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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용천사(龍泉寺)

청남이메일

안동의 사찰 용천사(龍泉寺)



1. 위치: 안동시 와룡면 태1리 186
       010- 5277- 7267
       070- 7758- 7267



「땅고개」에 있는 용천사 표식판




안동시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국도를 따라 차를 타고 가면, 나직한 고개가 나오는데, 첫째 고개를 넘고 한참을 더 가면 오른쪽에 제법 큰 주유소가 있다.
그 주유소를 지나 약 1km 정도를 더 가면 「땅고개」 마루가 나오는데, 그 고갯마루에서 왼쪽을 보면 포장된 넓은 시멘트 길이 보인다.





저 끝이 보이지 안는 용천사 입구의 포장 길.


그 길을 따라 나직하지만 우거진 숲속 언덕길을 오르면 불과 5∼6분 만에 용천사에 다다를 수가 있다.

도심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천사는 첩첩산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고, 태고의 정적이 감도는 성스러운 부처님의 도량이다.





용이 굼틀거리듯 용선사로 가는 길은 완만한 언덕을 구불구불 기어가는 길을 따라 간다.


땅의 형국이 마치 호리병과 같이 새겨 들어가는 입구는 좁아도, 절에 다다르면 넓은 공간이 시원하게 트이며, 막 시작된 용천사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누가 봐도 공부하기와 기도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용천사 가는 길가에 있는 거대한 거북바위.


스님이 여기 자리 잡게 된 동기는 대중이 많이 사는 큰 사찰에서는 行(행)을 잘 닦을 수 있으나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잠재하는 佛性(불성)과 自性(자성)을 더 깊이 공부하고 닦으라면 혼자서 자신을 省察(성찰)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 중에, 우연히 기도 도중 풍산읍 만운지에서 무지개가 떠서 연결되고 걸쳐 있는 이곳을 발견하고, 2,000여 평의 적지 않는 땅을 어렵게 구입을 하셨다.

땅주인이 당시 시세보다 10배나 더 달라 해도 스님은 이곳이 바로 진정 기도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서 비싼 줄 알면서도 무리해서 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용천사 임신 법당인 관음전 현판.


스님은 원래 백양사 암도 스님 문중의 권속인데 18년 전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이곳에 오셔서, 이 성지를 관음도량으로 발전시키려 하시고 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 이슬과 비를 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짓고 출발을 하였는데 그래도 지금은 부처님을, 눈바람과 비 서리에서 편히 모실 수 있는 집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그런 건물들은 산신각을 재외하고 모두 가건물이며 점차 인연이 닿는 대로 품격 있는 제대로 된 건물을 올린다고 하신다.

이 땅은 6.25사변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골 아에서 사살 당한 원한과 눈물의 땅이기에 스님은 관음보살과 지자오살에 의지해서 그 고혼을 달래주고 천도해주며 공부도 하고 있다.





관음전 앞에 있는 귀여운 쌍 등.


그런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한편으로는 땅을 놀리지 않고 손수 농사도 짓고 있다.

백장선의 「一日不作(일일부작)이면 一日不食(일일불식)이라.」라 하신 근로와 근면의 도를 철저히 지키시면서 하로도 빠트리지 않고 기도하신다.

뿐만 아니라 그 바뿐 주에도 진각종 유덕대학에 적을 두고, 공부를 하시며 앞으로 박사 과정까지 밟을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많은 사찰을 다녀 봤지만, 신도들에게 寫經(사경)을 시켜 공부하게 하는 곳은 여러 곳을 보았는데 스님은 특이하게도 관세음보살상을 그리게 해서 더욱 관세음보살을 신도들 마음에 깊이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거기 감명을 받아 앞으로 시간이 있는 데로 스님이 주신 32관음상을 스님이 주신 교제 그대로를 이곳에 올려 관세음보살의 많은 사랑과 가피를 받게 할 생각이다.





관음전 안에 안치된 용천사의 주불인 천수 관음상.





이 관세음 보살은 1,000개의 눈과 1,000개의 팔로서 모든 중생의 아품을 발견하고 치유 해 주신다고 하는데, 이는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보실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구제 하실 수 있다는 부처님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조각상화 것이다.





관음전 안에 안치된 지장탱화. 칠성성군이 자장보살과 함께 지옥의 중생까지도 다 잘 보살펴 주시고 있다.





오른 쪽에 키가 낮은 불상은 스리랑카에서 모시고 온 석가모니 상이다.
스님은 국내 분만 아니라 외국의 불교국과도 친분이 두터운 분이다.







부처님과 초전법륜을 들으신 5 비구가 탁발을 하로 가는 상이며 미안마에서 모시고 불상들이다.




용천사의 신중탱화. 금색과 채색이 아주 탁월하며 특출하다.







관음전 안에 있는 거북상.
거북은 우리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는 영물이며, 인간에게 많은 복과 장수를 안겨주는 신령이다.




관음전 입구에 적혀 있는 「옴마니반메훔」.
이를 지속적으로 염송하면 육도윤회에서 벗날 뿌난 아니라 가정이 화평하고 운수도 대통한다고 한다.





스님은 그림을 그리는데도 남다른 재주가 있어 이 지장보살상은 스님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관음전 안에 모신 석가모니 불상.
뒤에 호위 신중들이 그려져 있지 않아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부처님은 더욱 거룩해 보인다.





신중단에 있는 부처님.
태화스님은 역시 도인답게 영가를 편안하게 잘 천도하기로 이름이 높은 분이다.





용천사의 포대화상.






곱게 핀 용천사의 깨끗한 白蓮(백련).
보기만 해도 많은 맑아진다. 관세음 보살이 참 좋아하시는 꽃이다.






편안하게 누어 계시는 미름보살의 화신 포대화상. 그가 남긴 시중에 다음과 같은 시가 지금까지 전한다.

一鉢千家飯(일발천가반)  하나의 바릿대 천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고신만리유)  외로운 몸 만리를 노닌다.
靑日覩人少(청일도인소)  맑은 날 아보는 이 별로 없어
問路白雲頭(문로백운두)  길을 묻는 사이 흰 구름이 머리를 적시네.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분신천백억)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時時示市人(시시시시인)  때때로 세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市人自不識(시인자부식)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23 22 21



         

용천사 관음전에 있는 주련.(끝에 구절은 기둥에 가리워 사진촬영이 불가능 함.)

具足神通力   구족신통력
廣修智方便  광수지방편
十方諸國土  시방제국토
無刹不現身  무찰불현신          글: 관음경<해>


          구족한 신통력으로
          넓게 지혜와 방펀을 펴사
          온 세상 모든 국토에
          나투시지 않는 것이 없으시네.







산성각의 현판






작지만 아담하고 달 단청이 되어 있는 삼성각.






삼성각에 모셔진 탱화







특이하게도 경계를 무시하고 튀어나오는 백 호랑이.
그래서 이 산신각의 호랑이는 절에만 머물지 않고 온 천지를 다니며 선신은 보호하고 삿된 무리를 응징할 것이다.






산신각 옆에 있는 듬직한 돌.
이 돌의 무게만금 이 절의 영험이 우리들의 가정을 진압해주기 바란다.





요사채 안에 안치된 관세음보살.
손 모양<手印(수인)>이 마치 미타불과 흡사하나, 관세음보살의 그 특유한 자비를 잃지 않고 격조 높은 미소를 머금고 중생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다음 기사는 용천사 스님이 강연하시는 책(권음경의 이해: 김영덕)을 복사 한 것이며, 그림은 신도들에게 그리게 하는 원본임을 밝혀 둔다.


① 양류관음



양류관음(楊柳觀音)은 바위 위에 앉아 오른손으로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는 천수관음의 양류수삼매(楊柳手三昧)를 표현한다. 자비의 화신으로 애욕을 없애준다.

이 관음은 천수관음(千手觀音)의 40수 중에서 양류수(楊柳手)로부터 나타난 약왕관자재(藥王觀自在)와 동체로 한다.

천광안경(千光眼經)에는 자비체(慈悲體)의 금색신으로서 11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에 양류의 가지를 지니고 월륜 가운데의 홍연화좌에 앉아서 낫기 어려운 병을 치유하도록 기원한다고 한다.

오른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왼손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게 한 채 왼쪽 가슴에 대고 있다.
혹은 버드나무 가지를 꽃은 병을 옆에 두고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양류관음상은 오른손엔 버드나무 가지, 왼손엔 정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양류관음의 탄생배경은 유마거사의 활동무대였던 인도의 바이샬리에서 역병이 유행했을 당시 병을 제거해 달라는 사람들의 소망에 응해서 관음이 나타나 버드나무 가지와 정수(淨水)를 손에 들고, 병을 없애는 주문을 가르쳤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 내용은 『청관음경」에 기재된 이야기로 양류관음은 이 얘기에 근거하여 병난소제(病難消除)의 본원을 보여준다.

이후 양류관음은 관세음보살의 주요한 응신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도 모셔졌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이 버드나무가지를 가진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버드나무는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의미가 있다.
옛날에 전염병은 疫鬼(역귀)의 짓이라고 알려졌으므로 역병이 발생하면 치유와 함께 역귀를 물리는 방법도 같이 사용했다.

둘째, 버드나무 자체에 치유능력이 있다.
버드나무껍질과 뿌리는 피부병 치료제나 진통제로 사용한다.  인도인들이 이쑤시개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치목(齒木)은 버드나무로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이쑤시개 보다 몇 배로 크기 때문에 이를 쑤신다기보다는 씹음으로써 치아건강을 유지한다.

그래서 손님들을 초대할 때에는 전날 치목을 보내기도 하고, 식사 후에는 버드나무로 된 치목과 깨끗한 물을 공급하였다.






眞觀淸淨觀(진관청정관)    廣大智慧觀(광대지혜관)
悲觀及慈觀(비관급자관)    常願常瞻觀(상원상첨관)
<해>
참되고 깨끗하게 살펴주시고
넓고 그윽한 지혜의 눈길로 지켜보시며
가없이 보시고 사랑으로 돌보시니
항상 원하고 우러러 사모합니다.

강원도 오세암의 설화는 불자라면 몇 번을 들어보았을 유명한 이야기이다.

오세암에서 참선을 하는 雪頂(설정)이라는 스님이 자신의 조카를 데려왔다.
설정은 조카에게 관음상을 가리키며 「항상 저 분이 너의 어머니이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가을이 되어 먹을 것이 없어 산을 내려갔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마을에서겨울을 보내는 동안 설정은 매일 관음기도 삼매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를 하였다. 겨울 석 달 동안을 내내 관음기도를 하면서 마을에 머무르다가 봄이 되자 급히 절로 돌아왔다.

조카의 시신이라도 건지려고 보았더니 아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조카에게 연유를 묻자 관음상을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그동안 밥도 지어주고 불도 때어주고 잠도 재워줬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
원래 관음사였던 절의 이름이 다섯 살 아이의 일화로 인하여 「오세암」이라 불리게 된 사연도 마찬가지이다.



② 용두관음



위 게송에 해당하는 용두관음(龍頭觀音)은 구름 속에 있는 웅의 등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33신 중 천룡, 야차신에 해당한다.

원래 인도에는 용이 없었다.
나가(Naga)라고 하는 코브라 모양의 큰 뱀이 중국에서 웅으로 번역되었으므로 위 그림에서도 중국의 용을 본뜬 것이다.

나가와 불교와의 인연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행 때부터 비롯된다.







한 번은 부처님이 깊은 명상에 잠겨있을 때 큰 폭풍우가 일었다. 그러자 나가가 나타나 부처님 뒤에서더니 몸을 펴서 폭풍우로부터 부처님을 보호했다. 인도에서 신성시하는 나가는 치명적인 독을 내뿜어 적을 물리치고 상처를 입게 되면 빠르게 회복하는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였다.

이렇게 불교와 인연을 맺은 나가는 대승불교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부처넘의 부탁으로 자신의 궁전에 반야경전들을 보관하고 있던 나가라자, 즉 용왕은 나가르주나(龍樹: 150∼250)라는 스님에게 그 경전들을 전해준다.

이 반야경전들로 인해 세상에는 空(공)을 중심으로 하는 중관(中觀)사상이 펼쳐졌다.

또한 용은 『법화경」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청중으로 등장하며, 중국에 웅으로 번역되면서 용은 불교의 수호신이 되었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 중국인들은 가뭄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을 때에 용에게 기우제를 올리는 대신에 용두관음을 모신 절에 찾아가 기도를 하게 되었다.







③지경관음(持經觀音)



지경관음(持經觀音)은 바위 위에 앉아 오른손에 경전을 지니는 형상이다.

「보문픔」 위 구절에 해당하는 관음의 화신으로 성문의 모습을 한 대상에게 설법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성문의 몸으로 나타나 중생을 제도함을 상징하므로 성문관음이라고도 한다.







성문은 여래의 설법을 듣고 득도하는 자이므로 손에 경권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설법을 표현한다.

불교공부만이 아니다. 지경관음은 시험에 떨어지고 실망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지경관음상을 보고 용기를 내서 계속 공부하면 마침내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요즈음처럼 각종 시험이 어려운 때에 지경관음은 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을 일러주는 셈이다.





4. 원광관음  



원광관음(圓光觀音)은 몸 주변에 광명을 드리우고 있다.

또한 게송에 「어둠을 없애주는 지혜의 해여, 바람과 불과 같은 모든 재앙은 쓰러지며 골고루 밝은 빛이 널리 세간에 비춰 지이다.」 라는 구절처럼 빛 속에 합장한 채 바위 위에 앉아 있다.

빛이나 불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한다.








고려 공양왕(1389∼1392)때의 일이다.
고려 사신 조반이 명나라에 가는 길에 황해도 오운산의 오운암(五雲庵) 관음전이 너무 낡아 보수비를 보시하였다.

명나라와의 회담이 잘되지 않자 명에서는 그를 참수형에 처하려고 하였다.
조반은 모든 것을 잊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만을 염송하였는데 형리가 조반의 목을 세 번이나 쳐도 칼만 부러지고 조반이 죽지 않자 돌려보내 주었다.

돌아오다 오운암에 다시 들르니 관음상의 목에 세 군데의 칼자국이 있고 피가 맺혀 있었다.

이 후 조선에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 오운암을 사(寺)로 승격시켰으며 사찰의 이름도 속명사(續命寺)로 고쳤다고 한다.

이와 같이 형벌에 죽게 되어도 관세음보살의 힘을 간절히 생각하면 칼의 난을 피할 수 있음을 관음영험설화가 말해주고 있다.





⑤ 유희관음  



유희관음(遊戱觀音)은 구름을 타고 법계를 자유로이 이동하는 이다.

금강산에 나타난 관음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이 관음은 유희자재 하여 걸릴 것이 없으므로 이러한 이름이 있으며 아무리 나쁜 일이 있어도 중생들의 몸이 다치지 많도록 도와준다.

관음32응신도에서 그 화면의 중심을 점하는 보살이 유희좌로 앉아있다.









옛날 중국에서 관세음보살이 세상구경삼아 낙양에 이르렀다.
성내를 둘러보던 관세음보살은 거울가게장수 위(魏)씨의 불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위씨의 가게는 파리만 날리던 중이었다.

가게로 들어간 관세음보살은 위씨 앞에 옥 거을 하나를 꺼내 놓으며 위 씨에게 이 옥거울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전생과 내생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보러 오는 사람에게는 모두 3푼의 요금만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위 씨가 고개를 들어 보니 손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상하게 여기며 나중에 거울을 찾으러오면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거울을 서랍 안에 집어넣으려는데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몰려들어 3푼씩을 내면서 옥거울을 통해 전생을 보고 싶다고 하었다.

위씨가 도대체 누가 그러더냐고 물으니 모두들 조금 전에 이 가게를 나선 귀부인이라고 하였다.
귀부인의 생각을 하자 위씨는 그 귀부인이 보통 사람이 아년 것을 깨닫고 귀부인의 말대로 1인당 3푼씩의 요금을 받고 전생을 보여주었다.

그때부터 위씨의 집 가게에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전생과 내생을 보는데 드는 돈이 겨우 동전 세 잎에 불과한 3푼이고, 옥거울을 통해 자신의 전생과 내생을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신기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생을 보면서 착한 일에는 착한 과보가, 악한 일에는 악한 과보가 따라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번 생에 사악한 짓을 하면 다음 생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됨을 알게 된 사람들은 나쁜 일을 버리고 좋은 일에 앞장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위 씨는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이 관세음보살님의 공덕인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가게에 찾아와 옥거울을 주고 간 중년부인의 얼굴을 닮은 보살상을 만들어 봉안하였다.

위 이야기는 말 그대로 관세음보살이 낙양성에 유희하러 가서 신통력을 발휘하여 많은 사람들을 불자로 이끈 이야기이다.

유희라는 말은 행위를 하되 업에 끌리지 않는 부사의 한 업을 말한다.

마치 강물에 뱃자국 새기는 것처럼 지나가고 나면 사라지며 어떠한 업력도 남기지 않는 것과 같다.

유희관음은 이처럼 유희하므로 자계할 수 있어서 언제어디서나 걸림 없는 가르침을 주는 보살인 것이다.






6. 백의관음  



백의관음(白衣觀音)은 바위 위에 않아 풀을 들고 정인(定印)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33신 중 비구· 비구니의 몸을 상징한다.

백의(白衣)는 Pandatavasini이며, 음역하여 반타라바자니, 반나라바실니, 반나라바실니, 파나바실니, 라 하며, 의역하여 백처(白處)·백주처(白住處)라 한다.

33관음 가운데 제6존으로 언제나 흰옷을 입고 흰 연꽃 위에 머문다.

흰색은 보리심을 나타내므로 그 뜻은 백정보리심(白淨菩提心)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존을 대백의관음(大白衣觀音) · 백처존보살(白尊處菩薩) · 백처관음(白處觀音) · 복백의관음에 백의관자재모라고도 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백의를 걸친 다정다감함 모습으로 어린아이의 순조로운 출산과 그 어린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보살피는 유독 주의를 기울이는 보살이다.

백의관음은 백의를 입었다는 그 모습에서 이름을 따온 듯 한데 그 상징적 의미는 언제나 청정을 의미하는 흰 연꽃 위에 앉았으므로 백처존(白處尊)이라 했다는 그의 별명에서 찾을 수 있다.

백의관음은 인도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중국풍의 수월관음 이전부터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당나라 시대 말기부터 수월관음도에 백의가 응용되기 시작하여 수월관음상에 백의관음상이 융응합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데는 수묵화의 발달과 선종의 융성으로 수묵 관음도가 나타나면서 표현상 관세음보살이 자연스럽게 백의를 걸치게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따라서 백의를 입은 관세음보살을 모두 백의관음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흰 옷을 입은 백의관음은 한국의 불자들에게 가장 자주 나타나는 관음으로 우리와 가장 친숙하다.







우리나라 사람을 백의민족이라 부르는 데에서도 친근감을 느낄 수 있고, 흰 색이라는 상징성이 고결함을 일깨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도가 높은 고승이라도 정성이 없으면 백의관음을 친견할 수가 없다.
신라의 義湘(의상: 625∼702)스님은 동해안의 바닷가에 있는 바위굴에서 지극한 기도를 통해 백의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세음보살의 지시로 동굴이 있는 곳의 언덕에 절을 세우니 그 절이 바로 지금의 낙산사이다.

이 소문을 들은 원효(元曉, 617∼686)스님도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낙산사로 갔다.

낙산사에 다다랐을 때에 근처의 논에서 벼를 베고 있는 흰옷을 입은 여인이 보였다.

원효스님이 농담 삼아 벼를 좀 달라고 하자 여인도 농담처럼 죽정이 밖에 없다고 대담한다.

농을 걸었다가 한 방 먹은 원효스님은 다시 낙산사로 향했는데, 이번에는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인을 만났다.

이 여인도 흰옷을 입고 있었다. 마침 목이 마른 원효스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자 여인은 빨래를 행군 물을 떠주었다.

이에 원효스님이 그 물을 버리고 위쪽의 깨끗한 물을 떠 마셨다.
바로 그때 근처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푸른 새 한 마리가 「감로수를 버리다니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생각일랑 하지 마시오.」  라고 하고는 날아가 버렸다.

원효스님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흰옷을 입은 여인도 빨래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소나무 밑에 신발 한 짝이 있어서 스님은 이를 주워들고 낙산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의상 스님이 모신 관세음 보살상에 절을 하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그 발치에 신발 한 작에 보였다.

놀란 스님이 품안의 신발을 꺼내 맞추어 보니 한 켤래었다.

오는 길에 만났던 두 여인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임을 알게 된 원효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의상스님이 기도를 통해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던 바닷가의 동굴로 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풍랑이 거세게 들이쳐서 스님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에 원효스님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갈 수 밖애 없었다고 한다.





⑦ 연와관음



33신 중에서 작은 나라 임금의 몸을 나타내어 응신(應身)의 바른 몸으로 중생들을 제도하는 연와관음(蓮臥觀音)은 연꽃 위에 합장하고 왼쪽을 향해 맞아 있지만, 이 관음의 이름대로라면 연꽃 위에 누워있어야 한다.

33분의 관세음보살 가운데 유일하게 누워 있는 연와관음이 탄생한 이야기가 중국에 전해져 내려온다.







당나라 때의 일이다. 도적들 무리가 양자강변에 있는 어느 절에 침입했다.
절을 뒤지며 약탈하던 도적들은 중보관음상을 찾았고, 중보관음상에 걸려 있는 보물들을 하나도 남기지 많고 모두 떼어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중보관음상을 메고 절을 나와 양자강가에서 강물 속으로 던져버렀다.

양자강가에 있는 금릉이라는 도시에 반화(潘和)라는 불심이 독실한 상인이 있었다.

그는 사업 수완이 좋아서 부유했으나 불면증이라는 오래된 질병을 않고 있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낫지 않는 불면증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하던 반화는 불보살에 의지하게 되었다.

하루는 절에 간 반화가 법당에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반화에게 관세음보살은 자신의 형상이 양자강가 어디쯤에 버려져 있을 데니 찾아오라고 하였다.

사람을 데리고 관세음보살이 가리켜준 장소에 이른 반화는 물속에 잠긴 중보관음상을 찾았으며, 그대로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다.

연화좌대까지 만들어 중보관음상을 올리려 하였으나 관음상은 이미 강물에 띠내려 오는 도중 많이 훼손되어 세울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관음상을 옆으로 눕혀서 모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관음상을 보고 연꽃 위에 누운 연와관음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헤서 연와관음을 모시게 된 반화는 그날 밤 자신도 모르게 푹자고 일어났다. 반화의 불면증이 치유된 연와관음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불면증이 있거나 잠을 자도 개운치 못하거나 머리가 맞지 못한 사람들도 연와관음을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옆으로 누워있던 연와관음상이 언젠가부터 관음보살이 누워있는 것을 어울리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에 의해 바로 암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여겨진다.


8 관음에서부터 33관음 까지는 이 홈페이지 <불교문화> - <기본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용천사에 올리니 밑으로 너무 길게 늘어져 나가 찾아보기 힘들어서입니다. 많이 검색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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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불교와 관련된 일반적인 사항들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관리자 05-01-03 14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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