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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愛蓮庵(애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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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사찰 愛蓮庵(애련암)

소재지: 경북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산 938
           054- 841- 6885

교통편: 안동시에서 예천쪽으로 약 8km가면 [명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서 면도를 따라 약 8Km 학가산 쪽으로 가면 된다.

애련암은 학가산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올라가는 길도 가파르다.
해발 882m나 되는 학가산 정상 바로 밑에 있으므로 애련암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로 절경이다. 멀리 산들이 구불구불 모두 애련암 발아래 기어 있고, 멀리 의성과 예천, 그리고 날씨가 좋을 때면 팔공산도 어렴풋이 보인다고 한다.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 가는데 길앞에 들고양이가 한 마리 앉아 내가 걸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다.
          

특히 밤안개가 끼는 날이면 자욱한 연무가 바다를 이루고 산봉우리들은 그 바다 속에 점점이 박혀있는 섬들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높은 곳이지만 산정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은 일 년 내내 마르는 법이 없는 좋은 약수이다.

애련암은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연대는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愛蓮庵(애련암은 학조대사라는 고승이 이름 붙인대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엽에 학조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깨달음을 얻자 기뻐서 춤을 추는데 이때에 연꽃 3송이가 마당 건너 저편에 활짝 피어났다고 한다.
그때는 계절이 초겨울이었는데 그 꽃이 핀 것이 이상하고 좋은 징조라 여겼으며, 학조대사가 그 연꽃을 사랑스럽게 대하였다고 하여 愛蓮庵(애련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청나라 장군 이여송이 와서 이곳의 경치를 보고 반하여 중국과 조선에 경치가 좋은 곳 열 군데(十勝地)가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여기라고 말하며 십홀방장(十忽方長),이라는 글을 써서 현판으로 남겼다고 한다.

애련암에 있던 승려가 6·25 전쟁 때 피난을 하면서 봉정사에 가져간 것을 현재의 주지가 찾아왔으나 다시없어졌다고 한다.

또 중건기(重建記)와 이여송이가 서산대사가 쓴 편지를 보고 나무에 새긴 옥장이 옛 요사채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누전으로 인한 화재 때문에 건물이 소실되었을 때에 함께 소실되었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극락전의 전경. 이 극락전에서 우리 모친의 49제를 올렸다.
         막상 이 극락전을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어머니가 그리운 것은 나이와 관계가 없나보다.
         혜통스님의 정성드린 제로 틀림없이 우리 어머니는 극락왕생 하였으리라 생각한다.


         극락전의 현판 글씨.



애련암의 내력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자료는 법당인 극락전을 새로 건립하려고 구 법당을 철거할 때에 발견된 극락전 상량문인데 1778년(정조 2) 4월 10일에 김득후(金得厚)가 지은 것으로 당시의 주지스님 이였던 혜통(慈通)스님이 발견하여 극락전을 새로 지은 후 새 상량문과 함께 대들보 속에 넣었다고 한다.

애련암에서 빼 노을 수 없는 것은 유명한 惠通(혜통)스님 이다.
儒彿仙(유불선)을 다 통달한 스님은 깊은 禪(선)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한 한 소식한 큰스님이다.
큰 나무는 곁에서 보면 높이를 알 수 없지만 멀리서 보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惠通(혜통) 스님은 바로 그러한 스님이다.


학가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영산으로써 유명하다.
안동에서 서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882m 가량의 이 산은 안동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산 정상에서는 멀리 동쪽에 일월산, 서남쪽으로는 팔공산, 북쪽으로는 소백산맥이 아련히 보이고 산 아래로는 영남의 북부 지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 수십길 바위 사이로 솟아나는 神效(신효)한 약수는 신비의 학가산을 더욱 실감하게 하며 한 모금 마시면 몸과 마음이 모두 상쾌해진다.

애련암은 그 학가산 9부 능선 가까이에 있는 암자이고 학가산 영봉의 신비를 모두 지닌 유서 깊은 절이다.

애련암에는 다음과 같은 기이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극락전 내부. 아미타불이 계신 뒤에 신통력이 대단하신 보살 세 분의 모습이 보인다.

1) 玄明(현명)스님의 병을 고쳐 주신 애련암 부처님
현명스님은 오랜 기도 생활 끝에 신통력을 얻어서 산신령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명한 분이다.

스님이 한때 태백산에 계실 때, 오래된 산삼을 캐 먹고 몸이 매우 건강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말술을 마셔도 끄덕도 않고, 줄담배를 피워도 건강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그러자 스님은 과음을 일삼았고 담배도 많이 피우게 되었다. 나쁜 관습에 빠진 현명스님은 얼마 동안 과음과 흡연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문득 바른 정신이 돌아와 [중이 술 담배를 해서는 안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님은 영험이 많다는 학가산 애련암 부처님께 기도를 드려 나쁜 습관들을 고치려 했다. 애련암 법당에 들어가 3일간의 기도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 하루 기도를 하고, 이틀 기도를 했는데, 이틀째 밤 스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시어 [술 담배를 끊고 않 끊는 것은 자기 할 나름이고, 스님 콧병이나 고쳐 줄까?] 하시며 품속에서 분홍색 손수건을 꺼내시더니 스님의 코를 설설 문질러 주시는 것이었다.

현명스님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콧병이 있어서 수시로 코에서 불그스레한 콧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아무 약을 써도 낫지 않고 어떤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해도 낫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도 콧물이 쏟아져 나오면 한 컵씩이나 나오는데 아무런 방책도 없고 억제도 할 수 없었다.

스님은 평생을 그렇게 고생하고 살았는데, 그 꿈을 꾼 이후부터는 그런 증상이 씻은 듯이 없어졌고 콧병은 완전히 고쳐졌다.

그 후 스님께서는 전국 선방을 다니시며 공부하다가 말년에는 포항 오어사에서 기도 중 열반에 들었는데, 늘 애련암 부처님의 영험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고 애련암 부처님께 항상 감사하였다고 한다. (애련암 주지 혜통스님 말씀)

                                        
    
         극락전의 주련 글.

彿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普顯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隨緣赴感靡不同(수연부감미불동)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제좌)

        부처님 몸 법계에 충만하사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시니
        인연 따라 감응함이 두루하시어
        이 보리좌에 항상 계시네.



2) 정혜월 보살의 피부병을 고쳐주신 부처님

10년전(1991년) 섣달 28일, 밤늦게 애련암 주지스님은 울먹이는 여인의 전화를 받았다.
안동시에서 경북운수 영구차를 운영하는 이□□씨의 부인인 정혜월 보살은 중학교 시절 우연히 감염된 피부병으로 평생 고생을 하고 살아왔다. 온 몸에 나무껍질처럼 두터운 비늘이 생겨 피부는 딱딱하고 늘 가루가 날리며 남 보기에도 너무나 흉측했다.

손목 발목 얼굴을 제외한 전신에 빈틈없이 생겨난 이상한 角質(각질)은 어떤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다. 그래서 여름에도 온몸을 감싸는 긴팔 내의를 입고 살아 왔다. 그간 대구 부산 서울 등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쓴 돈만해도 엄청나며 한약도 좋다는 것은 다 써 봐도 전혀 효험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애련암 부처님의 신통력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때마침 애련암에서는 절로 통하는 길 공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혜월보살은 그때부터 3년간 부처님께 일념으로 기도를 드렸다.

3년이 지난 어느 날밤 꿈에 애련암의 부처님이 3사람의 시자를 데리고 나타나셔서 [지금까지 고생 많았구나. 내가 너의 병을 고쳐 주리다.]하시면서 시자로 하여금 병에든 약물을 붓으로 온몸에 발라주는 것이었다.

약물을 바르니 꿈속에서도 너무나 시원해서 날아갈 듯 몸이 상쾌했는데 꿈을 깨도 역시 꿈에서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날 아침부터 몸에 붙어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여 이틀간이나 계속 떨어져 나갔는데, 큰 대야로 몇 대야나 받아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수십 년간 앓던 피부병은 씻은 듯이 말끔히 나았다.

감격한 나머지 밤중에 스님에게 전화를 건 혜월보살은 다음날 아침 애련암에 찾아가서 부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불단을 쳐다보니 후불 탱화 속에 서 있는 3분의 보살님이 바로 꿈속에서 자기 몸의 약을 발라주던 분이였다. (정혜월)

3) 집을 찾아주신 애련암부처님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산에 올라온 한 쌍의 낯선 남녀가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기도를 하였다.
안동시내에서 보일러 시설을 하는 조□성씨(53세) 부부였는데, 그들은 한때 시멘트 불록공장을 친구와 동업으로 경영하였다. 그런데 믿었던 그 친구에게 공장을 모두 사기당하고 빈 털털이가 되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대구 근교에 사놓은 허름한 집 한 채도 사기꾼의 농간으로 네 사람이 같은 수법에 걸려 네 사람 모두 돈만내고 손해를 보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그때, 그들은 부처님께 의지하고 싶어 애련암을 찾아간 것이었다. 절에서 묵으며 몇 일간 기도를 하는데 대구에서 연락이 왔다. 함께 사기당해 집을 산 세 사람으로부터 [우리 모두 재수가 없어서 이렇게 되었는데, 집을 팔아서 4등분해도 집값이 얼마 되지 않아 번거롭기만 하고 돈도 안 되니, 4사람이 모여서 제비를 뽑아 당첨되는 한 사람이 집을 차지하기로 하자.]라는 전갈 이였다.

기도중인 그들은 기도를 포기하고 갈 수가 없어서 [당신들 뜻에 따를 터니 세 사람이 제비를 뽑고 남는 한 개가 내 것이니 알아서 해라.]라는 전갈을 보냈다. 그리고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만을 했다.

몇 일 후 그 집이 조씨에게 담첨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법적 이전 절차를 마치고, 조금 있으니 그 집 일대가 개발지역이 되어 집값이 폭등했다. 조씨는 그 집을 팔아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였고 많은 재산을 모아 지금도 안동에서 잘 살고 있다.

그들은 이 모두가 애련암 부처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새로 지은 승방이 한 채 있다. 아마도 종무소와 스님의 거처로 사용하는 듯 하며, 스님이 안계셔서 그냥 돌아 오고 말았다.
           이 험한 길, 다시 내가 여기 올 수 있을지.>


         <애련암의 전경. 오른 쪽에 보이는 건물이 요사이며 그 중에 한 방에 혜통스님이 기거하셨다.
           인자하고 고명하신 혜통스님이 바로 뛰어 나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스님은 가겼어도 남기신 많은 업적은 길이 우리 불교사에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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