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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안동의 사찰 有一寺(유일사)

청남이메일
안동의 사찰 有一寺(유일사)

위치: 경북 안동시 수하동 536 번지

      054- 858- 0198
      010- 3529- 0197
     주지: 민덕 스님

1. 찾아가는 길.
안동시에서 대구로 가는 국도를 따라 안동대교를 건너가면 좌측에 거대한 안동병원의 새 청사가 보인다.
안동대교를 건너자마다 우회전해서 그 안동병원 앞으로 난 둑 위에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약 2km가량 달려가면 왼편 산기슭에 유일사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눈 속에 묻힌 유일사 안네판.>


거기서 주차장 까지는 불교 얼마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유일사 입구. 눈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돌이 양쪽에 서 있으며, 등산로 표식도 함께 볼 수가 있다.>



        <유일사로 올라가는 길. 안동지방에는 비나 눈이 잘 오지 않는 곳인데 내가 찾아 간 날은 근년에 드물게 눈이 많이 내려 몹시 불편
          하였다.  평소에는 이 길로 승용차가 쉽게 가는데, 오늘은 눈 때문에 걸어서 갔다. 사실 걸어보니 절을 찾아 가는 운치는 더욱 좋았다.>



         <눈 때문에 발이 묶인 유일사 버스.>




         <넓은 유일사 주차장. 멀리 낙동강이 보인다. 그리고 강 건너에는 생명고등학교와 옥동 솔밭이 보이는데 날이 흐려 오늘은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이 쌓여 짐작이 잘 되지 않는데 주차장도 충분히 넓다. 승용차는 불편없이 잘 돌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2. 창건유래

낙동강 7백리를 굽어 돌아가면 많은 절경이 있지만 특히 수하동(水下洞)에 이르면 물 맑은 그곳에 고기가 숨어 살다가 용이 되기를 기다린다는 용음리(漁隱里)가 있는데, 거기서 고기가 용으로 변해서 得天(득천)하며 발로 땅을 힘차게 박차며 발돋움 했다는 용득산(龍得山)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용득산에 중턱에 터를 골라 절을 짓고, 용득산에 오직 하나뿐인 사찰이라는 뜻으로 유일사(有一寺)라는 이름을 붙이기 되었다.




         <낙동강의 맑은 물을 내려다 보며 서 계시는 유일사 용신상. 눈이 덮혀 전체 모습을 잘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지형 상으로 용득산은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낙동강을 노려보며, 낙동강의 고기를 낚아채서 날아가는 형상이라 하는데, 그 어느 名山(명산) 어느 곳 보다도 큰 기도의 효험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 한다.
한 가지 소원을 세워 마치 독수리가 목표물을 얻듯이 일념으로 기도하면 그 소원도 꼭 이루어진다는 名刹(명찰)이 바로 유일사이다.

또한 이곳 유일사 바로 앞을 굽이쳐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에는 넓은 은빛 모래사장이 있어 종도들의 방생기도와 마음을 닦는 성지로 최적 장소이다.
번뇌와 시름에 찌든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고 낙동강의 맑은 물처럼 청정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기도 도량 유일사는 珉德(민덕)스님이 창건 하였는데 안동시 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절이 철거되게 되자 많은 곳을 찾던 중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아 1996년 7월 17일 용득산 중턱에 중창하여 창건 후 3년 뒤 64평 療舍(요사)를 완공하여 성스러운 가람을 이룩하게 되었다.


3. 건물의 배치


       <아름답게 단청한 이 요사의 서편은 주방이고, 동편은 스님의 처소이며, 중앙 넓은 마루에서 공양도 하고 모임도 갖는다. 북쪽에는
          작은  방이 여러 개 있어서 신도들이 기도하며 묵어 갈수도 있다.>




     <요사 안벽에 붙어 있는 이 글은 공양을 얻을 때 마다 감사하는 스님의 지극한 마음이 담겨 있다.>



    
           <승방에 있는 아름다움 종류석은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 불상으로 보일 수 있다. 모두는 오직  마음으로 생겨나니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가. 요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50m가량 걸어 올라가면 아름답게 단청한 療舍(요사)가 있다. 이 요사 안에 스님이 기거하는 방도 있고, 주방도 있어 신도들의 집회와 공양도 여기서 대부분 하게 되는 다목적 건물이다.

아마도 유일사에서 쓰임새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요사 뒤에 자리잡은 이 대웅전은 유일사의 중심법당이다. 3면 벽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하나 하나 사펴보기로 한다.>



      <대웅전 현판 글씨>



대웅전의 주련

                        


南無圓滿報身盧舍那佛(남무원만보신로사나불)
佛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普現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隨緣赴感靡不周(수연부감미부주)
而向此處菩提座(이향차처보리좌)
南無淸淨法身毘盧遮那佛(남무청정법신비로자나불)
<해>
        남무원만보신로사나불
        부처님의 몸이 법계에 가득해서
        널리 일체 중생의 앞에 나타나도다.
        인연을 따라 어디에나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보리좌에 향하여 앉으라.
        남무청정법신비로자나불


나. 대웅전

유일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웅장한 건물이며 대리석 돌 기단위에 시멘트로 다지고 여유로운 팔작지붕으로 지어서 볼수록 안정감이 있다.
대웅전 외벽에는 많은 벽화를 그려 부처님의 덕을 더욱 거륵하게 표현하였으면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협시보살을 두 분 모셨는데, 법당이 어두어서 어느 분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서편으로는 지장보살을 모셨는데 상호가 대단히 거룩하고 뒤에 그려진 후불태화도 近郊(근교)에서는 보기 드문 정교한 탱화였다.
그 밖에도 신중탱화가 있으며 커다란 琴鼓(금고)는 스님의 기상을 나타내듯 우렁찼다.




    <鹿野傳法相(녹야전법상)
     보리수나무 밑에서 도를 깨쳐 부처가 된 석가모니는 제일 먼저 향한 곳이 녹야원이다. 거기에는 처음 함께 수도하던 다섯 비구들이 수행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행주의를 버린 태자와 헤어져 녹야원으로 가서 수행하고 있던 다섯 수행자는 어느 날 태자가 자기네들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태자가 성도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은 서로 태자에게 알은체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태자가 곁에 이르자
     자기네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자리를 권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阿若憍陣(아약교진) 등 5비구에게 처음으로
     가르침을 폈으니 이것을 佛法(불법)의 첫 펼침, 즉 初轉法輪(초전법륜)이라고 한다.
    이때 부처님은 5비구에게 출가 수행자는 慾樂(욕락)과 苦行(고행) 두 극단을 버리고 中道(중도)를 취해야 할 것을 가르쳤으며 四聖諦
     (사성제)의 법문으로서 그들을 깨우쳐 진리의 세계에 눈뜨게 하였다.>



     <부처님의 관에서 두 발이 나오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러 제자들을 데리고 「구시니가라」 성 밖에 무성한 「사라수」 나무숲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기셨다.  발길을 옮기 시면서도 계속 주위를 살피시며 무엇인가 찾는 듯,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듯 마음이 편안
       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머지않아 이 사바세계에서의 모든 인연을 끊고 영원하고 완전한 해탈의 길을 얻는 無餘涅槃(무여열반)의 길에
       드실 때가 바로 눈앞에 다가 왔는데도 기다리던 제자 「가섭존자」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마침 그때 포교활동을 하러 먼 곳에 가 있는 10대제자 중에 한사람인 「가섭존자」와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자 그가
       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기다리던 가섭존자는 오지 않았고, 부처님께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아쉬움을 안은 채 열반에 드셨다. 슬픔에 잠긴 여러 제자들은 당시의 장례법에 따라 부처님을 관 속에 모시고 화장을 하려고 관을 불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은 불에 타지 않았고, 불은 모두 꺼져 버리고 말았으며, 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뒤늦게 멀리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말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관을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
       그러자 갑자기 관에 구멍이 뚫리고 부처님의 두 발이 관 밖으로 불쑥 나와 마치 가섭존자를 맞이하는 것만 같았다.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두 발에 얼굴을 비비대고, 두발을 가슴에 안고 그칠 줄 모르고 슬피 슬피 통곡하였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부처님의 마음과 가섭존자의 마음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以心傳心(이심전심)의 슬픈 이별은 드디어 끝을 내렸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관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마치 가섭존자를 기다리고 계셨는 듯 아무 일 없이 장례는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당 엽에 피다 진 나뭇가지 때문에 사진이 깨끗하지 못하며, 또한  마침 눈이 와서 발밑이 미끄러워
       활동이 불편하여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으나 나뭇가지는 마음으로 지우고 보시기 바랍니다.>




     <미륵불에 전할 가사를 들고 입정에 든 가섭존자
       미륵불은 인도 바라내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난 사람인데, 석존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그는 석존보다 먼저 入滅(입멸)하여 도솔천에 올라가 하늘에서 天人(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시다가, 석존 입멸 후 56억 7천만년을
       지나면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華林園(화림원) 龍華樹(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하신다. 그리하여 3회의 설법으로 석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가섭존자(迦葉尊者)는 그때 미륵불이 입어야 할 가사를 미륵불에게 전하려고, 부처님의 가사를 모시고 雞足山(계족산, 중인도 마가타
       국에 있음) 깊은 바위 굴 속에 들어가 입정에 들어서 미륵불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손에 모셔 든 것이 부처님의 가사이다.>




      <증장천왕
        산문이 별도로 없는 유일사에서는 사천왕을 대웅전 벽에 모셔서 부처님을 수호하고 있다. 이 벽화는 4천왕 중 증장천왕인데, 남쪽을
         지키는 호신장이며 자신의 위엄과 덕으로서 만물이 태여 날수 있는 덕을 베풀고 있다.  오른 손에는 용을 쥐고 왼 손에는 여의주를
         쥐고 있으며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다. 그의 부하로서는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고 산다는 富單那(부단나)와 아귀의 두목인
          「페러다」를 부하로 거느리고 있다.>



      <持國天王(지국천왕)
        동쪽의 수호신인 지국천왕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며, 늘 인간을 보살피고 인간
        들의 국토를 지켜준다. 보통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왼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손바닥에 보석을 올려놓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의 부하로는 富單那(부단나)와 乾達婆(건달바)가 있는데 건달바는 육체가 죽은 뒤 다른 육신을 받아서 태여 나기 전의 영혼 신이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고 사는 음악의 신이다.>



     <多聞天王(다문천왕)
     다문천왕은 북쪽을 지키는 신으로서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잘 지키며 부처님 곁을 멀리 떠나지 않고, 부처님의 설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장 많이 듣는다고 해서 다문천왕이라고 한다. 손에는 비파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영상을 하고 있다. 그의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이다. 손에는 늘 비파를 들고 있으며 수미산 북쪽을 지키고 있다. 그는 夜叉(야차)와 羅刹(나찰)을 부하로 삼고 있다. >



     <廣目天王(광목천왕)
       광목천왕은 죄인에게 심한 벌을 내려 매우 아픈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죄인으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고 道心(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손에는 탑을 든 형상으로 나타나며 서쪽을 수호하는 신장으로서 그의 부하로는 사람과 용의 살과 피를 빨아먹는 毘舍闍(비사도)
        라는 귀신을 거느리고 있다. >





<阿難尊者(아난존자)의 득도
아난존자(Ananda)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 한사람이며, 25년간이나 부처님 바로 곁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부처님을 시봉함에 게으르거나 싫증을 느끼지 않았었던 분이다. 그 긴 세월을 통하여 한 번도 불경스러운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부처님의 설법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도를 깨달은 자리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카아샤파」의 주재로 칠엽굴에서 제1회 結集(결집)을 할 때 거기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
문자가 없었던 그 당시 부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기억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한 목적과, 부처님 열반 후에 교단의 운영 문제등을 상의하는 첫 번째 회의가 제1 결집이었다. 거기에는 모두 도를 깨친 500명의 阿羅漢(아라한)만이 참석하는 곳이기 때문에 도에 이르지 못한 「아난다」는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
이에 크게 분발한 「아난다」는 홀로 절벽 끝에 가서, 발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7일간이나 꼼짝 않고 서서 용맹정진 한 결과 드디어 도를 깨달아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하여 장로들만 모이는 제1회 결집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降兜率相(강도솔상)  
     마야궁에서 의자에 앉아 홀연히 잠든 마야부인 꿈에,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이로서 부처님이 마야부인 몸에 잉태 되었는데 그 장면이 묘사 되어 있다.>




    <善慧童子(선혜동자)와 拘利天女(구리천녀)
     아득히 먼 과거세의 일이었다.
     세상에 연등불이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천지의 사람들은 다투어 연등불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인 선혜
     동자도 연등불에게 바칠 연꽃을 구하려고 사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연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버리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한 송이도 없었다. 늦기 전에 꼭 연꽃을 구해야하는 선혜동자는 울상이 되어 사방을 꽃을 찾아 뛰어 다녔다. 그런데 우연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靑蓮花(청연화) 7송이를 가진 구리천녀라는 여인을 길가에서 만났다. 동자는 뛸 듯이 기뻤다.
     그래서 동자는 천녀에게 자기가 갖은 전 재산인 은전 500냥을 줄 터이니 그 연꽃을 자기에게 팔라고 말하였다. 천녀는 선혜동자의 말을
     듣고,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이 꽃을 사서 무엇 하려 하는가 하고 물었다. 동자는 꽃을 연등불에게 바치고, 연등불로부터 내세에 성불
     할 授記(수기)를 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였다. 자기 일신의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고 고통에서 허덕이는 많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성불하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구리천녀는 그 말을 듣고 한참동안 동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조용히 말을 하였다.
     「나는 이 꽃을 그대에게 그냥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내게도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내 소원은 다름이 아니라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자께서 나와 결혼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자는,
     「나는 이미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몸이므로 지금 당장 결혼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라고 말하고, 만일 내세에서 만나 결혼을 한다
     해도 다시 수행을 위해 출가할 때는 언제라도 해여 질 수 있다는 조건이라면 구리천녀의 요구를 받아 들려도 좋다고 말하였다.
     이미 선혜동자에게 반해버린 구리천녀는 그 말대로 따르겠다고 하면서 7송이의 꽃을 동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5송이는 선혜동자의 원을
    위해, 2송이는 자기의 사랑을 위해 바쳐달라고 말하였다. 선혜동자는 꽃을 받아 나는 듯이 뛰어서 연등불께로 달라갔다.
    그후 몇 겁의 세월이 흘렀다.
    선혜동자는 이 세상에 싣달다 태자로 태어나서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되었고, 구리천녀는 아쇼다라 공주로 태어나서 태자의 비가 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만나 결혼은 했으나 전생에서 맺은 약속한대로 태자가 성불하자 그들은 서로 부부의 인연을 끊어 버렸다고
     한다.>




      <毘藍降生相(비람강생상)        
       아기 부처님이 태어나자 하늘에서 9마리의 용이 나타나서 입으로 물을 뿜어 아기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9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탄생한 아기부처님의 몸을 깨끗이 했다는 말은 많은 용이라는 상징적인 뜻이 담겨있다. 9라는 수는 10진법의 수에서 가장 큰
       수이며, 數之終(수지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부처님은 동서남북으로 각각 7발자욱식을 걸은 다음 한쪽 손으로 하늘을,
        또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외친다.  
        당당한 아기부처님에게 경배하는 많은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四門遊觀圖(사문유관도)                
       태자가 출가하기 전 왕궁의 사대문 밖을 나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받는 광경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바가 커서 출가를 결심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된 사건을 묘사한 그림이다.
      태자는 동문 밖으로 나갔다가 늙은 노인을 보고 명상에 잠기었으며, 남문 밖으로 나갔다가 병자를 보고 늙고 병드는 것을 느끼고, 서문
       밖으로 나갔다가 장례식 하는 것을 보고 인생의 무상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북문 밖으로 나갔다가 수행하는 沙門(사문)을 보고 출가할
      것을 결심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태자가 출가하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된 동기를 부여한 장면의 묘사이다.>




      <踰城出家相(유성출가상)
       인생이 무상함을 알고 그것을 해결하려 수도하고자 부왕의 만류와, 사라하는 아내의 간청을 뿌리치고 몰래 백마를 타고 마부와 함께
       왕궁을 빠져나가는 왕자를 묘사하고 있다.>




     <雪山修道相(설산수도상)
     출가한 태자는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성인들을 찾아가서 도를 구했으나 모두가 자기가 바라던 완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태자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도를 깨치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눈 덮인 산 속에 들어가서 6년 동안 뼈와 살을 도려
     내는 수행을 하였다.>




     <樹下降魔相(수하항마상)
      6년간의 수도 끝에 드디어 태자가 깨달음을 얻으려하자 마귀의 왕 「파순」이 이를 방해하기 위해 그의 부하 「아프사라스」등을 미녀로
      둔갑시켜 태자의 성도를 방해하려했다. 피리를 불고, 비파를 타고, 온갖 교태를 부리며 노래와 춤으로 태자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태자는 태연히 이를 물리치고 드디어 무상정각을 이룬 것이다.
      태자 주변을 빙빙 돌며 소란을 피우는 미녀들은 사실은 마귀의 부하들이므로, 그들이 들고 있는 거울에는 본 모습인 흉칙한 마귀
      얼굴이  나타나고 있다. 그때 태자의 마음은 정말로 힘겨운 악전고투를 하였다.
      산란해지려는 마음,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잡념, 검은 마음의 그림자, 나태해지려는 마음...... 그런 모든 것들이 악마의 내습으로 끝없이
      끝없이 태자에게 닥쳐왔다.
      그러나 태자는 마음 구석구석까지 그런 것들을 추구해서 산산이 파괴하고 말았다. 정말로 피가 흐르고 살이 찢어지고 뼈를 깎는 듯한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싸움도 끝이 나고, 새벽이 되어 샛별을 보자 태자의 마음은 밝고 맑아지고 깨달음을 얻어 드디어 부처가
      되었다.
      태자의 나이 35세 때인 12월 8일 새벽에 일이었다.
      태자가 앉아있는 坐法(좌법)은 降魔坐(항마좌)이며 마귀를 항복시키는 신통력을 갖은 좌법이다.  태자의 손 모양도 降魔觸地印
      (항마촉지인)이며 역시 마귀를 항복시킴을 상징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작은 벽화가 더 있지만 다 소개 못하고 대략만 소개 하였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첨가해서 완전하게 유일사 벽화를 전하여 한다.
그리고 대웅전 안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3배를 올리고 부처님과 기타 여러 가지 장면을 담아 소개하기로 하였다.




       <대웅전의 주불인 석가모니부처님과 좌우에 두분 협시보살.>



      <대웅전 안에는 천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절에 내 부처님을 아직 모시지 못해서 몹시 유감이지만 다음 인연이 닿으면 모시기로하고
        오늘은 종종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왔다.>




      <유일사의 지장보살. 지장보살의 상호가 거룩함은 물론이자만 후불탱화가 이렇게 거룩한 것은 좀처럼 보기가 드물다. 역시 민덕
        스님의  안목이 커서 이런 불화와 인연을 맺게 되었나보다.>



     <유일사의 영단. 대웅전 한 쪽에 모셔져 있다. 한문 글씨는
      南無大聖引路王菩薩(남무대성인로왕보살)이다. 영가를 잘 인도하여 안전하게 극락으로 모셔가는 보살의 명호이다.>



    <琴鼓(<금고)
     법회에 쓰이는 이 큰 종은 어떤 소리를 내는지 굼굼하다. 법회에 참석하여 한번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대웅전 안쪽 벽에도 벽화가 있는데 밖에 벽화 보다가는 규모가 크지 않다.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다음 유일사를 찾는 법우들은 모든 것을 무심히 보지 말고 찾아서 잘 살피시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린다.



     <기이한 사람 寒山(한산)
      寒山(한산)이 어떤 사람인지는 너무나 잘 알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를 보고 말한 것을 듣고 그가 읊은 시면 보면 한산이 어떠한 사람
      인지  더욱 잘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한산을 보고 말 한다.
        미친 사람이라고
        얼굴은 세상의 눈을 끌지 않고
        몸엔 다만 베옷을 걸쳤을 뿐
        내 말은 남이 모르고
        남의 말은 내가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알린다.
        왕래하는 자는 한산에 가볼 것이라고......

     오늘은 이 절 내일은 저 절, 절간 수체구멍에 흩어진 나물가지, 밥그릇에 붙은 밥알을 그 대통에 담아 그것으로 연명하면서도 부족함이
     없고 항상 즐겁기만 한다. 혹 습득을 만나면 박수 치고 노래하며 하늘을 보고 웃는다. 개구리를 만나면 놀려주고 호랑이를 만나면 겁도
      없이 때려준다. 무상도 잊고 열반도 잊었던 사람들! 그들의 웃음 속에 지금도 대지에는 아름다운 菩提(보리)의 꽃이 핀다.
     한산의 시 한 수 더 소개한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정을 못 이겨
        혼자 草庵(초암)에 누워 듣고 있나니
        앵두는 알알이 붉어 빛나고
        버들은 줄줄이 드리워 있네.
        아침햇빛은 푸른 산을 머금고
        개는 구름은 맑은 못을 씻는다.
        누가 저 티끌세상 능히 벗어나
        이 한산 남쪽으로 올라올 줄 알련고!
                                -한산시집에서- >



   <신중탱화.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 중앙부분이 흐린데, 눈이 녹으면  다음에 다사 가서 좋은 사진 찍어서 바꿀 생각이다.>




     <유일사 천정에는 부처님 머리 위 뿐만 아니고 3면으로 아름다운 닫집이 이룩되어 있다. 도솔천 내원궁울 상징하는 듯 무척 거룩해
      보인다.>




      <법고. 예불때는 이 커다란 법고 소리가 이 산천을 크기 진동시킬 것이다.>




      <법당 안에 모신 태극기.
       지금까지 많은 절을 찾아 가 보았지만 법당 안에 태극기를 늘 모시는 절은 유일사 말고 아직 본적이 없다. 이 한 가지 사실로서 미루어
       봐도 주지스님인 민덕스님의 나라사랑하고 겨래 아끼는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정말로 존경 받아야 할 겨래의 스승인 스님이다.>



       <연등. 많은 신도들의 소망을 담은 등이 대웅전 천장을 꽉 매우고 있다.>



      <대웅전을 나오려는데 문손잡이 옆에 정겨운 글이 적혀 있다. 스님의 따사로운 마음이 막 배어 나오는 것만 같다.
         「바람 차가운데 스님과 한잔 나누시지요.」 이 얼마나 자상하고 다정한 말인가. 물론 곡차가 아니고 전통차일 것이다.>




     <산신각.
      산신각은 유일사 뒷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마침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질까 겁이 났지만 부처님이 지켜 주리라 믿고 서서히 올라 갓다.
      새벽같이 일어난 스님이 이미 길을 열러 무리 없이 올라 갈 수가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여기서 멀리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의 맑은 물
      줄기를 잘 볼 수가 있다.>




      <山神閣(산신각) 현판 글씨>


    

<산신각의 주련>

靈山昔日如來囑(영산석일여래촉)
威鎭江山度衆生(위진강산도중생)
<해>
        그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 받아
        강산에 위엄 떨쳐 중생을 제도하시네.




     <산신각 안에 산신상과 산신탱화>




     <산신각 안에 모신 칠성탱화.>



매일 되풀이 되는 스님의 일과는 정말 대단하다.
僧家(승가)가 아니고 俗家(속가)에서도 이 스님 마큼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아침예불(03:30) 사시불공(10:00) 저녁예불(16:00) 등 하로 3번의 예불 외에도 새벽수행(04:00)을 비롯하여 하로의 생활 자체가 모두 기도이고 생활이다.

그러면서도 유일사 주변에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있다. 옛날 백장선사는 「하로 일하지 아니하면 하로 먹지말라.」하는 교훈의 말 처럼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스님이다.

이 많은 업적을 이룩하고 힘써 수행하는 민덕은 대단히 도가 높고 덕이 있는 스님이다. 친견하고 법문을 들어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혜안을
밝게 뜰수 있다.


유일사의 연락처는 다음과 같다.

전화   054) 858- 0197~9
Hp    011- 529- 0197
Fax   054) 858- 0199



       <대웅전 동편에 중창불사에 동참한 법우를 위한 비석이 서 있다.>




       <약사여래불인듯 한  불상이 서 있는데 눈에 덮혀 잘 알수가 없다. 개인날 다시 가서 참배할 마음으로 오늘은 그냥 돌아 왔다.>



      <12지신상이 서 있는데 눈에 묻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짐작으로 잘 알 수가 잇었다.>



      <12지신상 가가이에 석등과 수도가 있다. 석등은 2개이고, 여름에는 수조에 늘 맑은 물이 넘쳐흐른다고 한다.>







        <눈속에 서 있는 석불은 날씨 관계없이 찾아 온 나를 말없이 반기는 듯 하였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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