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葡萄(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횐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시인 이육사의 고향은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이다.

퇴계종택을 나와 10여 분 정도 달려 고개를 하나 넘으면 낙동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원천리(遠川里)가 나온다. 기암괴석의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분지로 된 들판 한가운데를 푸른 강물이 산 사이를 휘돌아 남으로 흘러간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 마을이 항일 민족시인 육사 이활(陸史 李活)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 오기를 기다리던 청포도의 고향이다.

왕모산에서 해가 떠 쌍봉으로 지는 원천마을이지만 이 마을은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육사가 늘 그리워하고 꿈꾸던 광복의 염원이 서린 마음의 본향(本鄕)이다.

육사는 1904년 음력 4월 4일 도산면 원천리 881번지에서 아버지 이가호(李家鎬)와 범산공 허형(凡山公 許衡)의 자녀인 어머니 허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육사는 퇴계의 14대 손인데 형제들은 원기(源璂), 원록(源綠, 육사의 본명, 뒤에 활(活)로 개명), 원유(源裕) 원조(源朝), 원창(源昌) 다섯으로 모두 인물됨이 출중하였다. 원기는 한학자로, 원유는 서예가로, 원조는 문학평론가로, 원창은 언론인으로 그 기량을 떨쳤다

체질적으로 성격이 비슷한 원기, 육사, 원유 세 형제가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는데, 육사는 밀명을 받고 1725년 (당시 21세) 중국 북경으로 갔다. 북경사관학교에 잠시 적을 두었다가 귀국한 그 해, 장진홍(張鎭弘)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에 폭탄 반입자로 연루되어 체포된다.

육사는 3년형의 언도를 받고 대구형무소에 두 형제와 함께 투옥된다. 이때 그의 수인번호가 64번이었는데 이 때 아호를 아예 육사로 지었다고 한다.

조국의 해방을 꿈꾸며 ｢다시 천고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며｣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던 육사는 일본제국주의 강점 하에서 조국 광복을 염원하는 행동파 시인으로 온갖 신산(辛酸)의 고초를 다 겪다가 조국의 광복을 눈앞에 둔 1944년 1월 16일 북경의 싸늘한 감옥에서 끝내 마흔 살의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그의 유해는 보름 뒤에 돌아와 원천리 됫산 낙동강을 굽어보는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있다

원천리 생가터에는 계란모양으로 큼지막하게 조각한 흰 돌 위에 육사의 대표작인 <청포도(靑葡萄)>가 새겨진 시비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