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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임동부근 ] 지례 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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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 예술촌


지례(芝禮)는 조선 숙종 때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한 영남 남인(南人)을 대표(代表)하는 문신(文臣)이요 시인(詩人)이 였던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선생의 고장이다.

지례는 원래 행정구역상 임동면 지례리이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수몰(水沒)되고 잔여(殘餘)부락을 박곡리에 편입된 마을이다. 안동에서 영덕방면 국도 34번을 따라 가다가 약 20km 쯤에서 임동 수곡교(水谷橋)를 건너서 동남쪽으로 13km 더 가면 이곳에 이른다. 길은 포장이 덜 된 곳도 있으나 경사면은 포장되어 승용차가 쉽게 갈 수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하여 지례를 일러 사람들은 도원향(桃園鄕)이라 불렀고 지리풍수설이 말하는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뚜렷하고 배산임수(背山臨水)로 전형적(典型的)인 명당형국(明堂形局)이기 때문에 인재(人才)가 많이 배출되었다.
지촌(芝村)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명유(名儒)가 많이 배출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근대(近代) 이후에 와서도 시인(詩人)이나 학자(學者)가 많이 나왔으니 김종길(金宗吉)과 김호길(金浩吉)도 지례가 고향(故鄕)이다 .

감여가(堪與家)들이 말한 휴수(休囚)는 바로 이것인가? 지례의 사람들은 임하(臨河)댐 담수(潭水)로 산지사방(散地四方)으로 흩어지고 말았으니 일부는 상주(尙州) 일부는 안동(安東) 또는 임하(臨河)로 떠나 버렸다. 그러나 지촌파의 종손인 남정(南井) 김구직(金九稷)씨는 '종손인 나 마저 떠난다면 조상이 끼친 유업(遺業)을 그 누가 지킨단 말인가?' 참으로 종손(宗孫)다운 말이다 . 어려움을 무릅쓰고 강행하여 지촌 선생의 유적을 한곳으로 모았으니 지산서당(芝山書堂) 지촌종택(芝村宗宅) 및 사당(祠堂) 그리고 지촌제청(芝材祭麗)이다. 이처럼 고건물들이 즐비해지자 새로운 마을로 형성되었으니 바로 오늘의 지례 예술촌(藝術村)이다. 서구(西歐)에서도 들어보기 힘드는 <예술촌>이 국내에 최초로 생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뜻도 몰랐는데 지금은 예술촌으로 명실공히 안동문화권 내의 관광명소(觀光名所)로 자리 매김을 굳혀가고 있다.  이는 오로지 차 종손인 촌장(村長) 김원길(金源吉)씨의 끈질긴 노력의 결정(結晶)이라 찬사(讚辭)를 보내는 바이다.

예술촌은 문자 그대로 예술인(藝術入)들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마음놓고 창작에 몰두(沒頭)할 수 있는 공간이다. 수백년 전에 조영(造營)된 이끼낀 고가(古家)를 그대로 옮겼으니 겨울에는 따스하고 여름엔 시원한 우리의 전통(傳統) 고가(古家)에서 풍기는 조상의 지혜를 듬뿍 맛볼 수 있고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자리하여 그윽한 대자연은 누구라도 시심(詩心)이 그대로 뭉클 솟는다. 그래서 지금은 외국인도 오거니와 경향각지(京鄕各地)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찾아 들고  있다.

특히 예술인(시인:김원길)이 직접 운영하므로 예술인들의 사정과 욕구를 이해하여 제반준비물이나 편의시설은 만점이란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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