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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廣興寺(광흥사)

청남이메일

안동의 사찰 廣興寺(광흥사)

1. 위치: 안동시 서후면 지품리 813번지
            054- 841- 6848
            054- 853- 0848

안동에서 풍산 방면으로 4km 정도 가면 조선 세조(世祖) 때 이곳을 지나가는 관리나 선비들이 날이 어두워지면 묵었던 두솔원(兜率院)이 있었다.
이곳에 석불(石佛)을 세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기도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이 이곳을 지날 때 말발굽이 붙어서 鳥嶺(조령)을 빨리 넘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진다.


         <학가산 등산로 가에 있는 광흥사 안내 간판.>

현재에는 두솔원이나 석불은 모두 없어지고 국도변에 「학가산 광흥사」라 적혀 있는 표지석만 서 있다.
두솔원에서 우측으로 향하면 응마(龍馬)가 태어나 이개리(耳開里)에서 귀를 열고, 이곳에서 큰 울음을 울었다는 데셔 유래된 명리(鳴里)를 지나 학가산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가면 광흥사에 닿을 수 있다. 두솔원에서 약 9km  거리이다.

광흥사가 위치한 곳이 자품리(者品里)인데, 구한말(舊韓末) 이 마을에 학림공(鶴林公)이란 분이 16세에 과거에 등과(登科)하여 정6품의 벼슬을 제수 받은 후 공의 덕망과 인품이 이웃 마을에까지 알려져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때부터 마을 이름을 재품(才品)이라 불렀으나 일제 강점기 때에 인재가 많이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한 일본인들이 '재(才)' 자를 '자(者)' 자로 바꾸어 자품으로 부르게 되었다.


       <광흥사로 접어드는 갈림길에 세운 돌 안내 석>


자품리로 가는 이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으나 중간 중간 갈림길이 있어 자칫 길을 잘못 들어설 수도 있다.
갈림길에는 광흥사로 가는 표시가 나무판에 적혀 있으나 유심히 보아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작은 크기이다.

창풍마을에 조금 못미처 광흥사라 적혀 있는 안내판을 따라 좌회전하여 조금 더 오르면 커다란 은행나무와 일주문(一柱門)을 만날 수 있다.


       <광흥사의 일주문. 옛날 걸어서 절을 찾을 때는 일주문을 통해서 갔지만 지금은 대부분 차로 가니 일주문 옆으로 나 있는 차길을
        달려서 절에 간다.>


       <천등산 광흥사라 적힌 일주문의 현판.>

광흥사는 내게 큰 추억이 있는 곳이다.
소년시절 이 절에 공부를 하러 간다고 짐을 싸가지고 가서 며칠을 지냈는데, 어느 날 오후 어머니가 와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잡혀 돌아 간 적이 있었다. 만일 그냥 두었다면 나는 아마도 출가승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까마득한 옛 이야기이다.


       <일주문 옆에 서 있는 커다란 응행나무. 광흥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수령이 무척 오래다.
         지구상에 사는 동불중에 가장 오래된 동물은 바끼벌래와 도룡용이라 하고, 식물 가운데는 메타새코아와 은행나무 라고 한다.
         그래서 은행은 계절과 토질에 잘 순응하여 겨울이 되면 스스로 낙엽이 저셔 혹한을 참으려고 준비를 한다.

         곱게 물든 봉정사 단풍을 잘 골라 예쁘게 코팅해서 작품으로 만들면, 봉정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줄 좋은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에 주지스님으로 오신스님은 오래도록 부석사의 총무스님으로 계시던 덕이 높고 공부가 하늘에 닿았으며, 능력있는 분이
         이니 스님의 원력으로 봉정사가 더욱 발전하고, 스님을 의지해서 많은 신도들이 운집해서 옛날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

2. 由來와 傳說
광흥사의 창건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없다. 다만 신라 문무왕 때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신빙하기는 어렵다. 영가지에 따르면 광흥사는 부의 서쪽 30리 떨어진 학가산의 남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廣興寺在府西三十里鶴駕山南
                        永嘉誌 卷之六 佛宇條


         <광흥사 중창 사적과, 일현선사를 추모하는 비와 부도가 좌측에 있다.
           제행은 무상하다. 한 시절 우리보다 먼저 살며 많은 업적을 남기신 큰 스님도 과거라는 영원한 장막 속으로 사라저 버리고
           스님을 아끼고 추모하는 사람의 마음을 달랠려고 여기 작은 부도 한기를 세워두었다.
           세월은 물같이 흘러 가는 것. 조금도 쉬지 않고 흘러 가고, 그 속에 우리 인생도 세월 타고 물같이 바람같이 지나가고 있으니
           내 몸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도를 이루도록 공부하고 기도하여 깊고 오묘한 부처님 법과 만유에 보편 공통인 인과의
           깊은 법리를 이해해서 생활화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믿어 마지 않는다.>



          <거대한 응행나무에는 은행열매도 많이 달린다. 어느해 가을 광흥사를 찾아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은행 열매를 많이 주어, 껍질을
            까려고 광흥사 아래 개울가에서 손으로 비벼서 깟더니, 은행 독으로 언몸에 옻이 올라 무척 고생을 했다. 부처님 과일을 무단히
            집어 온 벌로 생각하고 치료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고운사의 말사인 광흥사는 초창 당시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으나, 1946년 큰 화재에 의하여 대웅전(大雄殿) 6칸이 소실되고 1954년에는 극락전(極樂殿)이, 1962년에는 학서루(鶴棲樓)와 대방(大房)이 무너져 현재 응진전(應眞殿), 명부전(冥府殿), 응향각(凝香閣), 산령각(山靈閣), 요사(寮舍)가 남아 있다.

그런데 어제 가 보았더니 대웅전을 새로 지었는데, 극락전과 거리가 먼 입구 쪽에 새롭게 잘 지어저 있었다.

소장문화재로는 보물 제3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취지금니묘법연화경(翠紙金泥妙法蓮華經), 보물 제315호인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65호로 지정된 응진전이 있다.

응진전의 단청은 오래 되어 퇴색되었으나 그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 할 수 없고, 그 앞에 서니 스스로 고풍스러운 거룩함에 마음에 마음이 숙연해 진다.

경내의 은행나무는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에 견줄만하며, 키도 무척 크고 수세도 왕성하다. 용계리 은행은 안동댐 수몰로 높이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뿌리가 끊기고 환경이 달라져 힘을 못 펴고 있는데 봉정사의 은행 나무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힘이 있다.

광흥사는 학가산의 남쪽에 위치하여 그 주위의 지형이 학의 머리와 날개를 펼친 형국이다.
그 중에서도 광흥사가 자리 잡은 곳은 학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날개를 활짝 펼친 모양에 해당한다.

이곳에다 절을 지으면 넓게 일어난다고 하여 광흥사라 이름 하였다.


         <새로 지은 대웅전의 전경. 광흥사 초입인 일주문과 응진전 중간에 있다.
           신앙의 힘을 실로 엄청나고 또한 부처님의 능력은 한이 없다. 이 절의 스님이 목탁만 치고 있는데도 이런 큰 불사가 이루어 지는
           것을 보면 실로 광대무변한 부처님의 능력에 강동되지 않을 수 없다.>


          <대웅전 현판 글씨>

                                        

대웅전의 주련.

佛身充滿練法界(불신충만련법계)
普現一切群生前(보현일절군생전)
隨綠卦惑靡不周(수록괘혹미불주)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제좌)

부처님은 이 법계에 어디 든지 계시고 충만하여
일체 모든 중생들 앞에 어디를 막론하고 두루 나타나시고.
인연따라 감응하여 두루 모두를 깨닫도록 주선 하시면서
항상 그 귀한 보리좌를 떠나지 않으시네.




          <대웅전 외벽의 그려진 화엄변상도.
            선재동자가 깊은 교리를 깨닫고자 스승을 찾아 수행을 길을 떠나서 수행하는 과정을 변상도로 그린 그림인데 그림마다 특이한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하고, 스님을 찾가서 직접 공부하시가 바란다. >


          <대웅전 외벽의 그려진 화엄변상도. 용수사에 가도 화엄변상도가 취근에 글놓은 것이 있다.>


          <대웅전 외벽의 그려진 화엄변상도.
            이 변상도를 보며 화엄의 깊은 사상에 조금식 다가가라고 변상도를 그려 놓은 것을 생각 된다.>


          <대웅전 외벽의 그려진 화엄변상도. 변상도의 설명은 다음으로 미룬다.>


          <대웅전에 안치된 신중탱화.>


          <대웅전에 모신 3존불상. 옛 법당에 계신 부처님을 옮겨 온 것인지 새로 보신 부처님인지 알 수 없지만 상호가 거륵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부님의 미소는 실로 오묘하다.
             부처님이 하하 웃으면 경박해 보이고, 그렇다고 웃지 않으면 너무 준엄해서 접근하기 어렵고 또한 자비롭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부처님의 미소는 어찌보면 읏는 것 같고, 어찌보면 그렇기 않는 것과도 같이 보인다.
            아마도 내 마음이 기쁠 때는 웃는 듯이 보이고, 내 마음이 슬플 때는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대웅전의 탱화. 사진을 촬영할 때는 이 탱화가 무슨 탱화인지 알았는데 지금 사진으로 봐서 정확히 알수가 없어 그냔 탱화라고만
            하였다.>


           <대웅전에 있는 종. 예불 할 때 사용한다.>


           <대웅전의 문. 문살의 아름다운 문양을 살펴보고, 아래 부분에는 도깨비 그림이 글려 있다.
             불교가 토속적인 민속 까지도 포용 할 때, 도깨비도 부처님을 수호하며 불법을 배워 해탈한다는 뜻으로 사찰의 문에는 '
             도깨비의 그림을 그려넣은 곳이 많다.
             푸른 도깨비, 붉은 도깨비..... 도깨비도 그 종류가 낳다.
             안동지방에서는 도깨비라 하지 않고 토째미라 하였다. 낙동강 가에 무척 많아 비오는 여름밤이면 토째비 때가 우글우글 한다고
            하였다. 그 많은 토째비 가운데 부처님에 귀의한 토째비가 법당의 문을 지키고 있다.>



3.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광흥사는 안동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 가운데 하나였으나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다.
1946년에 일어난 큰 불로 본전인 대웅전이 완전 소실되고, 1952년에는 극락전이, 1962년에는 학서루와 대망이 퇴락하여 무너져 사찰의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1946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의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석가모니불과 문수,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는 광흥사의 중심 법당이었다.

대웅전의 위치는 현재 새롭게 지은 일주문과 그 뒤에 있는 큰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전각이 배치되어 있었다.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오랜 세월을 두고 퇴락하여 무너져 옛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광흥사는 그 후 부속 전각의 하나인 응진전을 중심으로 사찰의 건축물들을 재배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광흥사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사찰의 배치를 살펴보면, 입구에 세운 일주문부터 광흥사의 경내가 시작된다.

일주문은 최근에 새롭게 건축하여 말끔하게 단청하였다.
일주문을 지나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이곳부터 광흥사의 각 부속 건물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는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고 극락전 등의 부속 전각이 무너져 그 자취를 찾을 길 없고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복원한 대웅전은 옛 터를 생각해서 이곳에 지었다.

일주문패서 새로 지은 대웅전을 뒤로 하고 산길을 500m 정도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 명부전과 응향각이 배치되어 있고, 그 조금 위쪽에 널찍한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부터 광흥사의 중문격인 문루가 있고, 문루의 오른쪽에 口자형의 요사가채 있고, 왼쪽에 최근에 새로 신축한 요사재가 배치되어 있다.

문루는 이층 구조를 하고 1층에 사찰의 증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폐쇄되어있다.

현재 증정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른쪽 口자형의 요사채에 딸려 있는 중문을 이용 한다.

문루의 맞은편에 광흥사의 본전으로 이용하는 웅진전이 배치되어 있다.



       <광흥사의 전경.
          대웅전을 새로 짓기 전에는 이 법당이 광흥사의 주존을 모신 중심 법당이었다. 해묵은 단청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어 그 앞에 서면
          그 아득한 옛날의 일들이 생각나다. 나는 광흥사에 멀지 않는 풍상에 살았다.
          어릴 때 할머니 치마자락을 잡고 자주 이 절에 와서 바로 이 자리에서 할머니와 함게 절을 하곤 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절대로 다시 못올 우리 할머니는 없고 나혼자 이 깊어 가는 가을에 만상에 젖어 절을 올리고 있다. 사람은 가도 부처님과 광흥사는
          매냥 그대로 있다.
          제행은 무상이라.
          멀이 않는 나 또한 광흥사를 뒤로 두고 알 수 없는 미래 속으로 살아저 가겠지. 그 때 누가 나를 기억이나 해 줄까.>



       <극락전과 그 앞에 있는 2기의 탑.>


        <좌측의 탑은 완전한 형상이 아니고 우측 탑은 조성 연대가 멀지 않다.
          그래도 내 눈에는 허무어진 죄특에 탑에 세월의 때가 묻어 더 진근감이 간다. 시간은 현대과학으로 이룩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의 작용이 깃든 우측의 탑에 더 정이 간다. >


가. 응진전
사찰의 여러 전각들 중에서 응진전은 나한전(羅漢殿)과 함께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곳이 아닌 수도하는 스님들에 대한 신앙의 결과로 나타난 사찰의 전각이다.

나한이란 석가모니의 설법과 가르침을 받은 도적 떼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교화되고 깨달음을 얻어 모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가 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웅진전이나 나한전에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를 모시기도하고, 16나한상을 모시기도 하며 때로는 500나한상을 봉안하기도 한다.

석가모니불에게는 수많은 제자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를 10명 골라서 10대 제자라 한다.


        <응진전 내부의 3존불상.>




        <응진전의 모셔진 나한상. 나한은 부처님 처럼 항상 준엄하고 위험만 부리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장란도 하고 익살도 부리며
           우리 인간과 어우려 주기도 한다. 토속신안의 도깨비와 비슷한 장난끼도 있다고 들었다.>




         <응진전에 많은 나한상.>

10대 제자에는
지혜가 가장 뛰어난 제자인 사리 불
②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제자로 마하목건련
③ 번뇌의 먼지를 모두 털어 없애고 의·식·주에 당착하지 않고 항상 경건하게 불도수행에 정진하는 것을 의미하는 두라(頭陀)의 제일인자인 마하가섭.
④ 눈을 감고도 모든 것을 통하는 천안(天眼)의 제일인자인 아나율
⑤ 지혜가 총명하여 따를 자 없는 수보리
⑥ 설법을 가장 잘하는 부루나
⑦ 논의(論議)를 가장 잘하는 마하가전연
⑧ 계율을 가장 잘 지키는 우바리
⑨ 밀행을 가장 잘하는 라후라
법문을 가장 많이들은 제자인 아난나다.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응진전에 모시는 10대 제자와 나한은 이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소원을 빌면 반드시 그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해서 복을 구하고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진다.

불교의 삼보(三寶)는 불(佛)·법(法)·승(僧)을 가리킨다.

부처님을 가리키는 佛(불)은 모든 번뇌를 이기고 참 진리를 모두 깨달은 완전한 인격자이며 중생을 인도하여 진리를 깨닫고 구제하는 분이다.
法(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교리를 말하며, 僧(승)은 부처님의 설법에 따르고 깨달음을 얻고 도를 밖아 행하는 스님을 뜻한다.

따라서 佛(불)·法(법)·僧(승)의 삼보를 공경하는 사상에서 부처님의 10대 제자와 나한을 숭배하는 신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웅진전이나 나한전에 봉안된 나한은 부처님과 같이 자비롭거나 근엄한 표정을 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나한의 얼굴 표정과 자세, 몸에 입고 있는 복장, 손에 들고 있는 갖가지 도구 등이 다양하며 자유스럽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장난기 있는 표정 등으로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한전의 나한상 뒤에는 나한들이 부처님의 설법에 따라 수행할 때의 이야기나 나한들의 신통력을 소재로 그린 탱화를 봉안한다.

광흥사의 응진전은 1946년 대웅전이 큰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주전(主殿)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중문인 문루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지금은 대웅전을 새로 지었기에 어떻게 이용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주련글의 해석
사진을 촬영하여 올리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5번째 줄 사진을 분실하여 여기 올리 수 없어 죄송하게 생각 합니다.

百億芬陀解四維(백억분타해사유)
三明六浩恢光裏(삼명육호회광리)
法海漫天香篆起(법해만천향전기)
泛泛風流濟世舟(범범풍류제세주)
碧荷影搭現金軀(벽하영탑현금구)
妙音動地雨花浮(묘음동지우화부)

        백억의 부처님들은  온 천지 어디에서나 해탈하시고
        삼명육호의 밝은 지혜 넓게 빛나는 가운데,
        깨달은신 넓은 법의 바다 모든 하늘에 퍼져 향기롭구나.
        이 세간의 온갖 풍류 모두 한데 모아 배로 띄워 보내니,
        푸룬 연꽃 그림자 같은 맑은 마음 몸에 나타나며
        오묘한 진리의 소리 땅을 흔들고 꽃비에 띄워 어네.



문루 밑으로 나있는 10개의 계단을 통하여 사찰의 증정에 오르면 좌·우측에 요사채가 있고 중정보다 250cm 정도 더 높은 곳에 자연석으로 3층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웅진전을 앉혀 놓았다.

중정에서 13개의 계단으로 올라서면 응진전에 오를 수 있다.
응진전은 막돌 허튼층쌓기의 기단에 갑석은 덮지 않고 자연석 주초석을 놓은 다음 기둥을 세웠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에 겹처마이고 단청이 단아하게 채색되어 있으며 양 처마 끝에는 활주를 받치고 있다.

건물의 전면 어간에는 분합으로 된 여닫이문을 내었는데 이것이 법당 안으로 출입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문의 양식은 궁판이 있는 넉살문이다.
좌 우 협칸의 하방과 중방 사이는 흙벽으로 마감하였고 중방 위에는 한 짝으로 된 벽살문을 들어 여는 형태로 처리하였다.
후면은 흙벽 처리를 한 다음 벽화를 그렸다.

응진전 벽화는 선종(禪宗)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본심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과정에 비유하여 그린 심우도(尋牛圖)이다.
심우도는 수행의 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으로써 방황의 실체인 자기 자신의 본심인 소를 찾아서 길을 떠나고 찾은 다음 길들이기를  통하여 깨우침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건물의 내부는 통칸으로 하였으며 바닥에는 청판의 방향과 간격이 다른 독특한방식의 우물마루를 깔았다.

법당 내부의 중앙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대웅전에 모셔져있던 석가모니불을 이곳으로 옮겨와서 봉안하고 있었다.

법당 중앙에 1m 정도의 높이로 불단을 설치한 후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 협시보살로 문수와  보현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양쪽 협시보살 좌우에 아난존자와 가섭존자의 입상을 세워 놓았다.

내부에는 벽에 맞붙여 불단을 설치하고 각기 형태와 표정이 서로 다른 16난한상과 산신상들을 세워서 모시고 있다.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공포는 간포를 설치하고 나머지 삼면에 화반으로 간포를 대신하고 있어 주심포와 다포의 중간적인 격을 보여주며 주심포 양식에서 다포 양식으로 건축 양식이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응진전 앞 중정에는 좌측에 완전하지 않은 여러 개의 탑 부재를 모아 쌓은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오른쪽에 새로운 삼층석탑을 조성하였다.

이 중정에서 좌측에는 요사인 취운헌(取雲軒)과 산령각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이 건물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5호(1985. 12. 30일 지정)로 지정되어 보호 하고 있다.


         <명부전 전경>

                                        

지장전의 주련.
3구와 4구절의 사진 초점이 잘 맞지 않아 흐려보이니,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가서 완전한 사진으로 바꿀 생각이다.

地藏大聖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
恒河沙劫說難盡(항하사겁설난진)
見聞瞻禮一念間(견문첨례일념간)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이여!
        억겁을 두고 설명해도 다하기 어렵나니
        보고 듣고 예배하는 잠깐 사이에
        인천(人天)에 이익 된 일 무량하여라




       <지장전 안에 문직이와 시왕들.>


       <명부전을 지키는 수문장. 우측.  좌측상은 사진 상태가 나바서 등제 불능임.>


        <시왕 상을 전부 촬영 할 수 없어 대충 그 모습을 짐작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문장과 시왕상.>


나. 冥府殿(명부전)

명부전은 인간의 사후세계 즉. 영혼이 가는 저승을 상징하는 전각이다.
명부전에는 저승의 심판관인 10대왕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이라 부르기도 하며, 지장보살을 모시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기라고도 한다.
이 법당에는 저승의 왕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모신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 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왕을 시봉하는 동자상 10구가 모셔지고, 판관, 기록하는 녹사. 문 입구를 지키는 장군 등의 존상을 갖추고 있다.

명부전의 주불인 지장보살은 불교가 이상으로 하는 구원을 상징하는 부처님이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들이 구원받을 때까지 자신이 부처가 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모두 교화해서 성불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단 한 명이라도 구원받지 못하면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보살이다.

자신의 성불을 포기하면서까지 중생 구제에 온 정열을 쏟는 자비심이 충만한 보살인 것이다. 시왕은

죽은 사람이 지옥에 가면 심판해서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다.
지옥을 대표하는 왕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염라대왕도 10대 왕 중 5번째 왕이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의 자비로운 마음에 의지해서 죽은 조상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다.

광흥사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에 겹처마이다. 공포는 역공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5량가구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다듬돌로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건물의 전면 중앙에는 여닫이문을 내어 출입하는 문이 있으며, 좌·우 협칸에는  넉살문을 달았는데 들어 열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 樓閣(루각)
일주문을 지난 후 가장 먼저 만나는 문은 중문 역할을 하는 누문이다.
이층구조로 된 이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지붕의 형식은 맞배지붕에 겸처마를 하고 있으며 풍판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 광흥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평면의 구성은 1· 2층 모두 폐쇄된 구조를 하고 있다. 1층의 경우에는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누하주(樓下柱)를 세웠다. 가운데 칸은 여닫이 문을 달아 사찰의 증정으로 오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좌 우 측면은 벽면을 폐쇄하여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구성 이다. 가운데 칸으로 문을 열고 진입하면 1층 누각 높이와 비슷한 높이의 석축이 쌓여 있고 가운데 10개의 계단을 통하여 중정으로 오르면 웅진전과 마주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누각 앞까지 도착하였으나 여전히 본전은 누각과 요사채에 가려 쉽게 볼 수 없도록 배치하였다. 곧 누각 건물로 시선을 차단시킨 다음 어두운 누 밑을 지나 좁은 계단으로 오르면 넓은 중정과 본전인 음진전을 전개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현재는 누문을 통하지 않고 우측에 있는 요사채의 문을 사용하여 경내 중정과 응진전으로 오를 수 있도록 하여 누문은 폐쇄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다.

누각의 2층도 3칸 모두 개조하여 지금은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누상주(樓上柱)는 누하주보다 굵기가 작은 규모이다. 난간의 설치는 앞과 뒤에 두르고 좌 우 측면은 생략한 구조이다.

라. 山靈閣(산영각)
자연석 기단에 다듬돌 주출돌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띠고 있다.


         <광흥사의 산령각>


          <산령각 내부에 안치된 부처님>


          <산령각 앞 편편한 언더게 세운 팔정도 비.
            불교의 기본 교리는 사성제 즉 [고집멸도] 이다. 즉 인생은 고이다. 그리고 그 고의 원인은 집 즉 집착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구가 집착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것을 멸해야 되는 것이 당연하다. 멸하는 방법을 불교에서는 도를 닦아라
            했다.
            도를 닦는 데도 여러가지 길이 있으나 가장 원초적인 길이 8정도를 닦아 고를 멸하라 했다.
            그래서 여기 8각의 기작은 기둥에 8정도를 모두 세겨 두었다.
            인생을 더 값지게 살려는 분들은 이 작은 비석 앞에서서 고 집 멸 도의 이치와 팔정도를 다시 생각해 보심이 어떠할가.>


마. '寮舍
요사란 절에서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을 말한다. 불사를 관리하고 강당, 선당에서 수행하는·모든 수행자들의 의식주를 뒷받침해주는 생활공간이며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광흥사의 경우 응진전 앞 중정 좌·우에 요사가 있고 명부전의 우측에 응향각이 하나 더 있다.

응진전을 향하여 좌측에 있는 요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겹처마에 주심포 양식으로 최근에 지은 건물이다.

좌측 2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설계하여 이곳에서 주변 경치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취운헌(取雲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나머지 10칸은 모두 방으로 꾸며져 있어서 승려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취운헌 남쪽에 걸려 있는 문곡대사행장(文谷大師行狀)은 이 절에 주석했던 승려의 기록이다.
현재 광흥사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기록이며 그 내용은 문곡대사의 출가 내력과 조선 중·후기 법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취운헌 전경.
             내가 젊을 때 이 청운현 제일 동쪽 방에서 몇일 간 기거 했으며, 출가 할가 염려한 어머니에게 잡혀서 그만 하산한 경험이 있는
             내게 추억의 방이다.
             지금 그 방 밖에 신발이 있는 것을 보니 공부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 듯 하다. 방을 들어다 보고 싶은 충동을 참고 그냥 돌아 섰다.>

                              

취운헌 주련

이 주련도 2번째 줄 사진이 분실되어 다음에 다시 보충할 생각이다.

若人慾了知(약인욕요지)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應觀法界性(응관법계성)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사람들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비춰 관찰할지어다.
일체의 모든 것이 모두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이루어 졌다는 유심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내가 제주도로 관광을 가려 한다면 몸보다 먼저 가는 것이 마음이고, 몸은 마음 따라 가는 것이다.
적절하고 좋은 예가 되었는지 몰라도 세상만사 모두가 마음이 먼저 앞서고, 다음에 행이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체유심조 라고 하는 것이다.>


          <응진전 현판.
            이 현판 글씨는 슨 사람은 더나 갔어도, 글은 남아 있다. 누가 썼는데 언지 섰는지 그런 것은 부처님만 알면 되지 사람은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 현판에는 글 쓴 이의 낙관이나 날자가 없다.
            그런 마음은 내게도 있어 전국 많은 사찰에 내가 쓴 주련 글이나 현판에는 내 이름이나 연대를 기록하지 않았다.
            부처님만 알아 주면 되지 그밖에 그 누가 알기를 바라겠는가. >
  
응진전을 향하여 우측에 있는 요사는 口자(입구字)형의 형태를 갖춘 상당한 규모의 요사이다. 口자형의 요사는 중정과 접하는 쪽이 아닌 3면은 모두 폐쇄된 벽면을 이루고 있지만 중정을 향한 쪽은 정면 4칸에 앞쪽으로 마루를  깔고 이곳을 통하여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중정 쪽을 향한 요사의 전면 좌측에는 신장단을 설치하고 신장탱화(가로 151cm. 세로 131cm)를 봉안하여 사찰을 수호하는 신장을 모시고 있다.

신장단 옆방의 벽면에는 퇴락하여 무너진 극락전의 후불탱화를 걸어두고 있다.
이 탱화는 가로 205cm, 세로 177cm의 크기에 광서(光緖) 12년 병술(丙戌) 3월 초6일 봉안하였다는 화기가 적혀 있다.

또한 이 방에는 여러 대사의 진영이 벽에 걸려 있다.
대사진영(大師眞影)의 크기와 이름은 다음과 같다.

o 인봉당대선사진영(印峯堂大禪師眞影) :가로 77cm, 세로 116cm
o 초원당대선사진영(蕉園堂大禪師眞影) .가로 77cm, 세로 116cm
o 청허당휴정대선사진영(淸虛堂休靜大禪師眞影):가로 76cm, 세로 135cm
o 정엄당대선사진영(定嚴堂大禪師眞影): 가로 84cm, 세로 126cm
o 봉암당대선사진영(鳳巖堂大禪師眞影): 가로 86cm, 세로 120cm

그 밖에 3분의 진영(眞影)이 더 있으나 벽에 걸려 있지 않고 공개되지 않아서 확인하지 못하였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을 비롯한 많은 승려들의 진영은 광흥사가 불타기 전에는 조사당에 모셔져 있던 것인데 화재로 인하여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

이 대사들의 진영은 광흥사에 주석했던 스님들의 진영이아니라고 하나 확실한 것은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口자형 요사의 안마당에는 장독을 보관하는 장독대가 마당의 대부분을 자리 잡고 그 앞에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口자형의 요사로 들어오는 문은 정면 9칸의 칸수 중 좌측에서 3째 칸에 여닫이문이 달려 있다.

현재 사찰 안으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누각의 물을 폐쇄하여 전부 이 문을 사용하여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문을 들어서면 넓직한 봉당이 있고 정면에 가마솥이 걸려있는 아궁이가 세 개, 우측에 가마솥이 두 개와 아궁이가 있고 이곳에서 중정으로 통하는 통로와 요사채의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갈라진다.

광흥사의 또 다른 요사는 명부전의 우측에 있는 응향각이다.
이 건물은 자연석 기단 위에 다듬돌 주춧돌을 사용하여 기둥을 세웠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크기이다. 지붕의 형식은 맞배지붕이다. 건물의 전면 5칸 중 우측 1칸만 벽처리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여닫이와 미닫이로 된 이중문이 설치되어 있다.

4. 소장문화재
가. 翠紙金泥妙法蓮華經(취지김이묘법연화경) 卷 3 · 4
보물 제314호로 지정된 취지금니묘법연화경은 2권 2첩으로 크기는 가로 11cm,세로 31cm 크기이다.
감지에 쓴 금자(金字)는 비교적 선명한 편이며 표장(表裝)은 권3과 권4의 문양이 약간 다르다.
일반 사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제(經題)위에 재법장진언(開法藏眞言)의 부호가 있고, 그 주위에 보상화문이 금니로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다.

잔존 첩책이어서 연화경을 쓴 자세한 기록은 잃었고 다만 권말에 「시주 권도남」의 표시가 있을 뿐이다. 글씨가 매우 창달하고 정성이 깃들여져 있으며, 사경 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된다.

나. 白紙墨書妙法蓮華經(백지묵서묘법연화경)
보물 제315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사경도 2권으로 고려 창왕 원년(1389)에 장묘우가 돌아가신 부모의 일체중생을 위해 사성한 것이다.

위 두 점의 보물은 광흥사의 소유이나 보관상의 문제로 인하여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다. 범종
불교에서 종교적인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소리 내는 일체의 용구를 범음구(梵音具)라 하고 그 중에서 종은 당 외의 종루에 걸어놓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청정한 불사나 범찰(梵刹)에서 사용하는 종을 범종이라 한다.
광흥사의 범종은 1583년에 제작된 신라, 고려 범종의 형태를 따른 종이다.
유곽대의 천판과 상부의 경계처리 수법치나 도식화된 연화문의 상대 문양 등이 조선중의 변모를 보여준다.

아무런 문양도 없는 유두는 화좌도 없이 밋밋한 간지에 표현 되었고, 유곽대도 퇴화된 당초문이 얇게 양각되어 있다.




          <광흥사의 소각장.
            본전과 거리가 멀다.>



          <광흥상의 해우소. 요사가 있는 동편 언덕위에 있는데 거리가 무척 멀다. 겨울 운비라도 얼것같으면 이 먼 길을 어떻게 앙래 했을까
            생각하니 정말로 근심거리 기도 하며 몸에 깃든 찌꺼이가 틀림이 없다.>


          <해우소 뒤로 열린 등산길. 마침 단풍이 든 가을이라 경치가 무척 좋고 맑은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하다. 왔던 날이 가랑비가
           오는  중이라 사진 상태가 나쁘지만 실경은 더 아름다고 좋다.
           잘 다듬어진 아스팔트 길만 걷는 현대인을 위하여 각처게 올래 길을 만든다고 야단들이다.
           그 어디서 만든 올래 길 보다 더 조용하고 경치좋은 이 길을 외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찾아와 보지도 않은 것일까.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며, 나는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또한 나는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를 조용히 생각해 봐라.
           더 깊은 인생의 진가를 거기서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은 깊어 온 천지가 단풍으로 물든 속에 광흥사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우리를 위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
            봉정사에 가서, 그룩한 부처님께 예불도 하고, 훌륭한 스님의 법문도 듣고, 세속과 다른 산의 정기와 법력의 가피도
            받아보며 더 뜻 깊은 인생을 사시기 권하는 바이다.>


          <절에서 아래도 내려본 은행 나무. 동물은 살아 있을 때 체온이 높고 죽으면 싸늘해 지나, 나무는 그 반대이다. 살아 있을 때는
            증산작용으로 서늘하고, 죽으면 더운 기운이 감돌아 화목도 된다. 그래서 여름에 나무 밑에 가면 위에서 서늘한 공기를 아래도 내려
            보내지 주위에 온도 보다 3-4도나 낮을 수 있다.
           내년 여름에는 봉정사 은행나무 아래로 가서 부처님도 친견하고 피서도 하고 일석이조의 이득을 누리면 어떠할 런지.>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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