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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安東의 書院(안동의 서원)

청남

 

 

安東書院

 

최다 62개소, 현재 26개소

서원은 조선조(朝鮮朝) 중기(中期)부터 보급된 민간(民間) 사학(私學)기관(機關)이다. 서원이란 명칭은 당나라 현종(顯宗) 때 여정전(麗正殿)서원, 집현전(集賢殿)서원 등의 설치(設置)에서 유래(由來)한 것으로 원래 국내외(國內外)의 명현(名賢)을 제사(祭祀)하고 청소년을 모아 인재(人才)를 기르는 사설(私設) 교육기관(敎育機關)이었는데 선현(先賢)을 제사(祭祀)하는 사()와 자제(子弟)를 교육하는 재()가 합해져서 서원(書院)이 성립(成立)되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유교(儒敎)중심 정책(政策)을 써서 고려(高麗)의 사원(祠院)을 대신하여 서재(書齋), 서당(書堂), 정사(精舍), 선현사(先賢祠), 향현사(鄕賢祠) 등을 장려(獎勵)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서원은 재와 사의 두 기능(機能)을 합한 것이 못되었으니 1542(중종37)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순흥에 고려의 학자(學者)인 안향(安珦)을 모시는 사당(祠堂)을 짓고 이듬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한 것이 최초(最初)이다.

그후 전국 각지에 많은 서원이 생겼으며 1550(명종5)에는 퇴계 이황(李滉)께서 건의(建議)하여 백운동이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액(賜額)을 받았고 책()과 노비(奴婢) 그리고 전결(田結)을 주어서 장려(獎勵)하므로 우리 나라 최초(最初)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된 것이다.

이를 시초(始初)로 때마침 황폐(荒廢)되어가던 향교(鄕校)에 대신하여 국가의 보조(補助)를 받는 서원이 각처에 설치되었다. 그리하여 명종(明宗) 이전에는 29, 선조(宣祖) 때는 124, 숙종(肅宗)때는 한 도()에 무려 8090개로 서원이 늘어났다.

한편 서원은 양적(量的)인 증가(增加)뿐만 아니라 일종의 특권적(特權的)인 것이 되어 여기에 부속(附屬)된 토지에는 조세(租稅)를 과하지 않았고 또 양민(良民)이 원노(院奴)가 되어 군역(軍役)을 기피(忌避)하는 곳으로 전락(顚落)되었다.

유생(儒生)은 향교(鄕校) 보다도 서원에 들어가 학문을 공부하는 대신 붕당(朋黨)에 가담(加擔)하여 당쟁(黨爭)에 골몰하고 심지어는 서원을 근거로 향민(鄕民)을 토색(討索)하는 폐단도 생기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서원의 남설(濫設)과 누설(累設)은 조정(朝廷)의 중대한 두통꺼리가 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따라서 인조22(1644)부터는 서원설치를 허가제(許可制)로 하였고 효종(孝宗)8(1657)에는 서원의 누설(累設)자를 처벌(處罰)하는 규정(規定)을 발표(發表)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계속해서 영조(英祖), 정조(正祖), 철종(哲宗) 등도 서원 정비(整備)에 노력하였으나 성과(成果)를 얻지 못하였다. 정조 때는 650개의 서원이 전국에 남아 있었다. 그중에 도산서원(陶山書院), 송악서원(松嶽書院), 화양서원(華陽書院) 만동묘(萬東廟)가 유명했다.

우후죽순(雨後竹筍) 처럼 난립(亂立)한 서원에서는 본래의 목적을 이탈(離脫) 여러 가지 작폐(作弊)가 생기자 고종(高宗)2(1865) 3월에 만동묘를 철거(撤去)했고 고종(高宗)8(1868) 8월에 전국 47개 사액(賜額) 서원(書院)을 제외(除外)하고는 모조리 훼철(毁撤)되었다.

그러나 서원은 사학(私學)의 중추(中樞) 기관(機關)으로서 조선조 정치이념인 성리학(性理學)의 부단(不斷)한 연마(硏磨)로 사림(士林)들의 기풍(氣風) 진작(振作)은 물론이고 수많은 인재(人才)를 양성(養成)하여 국가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실은 오늘날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지방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서원은 역동서원(易東書院)이다. 융경(隆慶) 정묘년(명종22, 1567) 겨울에 월천(月川) 조목(趙穆)이 기술(記述)역동서원건립기에 의하면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의 학문(學問)과 절의(節義)가 후학(後學)들의 스승이 될만하며 또한 예안에 서원이 없음을 부끄러운 일이니 사력(事力)이 미치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명종18(계해, 1563) 봄에 포산 곽황이 현감으로 부임하여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하지 않음이 없었고 폐가 되는 것은 모두 제거(除去)하여 선정을 베풀어 공장(公藏)과 사축(私蓄)이 모두 늘어났다.

명종21(1566)에 관아(官衙)를 짓고 남은 기와 9,000장을 기부하니 김부필(金富弼)과 금응협(琴應夾)이 주관(主管)하여 서원(書院) 건립(建立)을 발의(發意)하게 되었다.

이에 퇴계(退溪) 선생께서도 적극(積極) 주선(周旋)하여 장로(長老)들을 모아 의정하니 현내 160호에서 170석이 모이게 되었다.

이에 사림(士林)을 모아 역사(役事)를 시작하였는데 김부필은 남의 갑절이나 되는 식을 지출 하였던 것이다. 이 일을 맡아본 사람들은 김부필(金富弼) 금보(琴輔), 금응협(琴應夾), 우극창(禹極昌), 금난수(琴蘭秀), 조목(趙穆)이 었다.

곽 현감(縣監)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관리 감독하였으며 인부들의 임금을 담당 하였을 뿐 아니라 경내의 여러 사찰(寺刹)에서도 일을 거들게 하였고 장점(匠店)도 일을 협력토록 하였다.

또한 사창(社倉)에서도 모여곡 40석 작포지 15필을 부조(扶助)하였으며 안동(安東)부사(府使) 윤복(尹復)도 곡식 10석 대목(大木) 10()를 보냈으며 경내(境內)의 모든 사람들이 원근과 대소를 막론(莫論)하고 서원(書院)건립(建立)에 협조(協助)하였다…….

그해 초 여름에 서당(書堂)이 이루어졌으니 전열(前列)의 강당(講堂)은 명교당(明敎堂)이라 하고 동서재는 정일재(精一齋), 직방재(直方齋), 사당(祠堂)은 상현사(尙賢祠)라 하고 남쪽의 대문은 입도문(入道門)이라 하였다.

서재의 서쪽에 주사(廚舍)를 세우고 이 모든 것을 역동서원(易東書院)이라 하니 명칭은 퇴계(退溪) 선생이 정한 것이다……. 그해 겨울에 곽현감이 이임하게 되니 그는 서원의 유지에 관한 제반조치를 극진히 하였으며 경내의 사사(寺社)의 전답 200부를 서원전(書院田)으로 하여 준 것이다.

이때 김부필(金富弼), 이완(李完), 금응협(琴應夾), 김부의(金富儀), 금보(琴輔) 등은 각기 전답을 기부(寄附)하였고 곡식(穀食)으로 대납(代納)한 사람은 박사희(朴士熹) 김생명(金生溟)이다……. 곽현감은 전후 합하면 베 40(), 곡식 110섬을 기부하였다. 우리 고을이 어진 수령을 만나고 또 온 고을이 합심 합력하여 전에 없던 성대한 일을 하였으며 찾아보기 힘든 길지(吉地)를 얻어 수 백년 동안 민척()된 옛 자취를 지금다시 나타 나게 하였다. 고 한 것을 보면 서원 하나를 건립 하는데 드는 돈과 인력은 막대하였으며 또 이를 운영하고 유지하는데도 전답이 소용(所用)되니 지방에서는 참으로 큰 역사(役事)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숙종35(기축, 1709) 사빈서원(泗濱書院)의 이건 일기에도 같은 상황을 적었다. 사빈서원은 원래 숙종 1(을묘, 1675)에 경출산하(景出山下)에 청계(靑溪) 김진(金璡) 공의 유상(遺像)을 봉안하고 사빈영당(泗濱影堂)이라 하였고 숙종(肅宗)11(을축, 1685)에 사림(士林)과 내외(內外) 자손(子孫)이 합심하여 다섯 아들을 배향(配享)하고 묘호(廟號)를 경덕사(景德祠)라하여 제향 하다가 숙종35(기축, 1709) 사수빈(泗水濱)으로 이건하여 승원(陞院)하게 되었다.

이전 당시의 일기에 의하면 영당(影堂) 창건시인 숙종6년에는 내외자손이 미조(米粗) 50여 석, 100여 필()을 수합하였으며 밀양(密陽)부사(府使) 류지(柳榰)가 렵철과 세포(細布) 2, 경주부윤 김보(金寶)가 세목(細木) 10, 기노소(耆老所)에서 조() 3, 대맥(大麥) 2, () 5, 임천서당에서 실곡(實穀) 5, 5(), 백지(白紙) 4, 호계서원(虎溪書院)에서 정조(正租) 5, 장지(壯紙) 1, 본부(本府) 향교(鄕校)에서 목 3, 김천찰방(金泉察訪) 김계상(金啓祥)이 정목(正木) 2, 백지(白紙) 2, 건시(乾柿) 2, 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 권성구(權聖矩)가 세목(細木) 2, 장지 1, 백지 2, 건시 2, 백문어(白文魚) 5, 황어(黃魚) 3(), 대구(大口) 3, 청어(靑魚) 10두름 등과 임천서당에서 서적(書籍)과 재산(財産)을 귀속(歸屬)시켰으며 숙종35년 이건 승원(陞院)시의 인근(隣近)촌락(村落)과 사승(寺僧)의 동원된 연인원이 1,800명이 되었다.>

 

위의 두 기록(記錄)을 보아 당시의 향촌(鄕村) 사족(士族)의 경제적 기반(基盤)과 사회적 지배력(支配力)을 고찰(考察)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운 자료(資料)라 하겠다.

문헌 상에 기록된 우리 지방의 원우는 62개소나 건립되었는데 그 중 건원(建院)시기를 고증(考證)할 수 있는 것은 조선조 때 5개소, 광해군 때 4개소, 인조 때 1개소, 현종 때 3개소, 숙종 때 12개소, 영조 때 3개소, 정조 때 10개소, 순조 때 3개소, 철종 때 2개소 등 모두 43개소이다.

그리고 고종 때는 상기 원우(院宇) 중에 도산서원(陶山書院)과 병산서원(屛山書院) 이외는 훼철(毁撤) 되었는데 그후 복설(復設)한 서원(書院)13개소, 신설이 2개소, 사우(祠宇)나 강당(講堂)이 현존(現存)하는 원우(院宇)는 모두 28개소로 서원 유적의 총수는 45개소이다.

 

이상으로 문헌(文獻)상으로 확인(確認)할 수 있는 우리 지방의 서원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그러나 향사(享祀)인물(人物)의 공적(功績)과 이력(履歷), 건립(建立) 경위(經緯), 연대(年代), 상향(尙饗) 축문(祝文), 홀기(笏記), 원생(院生)의 강학(講學)록인 청금록(靑衿錄)이라든가 기타 운영(運營)에 관한 기록들이 점차 희미해 지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동민속박물관(安東民俗博物館)에서 󰡔안동(安東)의 서원향사(書院享祀)󰡕란 학술총서(學術叢書)를 발간(發刊)하여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니 다행(多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개별(個別) 서원(書院)의 제의(祭儀)는 이 책자(冊子)를 참고(參考)하기 바라며 여기 각 서원의 축문(祝文)을 다음과 같이 기록(記錄)하여 참고하게 한다.

향사축문(享祀祝文)

 

1. 鏡光書院 [享祀定日3, 9月 中丁]

百竹堂 裵尙志

先師 贈吏曹判書 栢竹堂 裵先生 -

時危高蹈 世易特立 淸風百代 起我後學

- 謹以淸酌鷄腥 祗薦時事 尙饗

敬堂 張興孝

先師 贈司憲府 持平 敬堂張先生 -

早承師訓 力學安貧 敬誨不惓 惠我後人

- 以下 同文

慵齋 李宗準

先師 贈弘文館副堤學 慵齋李先生 -

業傳明師 志勵秋霜 廉頑立儒 百世不忘

- 以下同文

2. 高山書院 [享祀定日3, 9月 初丁]

大山 李象靖

先師大山李先生 -

道嫡陶山 功配考亭 闡奧詣極 萬世修程

謹以淸酌牲桼祗薦時事 尙饗

小山 李光靖

先師 小山 李先生 -

工傳約身 功存繼開 遺風起欽 水長山嵬

- 以下同文

3. 道溪書院 [享祀定日 : 3, 9月 中丁]

玉峰 權暐

先師正郞 玉峰 權先生 -

學傳于師 道肥於身 斂而不施 遺我後人

謹以淸酌 鷄腥祗薦歲事 尙饗

4. 陶山書院 [享祀定日 : 2, 8月 中丁]

退溪 李滉

先師 退陶 李先生 伏以 -

心傳孔孟 道紹閩洛 集成大東 斯文準極

- 謹以豕牲梁盛 淸酌庶品式陳 明薦以

月川趙公 從享 尙饗

5. 東山書院 [享祀定日 : 3月 中丁]

思庵 千萬里

忠壯公 思庵 千先生 -

大明華閥 海東偉勳 遺風爀爀 永世苾芬

謹以淸酌豕腥 式陳明薦 尙饗

6. 明湖書院 [享祀定日 : 9月 中丁]

容軒 李原

左議政 襄憲公 容軒 李先生 -

甘棠所憩 畏疊遺墟 陟降在期 永世寓慕

謹以淸酌庶羞 祗薦歲事 尙饗

忘軒 李冑

贈 吏曹參議 行司諫院 正言 忘軒 李先生 伏以 -

桑榟故里 文藻餘芬 自廟以壇 配享皇祖

- 以下同文

7. 黙溪書院 [享祀定日 : 85]

凝溪 玉沽

維淸玉雪 剛金直失

俎豆享之 於千萬祀

寶白堂 金係行

淵源正學 砥礪淸節

編蒙廉頑 百世芬苾

8. 碧溪書院 [享祀定日 : 3月 下丁]

玉溪 姜鳳文

贈童蒙敎官 玉溪 姜公 伏以 -

畏爲身符 孝能物格 新樹卓然 窮閻流澤

- 謹以淸酌鷄腥 祗薦歲事 尙饗

9. 屛山書院 [享祀定日 : 3, 9月 初丁]

西厓 柳成龍

領議政 文忠公 西厓 柳先生 -

學博而要 見徹而實 莊敬之功 表裏如一

謹以淸酌猪牲 祗薦時事 以 贈 吏曹參判

修巖 柳公 從享尙饗

10. 鳳巖書院 [享祀定日 : 3月 中丁]

南應元

贈司僕寺正 南先生 -

行本爲仁 義不辭爵 傳逑克世 斯道有託

謹以淸酌 猪牲 祗薦時事 以 贈左承旨

懶齋 南公 贈戶曹參判 孤巖 南公 配食尙饗

[配食懶齋 南隆達, 孤巖 南 ]

11. 汾江書院 [享祀定日 : 3月 上丁]

聾巖 李賢輔

孝節公 聾巖 李先生 伏以 -

純儒起家 進退以道 三朝大老 百世師表

- 謹以豕牲梁盛 淸酌庶品 式陳明薦 尙饗

12. 西山書院 [享祀定日 : 3, 9月 中丁]

牧隱 李穡

先師 牧隱 李先生 -

道小中華 學冠海東 功存繼開 萬世儒宗

- 謹以淸酌 鷄腥 祗薦時事 以 睡隱 先生

李公 配食 尙饗] [配食 睡隱 李弘祚]

13. 易東書院 [享祀定日 : 2, 8月 下丁]

易東 禹倬

高麗成均館祭酒 丹陽 禹先生 伏以 -

正道之操 神明之學 肥豚園林 淸風如昨

- 謹以豕牲梁盛淸酌庶品式陳明薦尙饗

14. 龍岡書院 [享祀定日 : 2月 下丁]

孤雲 崔致遠

新羅文昌候 崔先生 伏以 -

才高當世 學究天人 海東千載 聲徽益新

謹以豕牲 梁盛 淸酌庶品 式陳明薦 尙饗

15. 龍溪書院 [享祀定日 : 3月 初丁]

惟一齋 金彦璣

先師 惟一齋 金先生 -

勵志劬學 誠心樂育 餘敎未沫 敢忘報德

謹以淸酌庶羞 祗薦歲事 尙饗

16. 流巖書院 [享祀定日 : 3月 中丁]

樂琴軒 李庭栢

參奉 樂琴軒 李先生伏以

法門實工 義壇儒將 歸來修初 多士所仰

謹以梁盛 祗薦歲事 尙饗

17. 臨川書院 [享祀定日 : 3, 9月 初丁]

鶴峰 金誠一

先師鶴峰 金先生 -

性稟剛德 學傳先師 言行動天 可行蠻貊

- 謹以淸酌 鷄腥牲桼 祗薦時事 尙饗

18. 靑城書院 [享祀定日 : 2, 8月 下丁]

松巖 權好文

先師 松巖處士 權先生 -

學沂溪源 心游太古 遺風在此 起我後人

- 謹以淸酌鷄腥 祗薦時事 尙饗

19. 彰烈書院 [享祀定日 : 9月 初 2]

丹溪 河緯地

忠烈公 丹溪 河先生 伏以 -

心丹擎日 義炳恥栗 定靜而安 成仁孔淑

- 謹以淸酌 梁牲式薦 明禋 尙饗

20. 陁陽書院 [享祀定日 : 3月 中丁]

靖平 孫洪亮

先師 靖平公 孫先生 -

耆喆六朝 謝事二疏 澤厚流光 戶祝遺墟

- 謹以淸酌 鷄腥 祗薦時事 桑村先生 金公

巴山先生 柳公 配食尙饗

21. 虎溪書院 [: 廬江書院](享祀 없음)

退溪 李滉

心傳孔顔 道繼閩洛 倡起正學 百代宗師

22. 花川書院 [享祀定日 : 每年陰 35]

謙菴 柳雲龍

贈吏曹判書 文敬公 謙菴 柳先生

學文大師 道同賢季 門路旣正 進修交至

謹以淸酌 鷄腥祗薦歲事以 府使 東離先生金公 縣監

拙齊先生柳公 配食 尙饗

23. 岐陽書堂 [享祀定日 : 3, 9月 初丁]

檜軒 柳義孫

先祖 集賢殿提學 檜軒先生 伏以-

學最同瀛 義炳孤躅 笑臥古風 立我人極

- 謹以淸酌 鷄腥 祗薦時事 尙饗

岐峰 柳復起

先祖 贈吏曹參判 左承旨 岐峰先生伏以 -

檜爺裘箕 鶴老衣鉢 德深裕後 永世可忘

- 以下同文

24. 隱谷書堂 [享祀定日 : 3月 中丁]

隱谷 朴璡

嘉善大夫 同知 義禁府事 隱谷 朴先生-

家傳忠孝 身謝名利 高風隱居 德流後嗣

- 謹以淸酌庶羞 祗薦歲事 尙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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