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군라지 박물관 숭원각(崇遠閣)의 보물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600여년을 지나오며 자랑스럽게 살아오던 광산김씨 세거마을인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는, 안동댐 건설로 물 속에 잠기게 되었다.
귀중한 문화재를 그대로 수장(水葬)할 수 없다는 뜻있는 사람들의 건의와 후손들의 뜨거운 열의로, 현 위치에 7,000여 평의 부지를 마련, 광산김씨 예안파의 여러 고가(古家), 정자(亭子), 누각(樓閣), 누문(樓門), 종택(宗宅), 재실(齋室), 묘우(廟宇) 등을 한 곳으로 집단 이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문명으로서도 쉽게 만들 수 없는 귀중한 옛 유구(遺構)들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문화재로 지정하여 길이 보존하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후조당(後彫堂)에 딸린 대청(大廳)과 종택(宗宅)을 해체(解體)하던 중, 그 건물의 천장과 누상(樓上), 공방(空房)에 오래도록 감추어진 수천 점의 문헌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들 문서 중에는 보물급에 해당하는 문헌이 적지 않으며, 학계의 중요한 연구자료로서 매우 귀한 문서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그 고문서들은 즉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탈초(脫草)․분류․정리 작업을 거쳐 『광산금씨오천고문서(光山金氏烏川古文書)』란 제목의 큰 책으로 1982년에 상재되었고, 다시 1990년 3월 2일자로 그 중의 고문서 7종 429점이 일괄적으로 보물 제1018호로 지정되었다.
아울러 전적(典籍) 13종 61점이 역시 일괄적으로 보물 제1019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그 귀중한 보물들과 그밖에 여러 보물․국보급 유물들이 이전 건립된 오천 마을의 신축한 숭원각(崇遠閣)에 소장되어 있다. 그 보물들은 광산김씨 예안파의 귀중한 보물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재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많은 사가의 문헌이, 전연 손상되지 않고, 분실됨이 없이 발견되기는 너무나 드문 일이며, 학계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 그 귀한 문서들이 국문으로 번역되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고 또한, 연구 자료로 많이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현재 숭원각 안에는 보물 제1018호로 지정된 429점의 보물과, 보물제 1019호로 지정된 61점 외에도, 아직도 지정도지 않는 귀중한 많은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