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선유(船遊)
안동시 풍천면 하회 마을은 풍산류씨 동족이 마을을 이루어 사는 집성촌으로 임진왜란 때의 영의정 류성룡 선생의 고향으로 더욱 알려져 있다. 낙동강이 반 S자형으로 감돌아 흐르는 기슭에 위치하여 과거 시인묵객이 자주 들러 이 화려한 경관을 찬탄하기도 했다. 서민층의 별신굿으로 유명한 이곳은 강 넘어 절벽 부용대(芙蓉臺)가 솟아 있고, 강 이쪽 마을 가에는 솔이 우거진 만송정(萬松亭)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하회 마을에 애초에 허씨들이 살았고, 다음에 안씨들이 살았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 류씨가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선유(船遊)는 이 마을의 상하 층 동민들이 해마다 가을 달 밝은 밤에 즐기던 놀이로서 뱃놀이, 줄불, 낙화(落火), 달걀불 등 네 가지 놀이로 분류할 수가 있고, 애초에 선유라 불리던 상류사회의 놀이이다.
옛날 중국 북송(北宋)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황주에 유배되었을 때에 적벽강(赤壁江)에 배를 띄워 유유자적하며 적벽부를 짓고, 또한 묵객들과 더불어 호연지기를 펴며 뱃놀이를 한 사실을 흠모 동경하여 모방한 선비들의 풍류라고 전한다.
또 하회마을은 류성룡 선생의 고향으로서 그가 관직을 물러나 낙향한 뒤에 그의 형 겸암과 더불어 뱃놀이를 했다는 유래를 근거로 17세기 초부터 해마다 놀이를 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 앞 낙동강에서도
아주 옛날부터 뱃놀이와 불꽃놀이가 해마다 있었다고 하니 이로 미루어 보면 낙동강 상류의 절벽이 솟아 있는 도산과 하회에서 일찍부터 소동파(蘇東坡)의 뱃놀이와 같은 시인 묵객의 시회(詩會)를 중심으로 한 풍류놀이와 그에 따르는 화려한 행사가 베풀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차츰 발달하여 하회에서는 약 200년 전에는 분명히 이 놀이가 존재하였으며 차츰 흥취 있는 놀이로 발전한 듯하다.
놀이 내용
음력 7월 기망(旣望), 이 날 밤 등근 달이 동천에 떠오르면 6~7명의 선비들이 나룻배를 타고 강물 위에 뜬다. 선비들은 하회에 사는 지체 높은 학자와 원근에서 초청된 시인묵객들이다. 배에는 네 기둥을 세워 차일을 치고, 주위가 밝게 초롱을 단다. 서로 술잔을 권하며 흥이 돋으면 적벽부를 외면서 시창(詩唱)을 시작으로 놀이는 개시된다. 이렇게 하여 시회(詩會)는 열리고, 가을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기는데 이때 하늘에는 「줄불」로부터 불꽃이 강물 위에, 계속해서 떨어진다. 이 줄불은 가장 이채롭고 화려한 것으로서 만드는데 많은 경비와 노력이 소요된다.
뽕나무 숯가루에 소나무 겉껍질 가루를 섞어서 소금을 조금 넣고, 창호지로 만든 45cm 정도의 봉지에 채워 넣는다. 이 봉지는 지름이 2~3cm로서, 길이 5~6cm 정도 되는 곳마다 굵은 실로 허리를 조아 맨다 그리하여 초저녁에 미리 긴 새끼줄을 마련하여 4~5m 간격마다 한 봉지씩 단다. 새끼줄은 부용대 언덕 위의 소나무에 걸고, 아래로는 만송정 굵은 소나무에 매어 다는데 만송정 쪽에서 쑥에 불을 붙이고 봉지 끝에도 불을 붙이면 부용대 쪽에서 서서히 당겨 올린다. 불은 천천히 타오르고 팍팍 소리를 내면서 불꽃이 강 위로 허공에서 떨어진다. 이러한 줄불은 서너 군데에 마련된다.
때로는 부용대와 겸암정 사이에도 이 줄불이 걸쳐 졌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줄봉지의 연소시간은 두세 시간 걸린다고 한다. 뽕나무 숯 봉지는 안동 일대에서 흔히 만들어지던 것으로 보름날밤 밝은 달빛을 이용하여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잡귀 신을 막기 위하여 대문 밖에 긴 장대를 세워 이 숯가루 봉지를 매달고, 불을 붙여 축귀(逐鬼)하던 ' 때에 흔히 만들어지던 것이다.
달걀불은 원래 달걀 빈 껍질에 종이나 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넣고, 기름을 부어 불을 켜는 것인데 근대에는 백여 개의 바가지 쪽을 마련하여 기름을 먹인 솜뭉치를 놓고 불을 붙인다. 그리하여 부용대 위쪽 형제암(兄弟巖) 부근에서 한 번에 200~300개씩 띄워 보내거나 통배를 탄 서민들이 줄곧 강물 위에 띄우면 많은 불꽃들이 서서히 옥연정 앞 소를 향하여 떠내려가서 맴돌게 되어 선유에 한층 흥취를 더하게 한다. 이 무렵에 이따금 낙화가 행하여진다. 미리 부용대 절벽 위에 서너 명이 올라가 있어 강물 위 배 안에서 시 한 수를 지었다는 발표가 나면 강가에 모여 있던 관중들이 "낙화야"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부용대 위에서 솔가지 묶은 단에 불을 붙여 강 위를 향하여 힘껏 내던진다. 이 낙화는 시뻘건 불덩이가 되
어 떨어지다가 절벽 밑 바위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지니 낙화와 함께 퉁겨지는 불꽃이 또한 장관이라고 한다.
이 네 가지의 놀이는 선유가 주이고, 줄불, 달걀불, 낙화는 선유의 흥취를 돋우기 위한 야간 행사의 여흥으로서 마을의 농민들이 며칠 전부터 도구를 만들고, 이 날 밤 실행하는 것이다. 이 놀이는 1933년경까지 전승되다가 중단되고, 그 후 두세 차례 재현되었으며 근래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행사 때에 매년 두 차례 재현되고 있다.
-자료 출처: 안동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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