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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임동부근 ] 봉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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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사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岐山(기산)에 있는 절.

경상북도 유형분화재 제141호(1980. 6. 17)로 지정된 이 사찰은 신라 선덕여왕 13년(644)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확실한 사료가 없어서 누가 언제 세웠는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절은 임하땜 뒤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주변 풍광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유래와 전설

봉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13년(644)에 창건되었다고 전하여지나 확실한 사료가 없어서 누가 언제 세웠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영가지에 따르면 임하현에서 동쪽으로 15리 떨어진 기산(岐山) 아래에 있는 신라 고찰이란 기록만 전할 뿐 다른 말은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 18년 전인 1980년 당시 주지가 사찰 옆 개울 속에서 아기산봉창사사적비(鷄岐山鳳鳳寺事蹟碑)를 찾아냄으로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비석이 너무나 많이 훼손되어 전문을 판독 할 수가 없어 대략의 개요만을 알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창건당시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던 것 같았는데, 임진왜란 때 모든 전각이 불에 전소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 대웅전과 요사 1채만 중창되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선당인 설선당이 1997년에 완공되었고, 1999년에는 극락전을 복원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중에 있다.

봉황사 대웅전의 단청은 몇 차례 보수를 하면서 다시 칠하여 졌으나 내부의 단청은 예부터 전해오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서 매유 중요한 사료가 되며 학계의 관심이 높다.
법당 내부에는 종량과 중량, 고주, 우물천장, 빗천장 등에 화려하게 단청이 되어 있다. 우물천장에는 연화문이 채색되어 있고, 빗천장에는 봉황 ·학 ·신전 등이 구름을 배경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
또 종량과 중량. 도리에는 뛰어난 선과 색상을 보여주는 단청이 아름다움을 자아 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낸다.

이렇게 빼어난 단청은 사람이 아닌 봉황이 그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대웅전을 중창한 후 봉황이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단청을 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정면과 좌 ·우 측면을 끝내고 건물 뒤에 단청을 할 때 그만 사람들이 쳐다보자 끝내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 오늘까지 뒷면에는 단청을 하지 못하였다고 전하여 진다. 사적비에도 나오는 봉황사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연유가 된 듯하다. 또한 봉황사가 있는 아기산에는 예부터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들이 아들을 잉태하기 위한 기자속(祈子俗)이 은밀하게 전해지기도 한다. 아들을 잉태하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던 기자바위가 사찰로 올라가는 길가에 아직도 남아있는데, 아빠바위와 엄마바위가 바로 그 대상이다. 아빠바위는 길쭉한 자연석으로 머리 부분에 둥근 테가 둘러져 있고, 엄마바위는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다. 엄마바위는 아빠바위에서 동쪽으로 10여m 떨어져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이 정성껏 치성을 드리고 아빠바위에 아무도 몰래 올라타고 몸을 밀착시키면 아들을 잉태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아빠바위에 올라서서 엄마바위를 향하여 돈을 던져 움푹 패인 구멍에 동전이 들어가면 아들을 잉태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또 다른 기자바위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봉황사 간이주차장 옆에 있는 과수원에서 관정을 파다가 발견한 것으로 너무나 사실적으로 생긴 남근석이다 이 남근석은 과수원 옆에 사는 김중기씨가 발견하여 보관하던 것을 1991년 안동시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여 기자속 연출장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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