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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임동부근 ] 내앞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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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동쪽으로 영덕 방면 국도 34번을 따라 12km 쯤 가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즐비한 반촌 마을이 있다. 반변천이 앞을 흘러가므로 지명을 내앞[천전(川前)]이라 한다.
  


▣ 의성 김씨 종택[보물 제450호]

이 건물은 청계(靑溪)고택(古宅), 또는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평면은 '기(己)'자형으로 정면 11칸, 측면 8칸, 총 55칸인데 방마다 온돌이고 태양이 잘 들어오며 내당 마루는 3층으로 당시 가족제도(家族制度)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資料)를 제공(提供)해 주고 있다.

선조20년(1587) 겨울에 화재로 불타 버린 것을 학봉(鶴峰)이 중국의 재상가(宰相家)를 모방하여 한중(韓中) 절충식으로 건립한 것으로 특수한 건축기법(建築技法)을 지니고 있다.

건물의 평면은 '기(己)'자형이다. 이렇게 배치한 이유는 지리풍수(地理風水)설에 맞추어 맥을 자르지 않기 위함이다. 그래서 정침과 외당 사이에 기축(己丑) 일각문(一角門)을 두어 중문(中門)과 대문(大門)이 일직선으로 통하게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집의 터는 늪[池]이었다고 한다. 동해에서 안동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이 못 속에서 길 막이 귀신이 나타나 행인을 방해하여 이에 놀란 사람들은 사망하거나 아니면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고 한다.

<헛소리> 하지 말라고 장담하던 안동부사가 낮에 여기를 갔다가 귀신을 만나 혼겁을 먹고 허둥지둥 쫓겨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후 나라에서 이 못을 메우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들로 하여금 반드시 돌 한 개를 던져 넣도록 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가자 결국은 늪이 메워지게 되었다. 그 부지(敷地) 위에 종택이 건립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 귀봉종택(龜峰宗宅)[경상북도민속자료 제36호]

이 건물은 청계(靑溪)의  중자(仲子) 김수일(金守一)의 구택으로 세칭 귀봉종택(龜峰宗宅)이라 한다.
이 종가에는 세전(世傳) 가보(家寶)가 있으니 곧 경순왕(敬順王)의 옥적(玉笛), 문장검(文章劒), 연하침(煙霞枕), 매죽연(梅竹硯) 등 네가지다. 가보(家寶)에는 청계(靑溪)공의 유훈인 <寧須玉碎而不宜瓦全> "옥이 되어 깨어질지언정 기와가 되어 완전함은 옳지 않다."는 정신이 깃들어져 있고 자손의 면학(勉學)과 장학(奬學)을 위한 뜻도 있다.

운천(雲川) 김용(金涌)은 귀봉(龜峰)의 아들인데 그가 선조대왕(宣祖大王)의 몽진(蒙塵)을 호종(扈從)하고 쓴 책인 호종일기(扈從日記)는 보물 484호이다.
  


▣ 몽선각(夢仙閣)

몽선각도 택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월탄(月灘) 김창석(金菖錫) 이 벼슬을 물러나 망천에서 청유(淸遊)할 때 꿈속에 소동파를 만나서 놀았다고 정자의 이름을 몽선각(夢仙閣)이라 했다. 1956년 사라호 태풍(颱風)으로 유실된 것을 1985년에 새로 말끔히 복원하였다.
  


▣ 협동학교(協東學校)

이 마을에서 태어나 학문(學問)을 연마(硏磨)하고 나라 위해 봉사한 뭇 선인(先人)들이 심신(心身)을 달래어왔던 가산서당(可山書堂)의 옛터에 협동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현재는 없어지고 천전초등학교가 자리한다. 한말 우국(憂國) 충정(忠情)에 불타는 지사(志士)를 훈련하며 뜻을 키우려고 동산(東山) 류인식(柳寅植),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양 선생이 많은 애국 청년들을 불러서 조국광복을 위한 계책(計策)과 신학문을 가르치며 군사훈련(軍事訓鍊)까지 실시(實施)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1993년도에 <협동학교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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