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 이천 서씨
현재 안동시 율세동에 이천 서시 열녀비가 있다. 이 열녀비에는 다음과 같은 애달픈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옛날 안동 고을의 향리인 김창경(金昌慶)은 집이 몹시 가난한 가운데 이천 서시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못하고 시부모는 소경과 앉은뱅이인 불구였지만 서씨는 아무 불평 없이 남편과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착한 며느리 때문에 불구와 가난으로 찌들었던 어른들의 얼굴에 웃음 빛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 서씨가 시집 온지 일년만에 남편 김씨가 시름시름 병으로 않다가 갑자기 죽은 것이다. 서씨에게는 남편의 죽음이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청상과부가 된 서씨는 앞일을 생각하니 눈물과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불구인 시부모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기운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서씨는 소경과 앉은뱅이인 시부모의 눈과 발이 되어 주어야하는 것은 물론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까지 담당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동네의 방아품과 빨래품을 팔아 양식을 구해 오기도 하고, 산에 가서 땔감나무를 해다가 장터에 내다 팔기도 했다. 시부모는 불구인 까닭에 아무 일도 하지 못했지만 워낙 부지런한 서씨 며느리 덕분에 굶주리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뿐인 아들을 갑자기 잃고 난 뒤로부터는 화병이 들었는지 시부모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며느리 서씨는 시부모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하여 병에 좋다고 하는 약초를 캐어 다려 올리기도 하고, 품을 판 돈으로 약을 지어 드리기를 정성껏 하였다. 마음에 얻은 병이라서 그런지 아무 약을 써도 효과가 없고 병은 점차 악화되기만 했다. 그럴수록 며느리의 정성은 더 지극하여 갔다.
이미 서씨는 시부모가 죽으면 같이 죽으리라는 마음을 먹고 병구 간호를 하고 있었으니 그 정성이 지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서시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는 차례로 세상을 떴다. 서씨는 즉시 목숨을 끊어서 불효를 사죄하려고 하였으나 자기가 죽으면 시부모의 장례를 치러 줄 사람이 없을 것으로 여겨서 눈물 속에 시부모의 장례식을 마쳤다.
그리고 나서 이제 자기가 남아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서씨는 먼저 간 남편과 시어른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 죽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서씨는 9일간의 단식 끝에 목숨을 끊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씨의 효성에 감복하여 그녀를 고이 장사지내고 그 이야기를 관청에 알려 열녀비를 세우게 했다.
우리 나라에는 열녀와 효부가 많지만 서씨처럼 시부모를 따라 목숨을 끊은 이는 흔하지 않으며, 그 효성은 길이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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