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시경) 秦風(진풍) 渭陽(위양) 제2장
我送舅氏(아송구씨) 悠悠我思(유유아사)
何以贈之(하이증지) 瓊瑰玉佩(경괴옥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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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외삼촌을 전송하니, 갖가지 생각 끝이 없네
무엇을 선물로 드릴까, 아름다운 패옥을 드리리라.
【注】
유유(悠悠)....... 길고 끝이 없는 모양.
경괴(瓊瑰)....... 옥과 같이 아름다운 돌
옥패(玉佩)....... 패옥
외삼촌을 전송하고 오니, 온갖 일들이 생각나 깊은 시름 속에 빠져든다. 무엇을 선물로 보내 들릴까. 아름다움 패옥을 보내자.
시서(詩序) 집전(集傳) 모두 이 시는 진(秦)의 강공(康公)이 태자였을 대, 그의 외숙부인 진(晉)의 문공(文公)을 위양(渭陽)에 전송할 때의 시라고 한다. 그 내용은 춘추(春秋) 경전(經典)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처음 진(晉)의 헌공(獻公)은 가국(賈國)에서 부인을 취했으나 자식이 없었으므로, 제강(齊姜: 아버지 무공의 첩)을 증(烝: 上淫을 말함)해서 목희(穆姬)와 태자 신생(申生)을 낳았다. 그리고 다시 두 여자를 융(戎)에서 얻어, 대융(大戎)의 호희(狐姬)가 중이(重耳: 뒤에 문공)을 낳고, 소융(小戎)의 여자가 이오(夷吾: 헌공 다음에 즉위한 혜공)를 낳았다. 또, 진(晉)이 여융(驪戎)을 첫을 때, 여융(驪戎)의 남작이 그의 딸 여희(麗姬)를 헌공(獻公)에게 주었다. 여희(麗姬)는 진(晉)에 돌아온 다음 해제(奚齊)를 낳았다. 여희(麗姬)의 여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麗姬)가 헌공(獻公)의 총애를 받는 것을 믿고, 그가 낳은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제후들을 매수하고 참언을 퍼트려, 태자 신생(申生)을 곡옥(曲沃)으로 보내고, 중이(重耳)를 포성(蒲城)으로 보내고, 이오(夷吾)를 굴성(屈城)으로 보내어, 모든 왕자를 모두 국도(國都)에서 쫓아내고, 드디어 해제(奚齊)를 태자로 하였다.
그로부터 8년 뒤, 여희(麗姬)의 참언으로 태자 신생(申生)은 자살을 했다. 그러자 세상사람들은 애태자(哀太子) 공태자(恭太子) 하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자 여희(麗姬)의 아들 해제(奚齊)도 진(晉)의 대부 이극(里克)에게 살해당하고, 그의 동생인 탁자(卓子)도 또한 살해되었다.
목희(穆姬)는 진(秦)의 목공(穆公)의 부인이 되었다. 이오(夷吾)는 제(齊)와 진(秦)의 도움으로 진(晉)에 들어와 군이 되었다. 그가 혜공(惠公)이다. 그런데 혜공(惠公)은 진(秦)을 배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진(秦)의 목공(穆公)과 진(晉)의 혜공(惠公)은 한원(韓原)에서 싸워, 혜공(惠公)은 생포되어 진(秦)에 압송되었으나, 목부인(穆夫人)의 도움으로 풀려나서 진(晉)으로 다시 돌아왔다. 혜공(惠公)이 죽자 그의 아들인 회공(懷公)에게 대를 있게 했으나, 진(秦)의 목공(穆公)은 중이(重耳)를 도와 그를 진(晉)에 보내어 군(君)으로 했다. 중이(重耳)는 회공(懷公)의 숙부에 해당한다.
중이(重耳)는 려희(驪姬)의 난으로 17살에 진(晉)을 나와, 그 뒤 17년간을 여러 나라를 방황하다가 비로소 진군(晉君)이 되었으니, 이가 바로 춘추(春秋)오패(五覇)의 진(晉)의 문공(文公)이다.
이 시는 목공(穆公)이 문공(文公)을 받아드린 다음, 목공(穆公)의 아들인 강공(康公)이 아직 태자일 때, 문공(文公)을 위수(渭水)에 전송하고, 어머니(목부인)의 죽음을 생각하며, 외삼촌을 볼 때 어머니(목부인)를 그리는 정이 간절해서 즉위 후 그 마음을 시로 적은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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