의 벽화

       <毘藍降生相(비람강생상)
비람강생상은 아기 부처가 태어나는 장면이다.  마야부인이 궁전을 떠나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산기를 느껴, 無憂樹(무우수) 나무 가지를 잡고 서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아기를 낳는 장면이다.
태어난 아기는 한쪽 손으로 하늘을, 또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외친다.
   옆에서 시봉을 들던 시녀들과 온 천지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온갖 동물들과 식물들까지도 아기부처님의 탄생을 한없이 기뻐하고 축하하였다.  
   


         <降兜率相(강도솔상)  
마야궁에서 의자에 앉아 홀연히 잠든 마야부인 꿈에,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장면이 묘사 되어 있다.>

  

        <부처님의 관에서 두 발이 나오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러 제자들을 데리고 「구시니가라」 성밖에 무성한 「사라수」 나무숲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기셨다.

발길을 옮기시면 서도 계속 주위를 살피시며 무엇인가 찾는 듯,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듯 마음이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머지않아 이 사바세계에서의 모든 인연을 끊고 영원하고 완전한 해탈의 길을 얻는 無餘涅槃(무여열반)의 길에 드실 때가 바로 눈앞에 다가 왔는데도 기다리던 제자 「가섭존자」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마침 그때 포교활동을 하러 먼 곳에 가 있는 10대제자 중에 한사람인 「가섭존자」와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자 그가 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기다리던 가섭존자는 오지 않았고, 부처님께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아쉬움을 안은 채 열반에 드셨다.
슬픔에 잠긴 여러 제자들은 당시의 장례법에 따라 부처님을 관 속에 모시고 화장을 하려고 관을 불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은 불에 타지 않았고, 불은 모두 꺼저버리고 말았으며, 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뒤늦게 멀리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말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관을 붇들고 한없이 한없이 울었다.
그러자 갑자기 관에 구멍이 뚫리고 부처님의 두 발이 관 밖으로 불쑥 나와 마치 가섭존자를 맞이하는 것만 같았다.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두 발에 얼굴를 비비대고, 두발을 가슴에 안고 그칠 줄 모르고 슬피슬피 통곡하였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부처님의 마음과 가섭존자의 마음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以心傳心(이심전심)의 슬픈 이별은 드디어 끝을 내렸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관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마치 가섭존자를 기다리고 계셨는 듯 아무 일 없이 장례는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鹿野傳法相(녹야전법상)
보리수나무 밑에서 도를 깨쳐 부처가 된 석가모니는 제일 먼저 향한 곳이녹야원이다.
거기에는 처음 함께 수도하던 다섯 비구들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행주의를 버린 태자와 헤어져 녹야원으로 가서 수행하고있던 다섯 수행자는 어느 날 태자가 자기네들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태자가 성도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은 서로 태자에게 알은체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태자가 곁에 이르자 자기네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자리를 권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阿若憍陣(아약교진) 등의 처음으로 가르침을 폈으니 이것을 佛法(불법)의 첫 펼침, 즉 初轉法輪(초전법륜)이라고 한다.
이때 부처님은 5비구에게 출가수행자는 慾樂(욕락)과 苦行(고행) 두 극단을 버리고 中道(중도)를 취해야 할것을 가르쳤으며 四聖諦(사성제)의 법문으로서 그들을 깨우쳐 진리의 세계에 눈뜨게 하였다.>


    서악사 극락전의 주련.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념처)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懶翁(나옹)스님 자매-

【解】
        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실까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말 것이니
        생각 생각 이어가다 생각조차 끊긴 곳에 이르면
        六根(육근)의 문에서 성스러운 금빛 광명 찬란하게 나오네
【註】
無念(무념)...생각하는 대상의 상(相)을 초월한 진여의 본성을 관하여 마음까지도 여이는 것.
六門(육문)...六根(육근)의 문. 六識(육식)이 六境(육경) 「眼境(안경) 耳境(이경) 鼻境(비경) 舌境(설경) 身境(신경) 意境(의경)」을
              인식하는 경우 그 근원이 되는 여섯 가지 뿌리. 즉 眼根(안근) 耳根(이근) 鼻根(비근) 舌根(설근) 身根(신근)   意根(의근)을 말한다.
【解說】
아미타불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여 잠시도 잊지 말고 생각하며 그의 감화와 원을 나의 수행의 지표로 삼고 귀의하면 결국 성불의 경지에 이루게 되리라는 교훈이 담긴 나옹스님과 그 여동생의 문답 형식의 글이다.         


서악사 천불전의 주련  
          
                                     
          
   刹塵心念可數知              찰진심념가수지
   大海中水可飮盡        대해중수가음진
   虛空可量風可繫        허공가량풍가계
   無能盡說佛功德        무능진설불공덕

        세계 티끌 모두다 새여 알수있고              
        가없는 바닷물을 모두 마셔버릴수도 있고
        허공을 헤아리고, 바람또한 붙잡아 맬수 있어도
        부처님의 크신 공덕만은 능히 다 말할수 없네

[註]        한량없이 크신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한 게송.



        <서악사의 창고.>



         <서악사 바로 서쪽에 안동신신들의 등산 길인 태화봉 등산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통해 등산을 하며 서악사를 동시에 참배도 한다.>



         <절 언덕에 조그마한 땅도 놀리지 않고 콩과 피마자 등 작물을 심어 가꾸고 있다. 알뜰한 스님의 마음이 엿보인다.>



         <올해도 콩을 심어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둑의 보호를 위해 개간하는 것을 조금 고려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폭우로 산태가 나면 더 큰 손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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