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 juntonggahun@naver.com
관광명소 안동의 시와 가사 안동의 민속 안동인의 논단 우리의 설화 전설과 해학
>> 안동소개 > 관광명소


[와룡,도산부근 ] 도산서원

청남이메일

도산서원(陶山書院)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사림에서 세운 사액(賜額) 서원(書院)이다. 선생이 처음 명종 12년[1557]에 이곳 산수 좋은 언덕을 택하여 도산서당(陶山書堂)과 농운정사( 雲精舍)를 건립하여 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다. 그후 선생께서 서거(逝去)하자 사림(士林)의 발기(發起)로 서당 뒤편에 사우(祠宇)를 세우고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였다.

서원의 건물은 모두 30동인데 경내(境內)와 주위(周圍)임야(林野)를 포함 총 98,296평을 보호구역(保護區域)으로 묶어 사적 제170호로 지정 안동시[도산서원 관리소장]에서 관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 <擇里志>에는 계승(溪勝)의 제일로 기록했고 뒷사람들은 안동팔경(安東八景) 중 하나로 <退溪門下洛江流>라 하였다.
  


1. 서원(書院)의 연혁(沿革)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이 처음 지은 <도산서당>이 전신(前身)이다. 1557년 도산의 남쪽에 터를 잡고 손수 마련한 청사진[室舍圖]으로 법연(法蓮)이란 중을 시켜 서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뜻하지 않는 그의 죽음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다시 중 정일(淨一)로 하여금 조영(造營)케 되었다. 그러니까 1560년 11월에 서당 3칸을 준공했다. <서무나 유명해서 다른 분들이 많이 소개하였음으로 여기서는 간단히 주림>
  


2. 위대한 동방(東邦)의 주자(朱子)

▣ 이황(李滉, 1501∼1570)

조선 중기의 대학자(大學者)이다. 자(字)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시호(諡號)는 문순(文純)이며 본관(本貫)은 진성(眞城)이다. 진사(進士) 식(埴)의 아들로 안동시 도산면 온혜에서 탄생(誕生)하였다. <서무나 유명해서 다른 분들이 많이 소개하였음으로 여기서는 간단히 주림>
  


3. 서원(書院)의 건물(建物)

▣ 도산서당(陶山書堂)
선생께서 직접 이곳에서 기거(起居)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길러낸 건물이다. 1557년에 착공하여 4년만에 완공 했는데 방은 완락재(玩樂齋),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 한다.
⊙ 완락재(玩樂齋)
락이완지(樂而玩之)란 주자의 명당실기(名堂室記)에서 따온 말이다. <樂而玩之 固足以終吾身而不厭> 즉, '도(道)와 리(理)를 즐기고 완상(玩賞)하며 죽을 때까지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암서헌(巖栖軒)
암서(巖栖)란 뜻은 속세를 떠나 산다는 말로 주자의 운곡시(雲谷詩)에 나온다. <自信久未能 巖栖冀微效> 즉, '학문에 자신이 오래도록 없었는데 바위에 기대서 라도 작은 효험을 바란다'는 뜻이다.

▣ 농운정사( 雲精舍)
제자(弟子)들이 기숙(寄宿)하면서 공부(工夫)하는 집이다. 공(工)자 모양의 평면(平面)을 가진 것은 공부를 의미한다. 제자들이 공부하는 마루는 시습재(時習齋)라 하고 쉬는 마루는 관란헌(觀蘭軒)이라 하였다.
⊙ 시습재(時習齋)
논어의 첫장 학이편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悅乎>에서 따온 것인데 '배워서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란 뜻이다.
⊙ 관란헌(觀蘭軒)
맹자에 "觀水有術 必觀其蘭"이란 글에서 따온 것으로 '물을 보는데도 법이 있으니 반드시 물결치는 이치를 살펴봐야 한다'로 <觀蘭>이란 수중의 큰 물결을 잘 관찰한다는 뜻이다.
⊙ 지숙요(止宿寮)
지숙이란 어떠한 곳에 머물러 잠을 잔다는 뜻이다.

▣ 상덕사(尙德祠)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祠堂)이다. 퇴계를 주향(主享)하고 월천을 배향(配享)했다.

▣ 전사청(典祀廳)
전사(典祀)란 조선조 장례원에 소속된 제사(祭祀)일을 맡아보는 곳으로 서원에서는 향사(享祀)할 때 쓸 제물(祭物)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 전교당(典敎堂)
전교(典敎)란 <顯宣尼之典敎>란 글에서 따온 것으로 공자의 법과 교를 밝힌다는 것인데 <典敎> 즉, <늘 지켜야 할 가르침, 가르침을 담당한다>는 뜻이다.[宣尼 : 文宣王 仲尼, 곧 공자를 말한다] 이건물은 서원의 강당(講堂)으로 한존재에는 원장(院長)이 기숙한다.
⊙ 한존재(閑存齋)
閑存은 헛된 생각을 막고 성심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 동서재(東西齋)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방이다. 동은 '박약재(博約齋)' 서는 '홍의재(弘毅齋)'라 한다.
⊙ 박약재(博約齋)
박약(博約)은 논어의 박문약예(博文約禮)에서 따온 말이다. 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써 절제하면 도가 어긋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학자가 폭넓은 학문을 하여 교양을 풍부하게 쌓는 동시에 이것을 집약하여 실행하는데 있어 예(禮) 즉 바른 생활양식을 규범으로 한다면 어긋나지 않아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 홍의재(弘毅齋)
넓고 의연한 마음 가짐을 홍의(弘毅)라 하는데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선비는 너그럽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 임무가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을 자기의 임무로 맡았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하랴? 죽은 뒤야 그만 둘 것이니 또 멀지 아니한가?

▣ 진도문(進道門)
진도는 학문을 하여 나아간다는 뜻이다. 근사록(近思錄)에 '明道若昧 進道若退'란 글이 있으니 곧, '도를 밝히는 것은 우매한 것 같이하고 도에 나아 감에는 물러 서서는 안된다'란 뜻이다.

▣ 광명실(光明室)
'萬卷書籍 惠我光明'이란 주자의 사언시 중에 나온다. <만권의 서적이 내게 광명을 안겨 주는구나>란 뜻이다. 광명실은 동서 두 개가 있는데 동 광명실에는 퇴계가 직접 보던 책들이 있고 서광명실은 근래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 장판각(藏板閣)
전교당 동쪽에 있는 집으로 출판소(出板所) 역할을 하였다. 서원에서 찍어내는 여러 가지 서책의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퇴계 문집을 비롯한 유묵(遺墨), 언행록(言行錄), 도산 12곡, 선조어필(宣祖御筆), 병서(屛書), 액자(額字) 등 총 2,790장의 목판(木板)이 보관되어 있다.

▣ 옥진각(玉振閣)
퇴계의 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1970년에 현대식 콘크리트조로 지었다. 이곳에 진열된 유품은 모두가 선생이 사용하던 일용품인 문방구와 실내 비품으로 하나같이 소박하고 검소하며 외면적인 꾸밈이나 사치(奢侈)를 떠나 오직 청빈(淸貧)에 만족한 도학자(道學者)다운 일면을 엿볼 수 있다.
⊙ 진열된 유물(遺物)
1] 실내비품 : 완석(莞席), 안석(案席), 장추(長 ), 등경(燈 ), 백자타호(白磁唾壺)
2] 문방구 : 매화연(梅花硯), 옥서진(玉書鎭), 흑단연(黑端硯), 연갑(硯匣), 서기(書 )
3] 청려장(靑藜杖)
4] 매화등(梅花 )
5] 투호(投壺)
6] 혼천의(渾天儀)
7] 서적류 : 성학십도(聖學十圖), 사문수간(師門手簡), 퇴계서초(退溪書抄),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퇴계문집(退溪文集), 심경후론(心經後論), 계몽전의(啓蒙傳疑) 등 다수

▣ 역락서재(亦樂書齋)
이 건물은 엄격히 말해서 도산서원의 건물은 아니다. 선생의 제자인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을 공부시키기 위해 그의 부친이 특별이 지어준 별개의 건물이다. 역락(亦樂)은 퇴계의 친필인데 논어에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온 것이다.

▣ 도산잡영(陶山雜詠)
퇴계는 도산서당과 주위의 자연을 7언시와 5언시로 노래 하였다. 그중 몇가지를 적는다.
1] 정우당(淨友塘)
도산서당 앞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이곳에 연(蓮)을 심어 연꽃과 더불어 벗했다.
연꽃은 더러운 흙탕 물속에 자라지만 때묻지 아니한 고운 꽃을 피우므로 그 고결(高潔)함을 퇴계는 완상(玩賞) 하였다.
2] 절우사(節友社)
서당 동쪽에있는 산기슭에 화단을 말한다. 이곳에 선생은 대나무, 매화, 국화, 소나무를 심어놓고 수시로 산책하며 자연을 즐겼다.
3] 몽천(蒙泉)
몽천이란 산밑에서 나오는 샘물이다. 몽이양정(蒙以養正)으로 곧, 바르게 가르친다는 의미다. 주역의 <象曰 山下出泉 蒙 君子以 過行育德> 산밑에 샘이 나는 것은 몽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서 행동을 과단성 있게 행하며 덕을 기르는 것이다.
4] 유정문(幽貞門)
서당앞의 출입문에 싸리로 엮은 사립문을 말한다. '유정(幽貞)'이란 '그윽하고 바르다'는 뜻인데 주역에 '履道坦坦 幽人貞吉' 가는 길이 넓고 평탄하니 그윽한 곳에서 수도하는 사람이야 말로 바르고 길할 것이다.
5] 열정(冽井)
서원 앞 광장 동북편에 있다. 물이 차고 마시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열정은 찬물이다. 주역에 <井冽寒泉食> '물이 맑고 차가우니 마실 수 있네'란 글에서 이름하였다.
6] 곡구암(谷口巖)
서원 구길 지금은 안동호로 수몰되고 없지만 입구로 들어가는 곳에 바위 하나가 있었다. 이를 곡구암이라 한다.
7] 천연대(天淵臺)와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
서원의 앞쪽 강안(江岸)의 좌우절벽의 경치가 아름다워 동쪽은 천연대, 서쪽은 천광 운영대라 하였다. 선생은 일찍이 이곳을 산책하였다.
⊙ 천연대(天淵臺)
<천연(天然)>이란 하늘에 있는 못을 말한다. 바위 절벽에 새긴 글씨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선조 때 영상]가 썼다. <鳶飛戾天 魚躍于淵> 솔개는 하늘높이 나르고 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는 시전(詩傳)에 있는 구절이다.
⊙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
햇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돈다는 뜻이다.
8] 석간대(石間臺)
석간대는 서원 내주차장에서 시사단으로 건너가는 선착장 우측 언덕에 있다. 옛날 선생께서 제자 이귀암(李龜巖)을 작별하면서 읊은 당시(唐詩) 한귀절을 바위에 새겨 두었다.
9] 시사단(試士壇)
시사단은 서원의 맞은편 강건너 섬마을 입구에 있었다. 이곳이 안동댐으로 수몰지역에 속하므로 안전하게 그 위치를 보존하기 위하여 1973년 정부에서 높이 10m의 석축을 쌓아 시사단을 그위로 이건하였다.
이곳은 정조16년(1792)에 정조(正祖)께서 규장각 각신(閣臣) 이만수(李晩秀)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과거를 보였던 자리다. 우리나라 역사상 지방에서 과거를 보인 곳은 도산뿐으로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