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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弘恩寺(홍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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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사찰 弘恩寺(홍은사)

1. 위치 :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 산 1번지.
             054- 822- 3133

홍은사가 있는 오대마을은 覃玖湧� 주봉 중의 하나인 약산(藥山) 남쪽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오동 숲이 많이 있다고 하여 오동지엽(梧桐枝葉)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오대(梧垈)라 불렀다.

안동대학교가 있는 송천동의 논골과 남선면 이천리의 샘들 사이에 놓인 포진교를 지나 길안 방면의 35번 국도로 11km 정도 가면 국도 옆에 흥은사 입구를 알려주는 커다란 입석이 보인다.


          <국도 변에 서 있는 홍은사의 표식석. 여기서 오대마을로 통하는 길로 접어들어 직진을 하면 홍은사에 닿을 수 있다.>

이곳에서 좌측 길로 조금 들어가면 길안천의 오대잠수교가 있고 잠수교를 건너면 오대리의 원 오대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을 통과하여 산자락으로 접어들면 사찰의 경내를 알리는 일주문이 보인다.

여기서 산길을 따라 500m 정도 들어가면 좌청룡, 우백호의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금계포란형국(金鷄抱卵形局) 산세 속에 홍은사가 있다.

안동과 대구에서 접근성이 좋아 찾아가기가 쉽고 주변의 산세가 너무 수려해서 경내에 들어서면 마음은 한없이 편안하게 된다.




          <홍은사의 높은 일주문.>





           <일주문의 현판 글씨.>




2. 창건 유래와 전설.
이 사찰은 부처럼의 은혜와 불교의 자비사상과 효도사상을 널리 선양한다는 뜻으로 넓을 홍(弘), 은혜 은(恩)자를 써서, 홍은사로 명명하였다.

오늘날 홍은사를 건립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 효선편(孝善篇)에 의하면, 신라 제42대 흥덕왕 때(826~836) 국효(國孝) 홍효공(弘孝公) 손순(孫順)이 石鐘(석종)으로 말미암아 그 하늘이 낳은 효행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가 살았던 집을 희사(喜捨)하여 홍효사(弘孝寺)를 첫고 석종을 안치(安置)하여 부처럼의 은혜와 부모님에 대한 효행을 널리 선양하였다.
그러나 신라 제51대 진성여왕 때(887~897) 후백제와의 전란으로 인하여 석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아 있었으나 그 절 또한 세월 속에 사라져 버렸다.




        <대웅전 서편에 서있는 청건주 손처사의 기념비.>



그 후 1982년부터 광혜(廣慧) 손현수(孫賢秀) 거사(居士)가 홍효사의 뜻을 이어 승려와 일반신도들의 불법수행(佛法修行)과 전법능력(傳法能力)을 향상시키고 불교의 자비효도사상을 널리 선양시키기 위하여 경주에 실천 수행도량 건립을 위한 부지를 마련하고 여러모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경주지역이 신라고도(新羅古都)로서 개발이 제한되어 있는 관계로 인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으로 1994년에 약사유리광여래불(藥師如來佛)이 계신다는 이 곳 약산에 홍은사 창건을 시작하여 1997년 10월 3일에 완공하였다.

홍은사는 신라에 있었던 弘孝寺(홍효사)의 창건주인 손순의 자비효도사상을 계승한 사찰로 이러한 효도사상을 선양하기 위하여 경내에 손순의 사당인 弘孝閣(홍효각)과 石鐘(석종) 등을 조성해 놓았다.

오늘날 홍은사 창건의 모태가 되는 삼국유사 효선편의 손순과 석종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라 제42대 흥덕왕(826~836) 때 손순이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품을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손순 내외는 지극한 효심으로 노모를 잘 봉양하려고 밤낮으로 애씀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그의 어린 아들이 늘 할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날로 여위어 가는 노모를 보고는 안타까운 마음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이에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얻을 수 없는 것, 아이가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날로 심하다. 차라리 아이를 땅에 묻어버리고 어머니의 여생을 배고프지 않게 모셔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의 북쪽 기슭으로 가서, 살을 저미고 배를 깎는 아품을 참으면서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묻을 구덩이를 파는데 땅속에서 뜻밖에도 기이하게 생긴 석종(石鐘)이 나왔다.

손순 내외는 석종을 꺼내어 나무에 걸고 쳐보았더니 종소리가 밝고 은은하였다. 그 소리에 감격한 손순의 아내가 「이 기이한 석종을 얻음은 이 아이의 복 같으니 아이를 묻지 맙시다.」 하였다. 손순도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와 함께 석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들보에 매달아 놓고 치니 그 종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리었다.

흥덕왕이 그 소리를 듣고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서쪽 교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밝고 은은하기가 그지없으니 속히 조사하라.」고 하였다. 신하가 알아본 후, 자세한 사실을 왕에게 아뢰었다.
이에 왕은 「옛날 곽거(郭巨)가 아이를 땅에 묻으려 하니 하늘이 금솥을 주었고. 지금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 하자 땅에서 석종이 나왔으니 이 두 효도는 천지에 귀감이라.」하고 집 한 채를 주고 해마다 벼50석을 주어 손순의 지극한 효도를 숭상하게 하였다.

뒤에 손순은 그가 살던 집을 희사하여 절을 삼아 홍효사라 하고 석종을 안치하였는데 전란으로 인하여 석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았으나 그 절 또한 세월 속에 사라져 버렸다.



       <주지스님의 거처인 청선당과 그 뜰아래 서 있는 아름다운 탑.>





       <설법번의 현판.
         청선당과 마주 보고 설법전이 있는데, 이 뜰에서 보면 단층 건물같이 보이지만, 그 아래 주차장에서 보면 2층같이 보인다.
         아래 층은 반지하 검물로 동편은 정개지로 막혀있고 3면만 트여 있는데 홍은사의 공양가으로 이용되고, 2층인 설법전은 강당으로
         쓰이고 있다.>

3.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홍은사는 1.500여 평의 대지 위에 일주문. 천왕문, 대웅전, 설법전, 약사유리광여래불, 석종, 삼성각, 흥효각, 범종각, 수선당, 광혜당, 공양실 및 부대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의 대지는 완만한 산자락의 경사면을 깎아 콘크리트 축대를 치고 성토하였으며, 대웅전, 약사유리광여래불, 홍효각, 석종 등의 건축물이 들어선 대지를 탑과 범종각, 설법전과 수선당의 대지보다 조금 높게 조성해 놓았다.

건축물의 배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에 5층 석탑이 있고 탑의 좌우에는 설법전과 수선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탑의 앞에 범종각을 두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횡으로 일축선상에는 대웅전보다 지대를 조금 높게 하여 약사유리광여래불을 조성하였고, 오른쪽에는 석종을 조성하였으며 그 옆에는 손순의 사당인 홍효각을 건립 하였다.



          <대웅전의 전경.>






          <대웅전 정면에서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편에 서 있는 아름다운 코끼리상. 양편에 두 마리가 서 있는데 한 쪽만 찍었다.
            조각의 솜씨가 여간 정교한 것이 아니여서 딱딱한 화강서이 마치 살아 있는 부드러운 실물 코끼리의 피부같은 느낌을 준다.>







          <계단 양편에 사천왕상이 부조되어 있다. 계단 양편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홍은사를 수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잘하고 계신다.>






          <대웅전 현판 글씨>






          <홍은사 애웅전의 내부.>






          <아름다운 홍은사 대웅전의 닫집.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짜넣기로 제작한 이 닫집은 정교하기 그지없다. 도솔천의 천궁을 상징하는
            이 닫집에는 금방이라도 살아 꿈틀 거릴듯한 용이 머리를 내 밀고 부처님을 수호하고 있다.>







           <대웅전에 모셔진 양류관음 탱화. >







            <홍은사 애웅전의 신중탱화.>







             <홍은사 대웅전의 신중탱화.>







             <대웅전 종앙에 편안하게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홍은사 대웅전의 부처님.


가. 大雄殿
대웅전은 법당으로서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의 높은 기단위에 조성하였으며 기단의 전면에는 승강(昇降)의 편리를 위해 층계를 두었고, 기단 위에는 들 난간을 만들어 장식고 안전을 고려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연화형 주춧돌 위에 원주를 세웠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공포구성은 다포양식을 사용하였다. 전면의 각 칸에는 4분합 빗살문을 달았고 상방 위에는 빛받이 창인 고창을 두었으며 4개의 기둥에는 주련을 달아 부처럼의 덕을 찬미하였다.

주련은 칠언절구로 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천상천하 어디에도 부처님같이 존귀한 분 안 계시고
시방 세계를 다 둘러봐도 역시 비교할 만한 분 없도다.
세간에 있는 것들 내가 다 보았어도
모두가 부처넘같이 존귀한 분 없도다.

법당 좌우 측면과 됫 면의 외벽에는 선(禪)의 수행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그림으로 나타낸 심우도(尋牛圖)를 그려놓았는데 여백의 미를 살려 조잡하지 않으며 현대적 감각으로 세련된 및을 내고 있다.

법당 내부에는 바닥에 마루를 깔고 천장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으며 화려한 단청을 둘렀다. 가운데 벽면에는 높이 135cm의 불단을 조성하여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였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서의 불상 배치는 석가모니불을 불단의 중심에 두고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나 흥은사에서는 방편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봉안하였다.

불단 위에는 낙양각과 용과 연꽃 등으로 닫집을 화려하게 꾸며 장엄하였다. 탱화는 후불탱화인 영상회상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조성하였고 우측 벽면에는 신중단을 두어 신중탱화를 수월관음도와 봉안하였다.




          <약사여래 입상. 대웅전 서편에 돌로 단을 만들고 거기 모셔진 약사려래불은 우리중생의 병고를 모두 다 말금히 씻어주신다.>  



나. 藥師如來佛(약사여래불)
대웅전의 왼쪽에 자리한 이 불상은 입상으로 왼손에는 중생을 병마로부터 구제하기 위하여 약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중생들의 우환과 고난을 해소 시키고자 시무외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규모는 2m 86cm의 기단 위에 세워진 높이 5m의 불상으로 직경은 3m이다.
이 불상은 광혜 손현수 거사가 병고액란(病苦厄難)으로 고통 받는 생명들을  구제하기 위한 염원으로 모신 동방만월세계 십이상원 약사유리광여래불로  1997년 10월 3일에 봉안되었다.

불교에서는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여래불, 서방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 아미타불(阿彌陀佛), 남방환희세계(南方歡喜世界) 보승여래불(寶勝如來佛). 북방무우세계(北方無憂世界) 부동존불(不動尊佛), 중방화장세계(中方華藏世界)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의 다섯 방향의 불국정토(佛國淨土)에 항상 부처님들이 계신다고 한다.
이러한 부처럼의 세계를 이 땅에 상징적으로 구현함에 있어서 동쪽의 편안한 땅을 상징하는 이곳 안동의 약산이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여래불이 계신 곳이라 한다.

약사여래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쳐님으로 약사유리광여래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은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님이다.

그는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의 대원(大願)을 세웠다.


다. 石鐘(석종)

이 석종은 손현수 거사가 원래신라시대의 경주(월성) 모량리 홍효사에 안치되어 있었던 석종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하여 조성한 것으로 크기는 높이 100cm, 지름 55cm로 되어 있다. 원래의 석종은 신라 진성여왕 때 후백제와의 전란으로 분실되어 그 원형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들보에 매달아서 치면 밝고 은은한 소리가 나는 기이한 종이었다고 한다.


          <손순 할아버지를 배향한 홍효각.





          <홍효각 현판>





           <손순 효자의 초상화. 유리 액자 속에 봉안되어 있어 사진촬영이 힘이 들어 상태가 다소 미흡하다.>


라, 弘孝閣(홍효각)
이 건물은 손현수 거사가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은혜와 홍효공 손순의 효행을 오늘 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건립되었다고 한다.
손순공은 신라의 개국공신인 6부(部) 촌장 중에서 무산(茂山) 대수부(大樹部)의 구례마(俱禮馬) 촌장의 후손으로, 신라 제42대 흥덕왕 때(826~836) 국효(國孝)로 추앙되었던 분이다.
속명은 孫順(손순)이고, 아버지는 학산(鶴山), 어머니는 運鳥(운조)이다.

석종과 홍효각을 안치한 목적은 신라시대 國孝(국효)로 아려진 遜順(손순) 할아버지의 孝心(효심)을 널리 아리고 또한 자라나는 우리청소년들에게도 그 어른의 정신을 이러 받아 효도하는 미풍을 길이 이어가게 하고자 함에서 창건주가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자녀들이 호자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불효자는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홍은사는 자녀교육의 도량으로 아주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절의 주지 스님인 보현스님은 말없는 가운데에서도 무엇이 풍기는 듯한 거룩함과 위엄과 자비심을 겸한 분이니, 자녀들의 바른 길을 잡아주는 훌륭한 導師(도사)라고 생각된다.

자녀들을 앞세우고 가족이 함께 참배할 좋은 도량이라 생각한다.

흥효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 집으로 화강석 기단·위에 둥근 주춧돌을 깔고 원주를 세웠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전면에는 4분합 빗살문을 달았으며 단청을 하였다.



              <수서당 현판>



마. 修禪堂(수선당)

이 건물은 5층 석탑을 기준으로 서쪽의 설법당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로 주지의 요사로 사용된다.

불교에서 가장 수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3보이다. 즉 佛寶(불보) 法寶(법보) 僧寶(승보)이다.
그런데 佛寶(불보)인 부처님은 항상 말이 없다. 이심전심으로 그 마음을 전달받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해도 범인의 재주로는 부처님의 마음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法寶(법보)인 경전도 절을 찾은 그 짧은 시간에 일고 이해하기 난감할 뿐이다.

그런데 僧寶(승보)인 스님은 우리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할 수 있어 가장 접근하기 쉬우며, 우리들을 직접 잘지도 하 주니 3보 가운데서 가장 친숙 할 수밖에 없다.

특히 홍은상의 주지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처럼 상호가 아름답고 마음 또한 넓고 자비로워 너무나 가까이 가지가 쉽다.

홍은사 주지인 보현스님은 홍은사에 주석한지 벌써 9년이나 된다,
그간 많은 불사를 하셨고, 많은 불자들에게 깨우침을 주어 삶의 바른 길을 인도 해주셔서 이 지방에서 신망이 두터운 스님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홍은사가 자라잡고 있는 약산은 산세가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높으면서고 가파르지 않고, 민가에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울창하기가 깊은 深山(심산)과 같아 비구니 스님의 도량으로 지극히 부합된다.

이런 좋은 땅에 자리 잡은 홍은사의 수선당에 그 자비로운 보현 스님이 계신다.

수선당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17평 정동의 아담한 당우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겁처마이다. 얕은 화강석 기단 위에 연화형 주춧돌을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기둥에는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노래한 4개의 주련을 달았다.

주련은 다음과 같다.

                                         

有山有水樂龍虎(유산유수락룡호)
無是無非伴松竹(무시무비반송죽)
曾昔靈山蒙授記(증석영산몽수기)
而今會坐一堂中(이금회좌일당중)
<해>
산이 있고 물이 있으니 용호가 즐기고
시비가 없으니 송죽을 벗하네.
옛날 영산에서 수기를 받은 분들이
지금 한 집안에 모여 계시네.


바. 說法堂(설법당)
설법당은 수선당의 서쪽에 자리한 건물로 대중 집회 시 강당으로 사용된다. 크기는 30평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겁처마 팔작지붕이다.
화강석 기단 위에 복련의 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전면의 각 칸에는 사분합 빗살문을 달았으며 측면의 벽면에는 부처님의 수인(手印)을 소재로 벽화를 그렀다.
대웅전 앞뜰에서 보면 1층 건물 같이 보이지만, 들어오는 입구에서 보면 2층으로 되어 있고, 그 1층이 공양간이다.

공양간 위는 강당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련은 설법당 양쪽에 다 있는데, 수선당과 마주 보는 면에 주련은 다음과 같다. 전면의 5개 기둥에는 열심히 도(道)를 닦아 깨달음을 얻도록 정진하자는 내용의 주련을 달았다.

주련은 아래와 같다.


                                                  

汝得人身不修道(여득인신불수도)
如入寶山空手來(여입보산공수내)
憂患苦痛欲何爲(우환고통욕하위)
如今自作還自受(여금자작환자수)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내적)

네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도를 닦지 않으면
마치 보배 산에 들어갔다 번 손으로 오는 것과 같다.
왜 우환과 고통만 취하려 하느냐?
오늘 네가 지은 것만큼 스스로 돌려받는다.
제법은 부동하여 본래 고요하니라.

홍은사 입구에서 본 설법당의 주련.
이 주련의 사진도 촬영하려 했는데 마침 그 전날 밤에 산사 음악회가 있어, 그 현수막이 주련 글씨를 가려서 촐영이 불가능했다.

香煙遍覆三千界(향연편복삼천계)
寶慧能開八万門(보혜능개팔만문)
唯願三寶大慈悲(유원삼보대자비)
聞此信香臨法會(문차신향임법회)
香醉幽中年代久(향취유중연대구)

<해>
향 연기 삼천세계에 두루 퍼지소서!
부처님의 밝으신 지혜로 모든 가르침 열어주소서
오직 원컨대 삼보의 크나크신 자비심으로
이 믿음의 향 법회에 강림하여 주셔서
향과 법에 취한 그윽함 길이 이어가게 해주소서.


          <범종각 현판 글시>


사, 기타
범종각은 수선당의 좌측에 위치하며 화강석 기단에 연화형 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운 사모지붕 건물로 크기는 3평이다.
내부에는 높이 190cm, 구경 117cm의 범종이 있다.
기타 건물로는 설법당의 지하에 식당과 창고로 쓰이는 건물 1동이 있으며 20평 규모이다.



          <약서여래상에서 삼성각으로 가는 오솔길에 놓인 돌다리. 하나의 돌로 통째로 만든 아치형 다리가 너무 아름답다.>





         <돌 다리에서 처자본 삼성각의 전경. 작지만 주변 산세와 잘 조화되어 아주 자연스럽다.>






         <산성각 내부에 안치된 탱화.>





          <대웅전 앞 들에 서 있는 두 기의 석등. 이 등이 세상의 ㅇ두움을 모두 밝혀 줄 것이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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