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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仙刹寺(선찰사)

청남이메일
안동의 사찰 仙刹寺(선찰사)

1. 위치: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 699 번지
    (054) 856- 2176
    010- 8758- 5919


길안면은 본래 길안부곡(吉安部曲)으로 고려시대 충선왕(忠宣王) 때 길안현으로 승격되었다가 조선 고종 33년인 1896년에 안동군 길안면이 되었다.

천지리는 밝고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웅덩이가 있고 이 샘의 물맛이 좋다고 하여 천지리라 불리게 되었다. 천지리는 안동과 포항을 잇는 35번 국도와 청송과 의성을 잇는 914번 지방도가 교차하는 곳으로서 면의 중심지이다.

선찰사는 천지리에서 청송 방면으로 300m정도 떨어져 있는 들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절의 서쪽에 길안초등학교가 인접해 있다. 안동에서는 240m 정도 떨어져 있다.



         <주불은 목불인데 금으로 도금을 하였고, 두 협시보살과 함게 모시고 있다.>


2. 유래와 전설
선찰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만 전해지고 그 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있다. 안동의 향토지인 영가지에 따르면 선찰사는 임하현 남쪽 17리쯤 떨어진 약산 동쪽의 물이 휘돌아가는 곳에 있다고 하였다.
왼쪽으로는 절벽이 싸고 있고 앞에는 독산이 마주하였다고 적고 있다.

仙刹在臨下縣南十七里許 藥山東枉波上左擁絶壁前對孤山
                                永燾誌 卷之六 佛宇條

영가지의 기록에 따르면 선찰사의 창건은 임하현의 남쪽 17리 떨어진 약산(藥山) 기습에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있는 곳은 임하댐의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어 그 자취를 찾을 길 없으나 수몰되기 전에는 격진령과 도연폭포로 이어지는 수려한 자연경관이 천혜의 절경을 이루던 곳이다.

영양 일월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반변천이 이곳에 와서 빚어 놓은 절경은 속세를 잊어버리기에 충분한곳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격진령의 수려한 봉우리와 산자락을 감아 도는 푸른 물줄기가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은 듯 하였다고 한다.



          <선찰사의 신중탱화>


그 옛날 지금의 폭포 소에 살던 용과 선찰사의 부처가 물길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용은 "물이 바로 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선찰사 부처는 "돌아 흘러 절 앞을 지나가야 한다."고 다투었다.
이렇게 팽팽하게 맞선 싸움은 좀처럼 끝나지를 않았고 급기야는 서로가 극한에 이른지 벌써 10년을 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열화처럼 화가 난 용은 그만 실력행사를 하고 말았으니 벽력같은 괴성과 함께 자기의 꼬리를 휘둘러 격진령 바위산 허리를 박 뚝 잘라 버렸다.
그러자 물줄기는 잘린 바위 위를 바로 흘러 웅장하고 거대한 폭포가 되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도연폭포가 생겼다는 전설이다.



          <오래전부터 선찰사에 있던 7성탱화.>


도연폭포는 높이가 약 3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낙차를 가지고 있지만 풍부한 수량과 함께 주변의 때어난 경관으로 인하여 안동의 명승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폭포의 왼쪽 솔숲 속에는 조선시대 유학자인 표은 김시온(金是榲) 선생이 은거하던 초당과 정자, 그리고 유허 비각이 있었다.

그 후 6 · 25사변이 터지자 이 일대는 깊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비의 출현이 잦게 되고 공비토벌의 목적으로 절을 불태워 공비들이 숨을 곳이 없게 하였다.

당시 주지였던 주도관은 법당 화재 시 간신히 화를 모면한 부처님과 탱화를 등에 업고 그 곳을 떠나 길안면 창마 조금 위에 터를 잡게 된다.

이때에는 길안천의 옆에 조그만 움막을 짓고 바위 옆에 토굴을 파고 부처님을 모셨다. 이곳에서도 많은 우환이 생기자 현재 위치로 다시 옮겨와 초가삼간의 법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다.



          <산신탱화. 산신각이 없어 법당안에 모시고 있다.>


그 후 이상문 스님에 의하여 기와불사를 한 후 선찰사의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그렇지만 재정의 궁핍으로 인하여 제때에 보수를 하지 못하고 스님마저 절을 떠나게 되자 선찰사는 또다시 폐사의 위기를 맞게 된다.

1990년 12월 주지인 지관이 부임하여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헐고 슬레이트와 벽돌로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하댐의 건설로 인하여 선찰사지는 수몰되고 수몰되기 전인 1989년 임하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 시 선찰사지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선찰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 1동과 빈약한 구조를 가진 요사채 1동으로 구성이 되었다.



          <너무나 초라한 선찰사 법당. 스님이 원을 세우면 어느때인가 반드시 훌륭한 법당이 생기라 믿는다.>


3.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선찰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전통사찰로 분류되고 있으나 현재의 규모는 너무나 빈약하여 언뜻 보기에는 사찰인지 아닌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사찰 건물은 벽돌을 쌓아 올린 후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은 구조로 가운데에 법당을 꾸미고 좌우에 방을 내어 요사로 사용하는 인법당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당 내부는 약 6평의 크기로 북쪽에 불단을 꾸미고 중앙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주불은 높이가 43cm인 목불로서 개금불사에 의하여 금으로 칠하여져 있다.

처음에는 목불 하나만 모셨으나 후에 신도들이 좌우협시보살을 모셔서 현재는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주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신중탱화와 칠성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우측에는 독성탱화와 산신탱화를 모셔서 신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도량을 갖추고 있다.

탱화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후불탱화 - 가로 197cm, 세로 139cm
신중탱화 - 가로 163cm, 세로 137cm
칠성탱화 - 가로 157cm. 세로 120cm
독성템화 - 가로 58cm, 세로 87cm
산신탱화 - 가로 90cm, 세로 106cm
소 종    - 구경 38cm, 높이 68cm





4. 其他
선찰사는 쇠락하여 신도가 끊기고 자연히 불교의례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선찰사가 사용하고 있는 사찰부지도 남의 것을 빌려 쓰는 형편인데 이 조차도 돌려주어야 할 형편이다.
신도가 줄고 사찰의 재정도 궁핍하게 되자 지관스넘이 막노동도 하고 고생스럽게 사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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