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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내 ] 영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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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루

안동시내에서 대구 방면으로 가는 길 천리 고가도로(高架道路)를 지나 영호대교 건너를 바라보면 맞은편 언덕위에 육중한 몸체를 아름답게도 강물에 드리운 채 우뚝 솟은 정자가 있는데 거기가 그 유명한 안동의 영호루(映湖樓)다.

도심(都心)을 빠져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고 택시로는 불과 몇 분 걸리지 않는다. 진입로 오르막길은 그리 높지도 않지만 나무 그늘로 덮여있어서 여름철에는 시원하여 산책과 피서에 그만이다. 지금의 영호루는 현대식 콘크리로 복원(復元)한 근대식 건물이지만 주위 환경이나 루(樓)아래 자연석 축대 사이에 조성한 조경(造景)과 몇 그루의 고목사이에 늠름하게 자리잡은 누각(樓閣)이야말로 옛날을 연상케 하여준다.

당초 영호루는 시내를 가로지른 당북천(堂北川)이 낙동강(洛東江)과 합수(合水)되는 서쪽 강안(江岸)에 있었으나 갑술[1934]년 수해(水害)에 떠내려 가버리고 없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른 경술년(1970)에 와서 유림과 뜻있는 분들의 재청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곳 정하동에 새로 복원(復元) 하였다.

규묘는 옛대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으로 단청(丹靑)을 말끔하게 하였다. 공민왕이 누에 올라 경치를 감상할 때는 남향(南向)으로 갈래산 문필봉(文筆峰)을 내다보았지만 지금은 그 정 반대로 돌아앉아 북향(北向)이나 안동 시가지(市街地)를 굽어 볼 수 있고 멀리 학가산(鶴駕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안동의 진산(鎭山) 영남산(映南山)과 읍기(邑基)의 좌청룡(左靑龍) 무협(巫峽)이 보이고 우백호(右白虎)의 성산(城山)이 보인다. 영호루는 영남(嶺南)의 삼대루(三大樓)중의 하나로 그 명성(名聲)이 가장 높았던 정자이다. 밀양의 영남루(嶺南樓)는 공민왕(恭愍王)때 지은 건물이고 진주(晉州)의 촉석루(矗石樓)는 고려 말기의 건물인데 비하여 안동의 영호루는 확실(確實)한 건축 연도는 알 수 없지만 고려(高麗) 충열왕(忠烈王) 때 이미 건축되어 있었던 것이니 삼대루 중에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자랑할 만 하다.

공민왕이 홍건적(紅巾賊) 난을 피하여 안동[福州]에 몽진(蒙塵)하여 그 와중(渦中)에서도 누에 올라 목은 이색 등 여러 신하(臣下)들과 경치를 가상(嘉賞)하였다. 그후 난리가 평정되자 환도(還都)하여 편액을 하사(下賜)하여 지금도 영호루(映湖樓)란 어필(御筆) 현판(懸板)이 걸려 있다.

그리고 누각의 남쪽에 걸린 한글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영호루는 역대 제왕과 깊은 인연으로 영광된 한때를 누린 화려한 경력을 자랑할 만도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였듯이 우여곡절(迂餘曲折) 또한 많았다. 이렇듯이 영호루는 숱한 애환(哀歡)을 지닌 채 물에 떠내려 간 것이 5번, 다시 세워지고 중수(重修)하기 7번이었다. 결국 8번째 복원(復元)되었는데 그때 물가를 피한 정하동 언덕이라 물과는 이제 상관(相關)없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목조가 아닌 철근 시멘트 집으로 복원된 것이 아쉬움을 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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