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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開目寺(개목사)

청남이메일

안동의 사찰 開目寺(개목사)

1. 위치 :안동시 서후면 태장 2리 888번지
        (054) 841- 6304

개목사를 찾아가기 위한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후면 광평리(廣坪里) 가야마을을 거쳐 닿을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봉정사에서 동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약 1km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광평리로 가는 길은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다. 안동에서 5번 국도를 따라서 영주 방면으로 가면 제비원 미륵불을 지나게 되고 이곳에서 약 4km 정도 더 가면 서후면 저전리(苧田里)가 나온다.

저전리에서 봉정사로 가는 지방도로 길목에는 「천등산 봉정사」, 「권태사묘 입구」라고 적혀 있는 푯돌이 서 있고 그 곳에서 좌회전 하면 지금은 폐교가 되어 안동삼베(주)로 사용하고 있는 계남초등학교를 지나 연등골과 가야마을을 거쳐서 찾아 갈 수가 있다

연등골은 마을 됫 산이 연꽃줄기같이 길게 이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야마을은 일명 개실이라고도 부르는데 개목산성(開目山城) 아래에 있는 마을로서 맹사성 선생이 이곳을 지날 때 들을 보고 「아름다운 들이구나.」하고 크게 감탄하여 가야(佳野)라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을 뒤로 하고 해발 574m인 천등산의 동쪽 능선을 오르면 400여 미터 지점에 개목사가 있으며 절의 뒤쪽에 천등굴이 있다.

이 길은 시멘트로 말끔히 단장되어 절의 앞마당까지 승용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개목사의 전경>



2. 유래와 전설
천등산 중턱에 자리 잡은 개목사는 확실한 사료가 없어서 그 연혁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 수 없다.
향토지인 영가지에 따르면 개목사는 부의 서쪽 30리 떨어진 천등산에 있다. 일명 흥국사라고 한다. 본부에 전하기를 읍내에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 절을 짓고 비보사찰로 삼은 후에는 눈병이 없어졌다고 전한다.

또한 관음불을 모시는데 불경에 관음보살의 천 개의 눈이 인간을 제도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開目寺在府西三十里天燈山一名興國寺 世傳本府邑居多蔽目 仍創此寺爲裨補 然後無目患 仍名開目寺安觀音佛像取佛經觀音千眼璵濟人之義云
              永嘉誌 卷之六 佛宇條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인 개목사는 본래 흥국사였다.
신라 문무왕 때 능인대사가 절 뒤에 있는 천등굴에서 도를 닦던 중 천녀(天女)의 이적(異蹟)으로 도를 깨치고 여기에 큰 절을 세운 것이라 전한다.




           <개목사의 출입문 격인 문루. 건물이 많이 낡아 보수가 시급하고 아마도 지금 보수중으로 생각한다. 이 사진은 2002년에 촬영한
             것이기에 그 뒤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사진은 2000년 초에 찍은 사진이므로 지금과는 다른다. 그래서 그때의 모스블 볼 수 있는 자료가 될 수도 있다.>



옛날 안동지방에는 소경이 많았는데 여기에 절을 세운 뒤에는 눈병이 없어져 조선시대에 절 이름을 개목사로 고쳤다고 한다.

이 절은 주위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빈터가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창건 당시에 그 큰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천등산 천등굴에서 수도를 하고 훌륭한 고승이 된 의상조사는 그 곳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흥국사를 지었다.
이 절은 의상조사의 신묘한 재주로 하루에 한 칸씩 99일 만에 아흔아홉 칸의 거대한 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 절에는 부처넘의 영험이 많이 나타나 불도들의 도량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고 정성을 드려 소원을 성취하는 자들이 많았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어렸을 때 이 절에서 10년간 공부하였으며 선생의 시문이 새겨져 보전되고 있다.

또한 옛날 안동지방에는 눈병 환자가 많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 고불 맹사성 선생이 이 사실을 듣고 이는 필시 어떤 연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안동의 지세를 살펴보았다. 고불 선생은 풍수지리에 능통하여 안동의 지세를 살펴보니 소경이 많을 지세라 판단하고, 영험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 흥국사를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자 신통하게도 눈병을 않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전한다.

현재 개목사는 아흔아홉 칸의 장엄한 자태는 찾아볼 수 없고 원통전만 남아 있다. 신라 문무왕 때 능인대사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개목사는 창건당시에는 상당히 큰 규모를 가진 사찰이었다.

지금은 많이 쇠락하여 원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됐다.
다만 그 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빈터들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개목사는 법당으로 들어가는 중문의 누각건물과 원통전이 남아 있으며 원통전의 왼쪽에 요사채가 있고 오른쪽 조금 뒤에 산신각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3.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개목사의 본당인 원통전.>




             <원통전 서쪽에 걸려 있는 개목사의 종.>


가. 圓通殿(원통전)
원통전은 관음전(觀音殿)과 같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있는 법당(法堂)이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모든 어려움을 구제하고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대자 대비한 보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생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그 재난을 극복하고 복을 받을 수 있으며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하게 해주는 보살로 알려져 있다.

관음전은 원통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절대적인 진리는 모든 것에 두루 통한다는 주원융통(周圓融遇)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관세음보살은 이근원통(耳根圓通)의 성자로도 알려져 있어 귀로 듣는 일에 가장 뛰어난 보살이므로 원통은 관세음의 별칭이기도 하다.

보물 제242호로 지정되어 있는 개목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기단부는 막돌허튼층 쌓기로 된 축대 위에 화강암의 장대석으로 갑석을 덮었으며 중앙에 두 개의 장대석으로 계단을 놓아 법당으로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주초석(柱礎石)은 자연석의 덤벙 주초이며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건물 전면은 3칸이며 평주(平柱)와 고주(高柱) 사이에 마루를 깔아 퇴간(退間)을 놓은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퇴간 앞의 평주는 위에 주두(柱頭)를 얼었으며, 주두가 직접 퇴량(暹樑)과 그 위의 주심도리(柱心道里)를 받치고 있다. 퇴량의 끝과 퇴량 받침의 초공(初工) 앞머리가 앙설(仰舌)로 되었으며 첨차는 기둥머리의 측면에서 바로 뻗쳐 주심도리의 장혀를 받치고 있다.
다른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창방(昌枋)은 생략된 구조이다.

고주(高柱) 위의 공포도 대체로 비슷하나 쇠서가 하나이며 대량(大樑)의 머리를 운공(雲工)처럼 한 것이 특징이다. 고주와 뒷 면의 평주 사이에는 온돌방이 있으며 방의 중앙 뒷벽에 불단을 놓았다.




           <원통전 안에 봉안된 관세음보살>




           <원통전 안에 장식된 幡(번)        
             幡(번)은 깃발과 형태가 비슷하다. 불전의 기둥이나 법당에 매달아 놓는다. 중생들이 이를 보고 불교에 귀의할 마음을
             먹도록 하려는 의도로 세운다. 경전에 따르면 여러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




전면 고주의 주간에는 문을 달았는데 중앙에는 사분합(四凉閤)의 넉살문이고 좌우 양쪽에는 분합(分閤)의 넉살문을 달았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하고 있다. 공포의 구성은 주심포 양식이다. 그러나 주심포 양식의 보편적인 구성이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두는 방식인데 이 건물에서는 대담하게 생략하였다.

또한 공포의 구성이 주두(柱頭)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나 이 건물에서는 헛첨자가 결구되는 부위로부터 두공과 같은 역할을 할 행공과 보아지를 만들어 첫 보와 주도리를 받았다.




            <원통전 내부의 불단. 관세음보살과 후불탱화가 개목사의 긴 역사를 말하고 있다.>
]


           <월안하 흥국사도.
             벽에 벽화로 그려진 이 그림에 말하듯 이 절은 옛날에 흥국사로 불렀었다. 그리고 지금 개목사를 개축 하면 벽을 헐어야 하므로
             이 벽화는 자연히 없어진다. 다만 이것이 자료로 남을 수 있다.>



대들보를 받는 부위에서도 주두위에 보아지를 얹어 결구하는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측면은 1칸 반의 규모에 풍판(風板)이 설치되어 있으며 앞쪽에 반 칸의 툇간 두었다. 툇간에는 벽체가 없이 전부 개방하였다. 내부는 연등천장으로 상부가 노출되었으며 초각(草刻)한 파련대공(波蓮臺工)과 솟을대공을 두어 종도리(宗道里)를 받게 하였다.

이건물의 창건 년대는 알 수 없으나 1969년 보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천순(天順) 원년(元年)이라 되어 있어서 조선 세조 3년(1457)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원통전에 모신 부처님은 관세음법보살로 너비 50cm, 높이 83cm의 크기로 높이가 93cm인 불단 위에 모셔져 있다. 관세음보살 뒤에는 가로 185cm, 세로 185cm 크기의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시판
                이 사진은 2000년 초에 찍은 사진이므로 지금과는 다른다. 그래서 그때의 모스블 볼 수 있는 자료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돌에 각 하였지만 원본은 이 목판이다.>



법당의 좌측에는 지장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그 옆에 정몽주 선생의 시판이 걸려있다.

시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昔日讀書興國寺(석일독서흥국사) 時時夜夢到靑山(시시야몽도청산)
旧交最憶堂頭老(구교최억당두노) 爲我乘聞一往還(위아승문일왕환)
          옛날 흥국사에서 독서하던 때
        때때로 꿈에 그 청산에 놀로 가보았네.
        옛날 사귀던 나이 많은 스님 생각 간절한데
        내게 한 번 다녀가라고 말씀 하시네.

나머지 탱화와 성보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o 지장템화 - 가로 155cm, 세로 125cm
o 칠성탱화 - 가로 1駱cm, 세로 91cm
o 신장탱화 - 가로 105cm, 세로 91cm
o 작은 종 - 구경 47cm, 높이 77cm

나. 료사
요사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건축채료는 시멘트 벽돌이며 지붕은 슬레이트를 사용하였다.

좌측 1칸은 부엌으로 사용하고 우측 2칸은 방으로 꾸며 절에 행사가 있을 때에 신도들이 사용한다.




             <산영각. 보통 산신각이라 하는데 개목사에서는 산영각이라 한다.>


다 산영각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식을 한 산령각은 1968년에 지은 건물이다.

내부에는 산신상을 봉안하고 뒤에 산신탱화를 걸어두었다.




           <사찰 안에서 본 문루. 건물이 극도로 회손되었고, 기둥은 썩어 기능을 다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스님이 걱정스레 서서 부분적으로 공사를 하고 있으나 전면 보수가 시급하다.  2002. 여름>



라. 門樓
개목사의 중문 역할을 한 누각으로 정면 6칸, 측면 1칸의 크기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다른데 안쪽은 원주를 사용하였고 바깥쪽은 사각형의 기둥을 사용한 특이한 구조이다.

이 건물은 3면이 폐쇄되고 중정을 향한 방향만 개방된 구조인데 좌측 2칸은 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우측 3칸은 누각으로 사용하며 가운데 1칸은 사찰의 중정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의 역할을 한다.



            <개목사의 산문 격인 문루는 밖에서 봐도 너무 회손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2002년 여름에 찍은 사진.>


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2칸도 원래 누마루로 된 건물이었으나 스님이 기거할 공간이 없어서 방으로 개조하였다. 건물의 바깥면의 하방에서 중방 사이는 판벽으로 처리하고 중방 위는 흙벽으로 마감하였다. 판벽으로 처리된 부분은 흙과 돌을 섞어서 벽체에 덧붙여 방안이 따뜻하도록 보온 처리를 하였으며 난방으로 인한 연기를 외부로 배출하는 굴뚝을 냈다.

누마루로 된 우측 3칸은 중정을 향한 방향은 개방된 구조이고 나머지는 모두 판벽으로 처리하였다. 그렇지만 사찰의 중정에서 바깥의 경치를 볼 수 있도록 문을 설치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3칸 모두 2짝의 미닫이문을 내어 열었을 경우에는 주변 경치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마루의 짜임은 우물마루이다. 가운데 1칸은 사찰로 들어오는 문으로 사용한다.
여닫이문이 설치된 홈이 있지만 현재 문은 달려 있지 않다.

사찰에 건축하는 누문의 경우에 대개 정면의 칸수는 주로 3칸, 5칸, 7칸 등 홀수를 사용하여 가운데 칸에 중문을 달고 좌우가 대칭의 구조를 띠는 것이 통례이나 개목사의 경우에는 6칸인 짝수로 구성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벽면의 경우에 3면은 폐쇄된 구조이고 중정을 향한 쪽만 개방하여 다양한 용도로 차용하게 건축하였다. 강당으로서의 기능과 때에 따라서는 승방, 선방으로 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붕의 형식은 맞배지붕에 흩처마이고 풍판은 없고 단청도 하지 않은 형태이며 간결한 3량 가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개목사의 본전인 원통전과 마주하는 구조이다.




            <개목사의 옛 사세를 말 하듯 절 주변에 이렇게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다.>



            <개목사 뒤에는 능인대사가 수도 했다는 천등 굴이 있다.>



             <천등 굴 옆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셈솟아 수도하는데 물 걱정은 안해도 되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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