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 juntonggahun@naver.com
관광명소 안동의 시와 가사 안동의 민속 안동인의 논단 우리의 설화 전설과 해학
>> 안동소개 > 안동의 민속


[일반 ] 차전놀이(동체싸움)

청남

 

 

차전놀이(동체싸움)

 

1 유래와 전설

 

이 놀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안동에서 견훤과 결전을 벌이게 되었을 때 왕건은 권행(權幸),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脚) 세 장군의 도움을 얻어 승리할 수 있었다. 뒷날 이 세분을 삼태사(三太師)라 하고. 이들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동채싸움을 시작하게 되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왕건과 견훤이 안동에서 싸움을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현재도 안동시에는 세 장수를 모신 太師廟(태사묘)가 있다.

 

또 원래 지렁이였던 후백제의 왕 견훤이 사람으로 변신하여 안동으로 오자 그를 몰아내기 위하여 소금 배를 풀어 낙동강 물을 짜게 만드는 한편, 읍민들이 모두 나서서 팔짱을 끼고 어깨로 강물에 밀어 넣어 죽게 하였다.

이 후로 안동 사람들은 지렁이를 떠밀어낼 때처럼 손을 쓰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어깨로 밀어내는 동채싸움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 군민들이 견훤군을 무찌를 때에 방어진으로 설치한 ()를 뽑아 여러 사람이 어깨에 메고 이를 앞세워 진격하였다. 견훤군은 여기에 밀려 개치기골(개축들, 안동시 옥동)로 쫓겨 패하였다.

이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의 군민들은 매년 정월 보름날, 서부로 나뉘어 나무묶음을 메고 겨루기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동채싸움이 그러한 전설에서 발생 유래했다고는 만은 할 수가 없다.

정월 보름날에 행하였다는 시기와 승리를 겨루는 놀이형식과 농촌이라는 지역 배경 등의 여러 요소를 종합할 때 분명히 농경예측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되고, 그러한 의례나 신앙적 요소가 쇠퇴 탈락하여 잔존한 집단놀이라 할 수가 있다

 

2. 놀이 방식

추수가 끝난 뒤 동서 양편의 대표들이 모여 이듬해 정월 보름날에 동채싸움을 거행하기로 합의 결정하면 동채를 만드는 데에 쓸 나무를 구하러 서너 사람이 산으로 떠난다.

선정된 나무 주위에 금줄을 쳐서 아무나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하며 그 고을의 현감도 이의 보호를 위해 각별한 배려를 취한다.

 

새해 설을 쉰 뒤에 부정이 없는 목수를 골라 나무를 베러 보낸다. 이 나무가 읍내에 이를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간다. 나무는 부정이 없는 집에 들여놓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은 뒤에 동채를 만든다.

 

동채나무는 길이와 굵기가 보통 서까래 만한 것으로부터 훨씬 길고 굵은 것까지 있다. 새끼 동채는 한 끝을 가위 모양으로 어스러지게 놓고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매며 모난 방석을 가운데에 달아둔다.

 

지휘자는 이 방석 위에 올라가서 자기편을 통솔하며 힘센 동채꾼들이 동채의 네 귀를 어깨에 멘다. 그리고 머리꾼이라고 하여 건장한 청년들이 동채 주위에 둘러서서 대장을 호위하는 한편, 팔짱을 끼고 상대를 어깨로 밀거나 돌격해 들어가서 적의 대장을 동채에서 끌어내리고, 동채를 깔아 눕히는 역할도 한다.

 

안동에서 전하는 "동채머리꾼같다" "동채머리꾼 터지듯 한다"는 말들은 동채싸움에 머리꾼들이 봇물 터지듯이 신속하고 거세게 움직이는 상황을 잘 설명한 것이라 하겠다.

 

보름날이 되면 회전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며 이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출생지에 따라 패가 갈린다.

 

대장은 왼손으로는 동채 머리에 달린 끈을 잡아 몸의 안정을 취하고, 오른 손으로는 지휘를 한다. 수천의 군중이 함성을 질러 수라장을 이루므로 소리를 질러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예컨대,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면 전진이고, 뒤로 빼면 물러서며 뒤에서 좌우로 흔들면 회전하라는 신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자기편의 동채를 밀어낼 때 동채꾼들은 자기네의 동채가 상대의 것보다 아래쪽에 깔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번쩍 치켜올린다. 한쪽의 동채를 상대 쪽의 그것에 올려놓기만 하면 일시에 수백명이 달려들어 아래로 짓누르므로 패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이렇게 동채싸움은 상대의 동채 머리를 먼저 땅에 닿게 하거나 대장을 끌어내리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놀이는 민첩한 머리꾼의 힘과 힘의 대결인 것이다. 머리꾼은 팔짱을 끼고 일치단결하여 적군의 주력부대인 머리꾼을 분산시키고 적의 동채에 접근하려고 있는 힘을 다하는데 흥미가 있고, 싸움의 중심이 있다 하겠다.

 

놀이꾼은 머리꾼이 분산되지 않도록 사면을 포위하고 적의 놀이군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따라서 양군의 동채와 동채 사이에는 머리꾼과 놀이꾼으로 육탄전이 전개된다

 

지금은 민속놀이로 전승된 이 동체싸운은 남성적인 기백과 협동과 단결이 승패를 가름하는 아주 씩씩한 남성적인 민속놀이다.

<자료: 안도민속박물관 제공>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 목록
번호 분류 제 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500 루로은풍경 (80).jpg 楚辭(초사)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3소단 -3. 청남 24-01-21 62
499 루로은풍경 (79).jpg 楚辭(초사)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3소단 -2 . 청남 24-01-21 66
498 루로은풍경 (78).jpg 楚辭(초사)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3소단 -1 . 청남 24-01-21 56
497 루로은풍경 (77).jpg 楚辭(초사)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2소단 . 청남 24-01-21 50
496 루로은풍경 (77) 사본.jpg 楚辭(초사)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1소단 . 청남 24-01-21 54
495 루로은풍경 (34).jpg 楚辭(초사)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1소단 4. 청남 24-01-17 84
494 루로은풍경 (33).jpg 楚辭(초사)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1소단 3. 청남 24-01-17 72
493 기훈9.jpg 楚辭(초사)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1소단 2. 청남 24-01-17 73
492 기훈댐7.jpg 離騷(이소) 前段(전단) 제1소단 1. 청남 24-01-17 91
491 루로은풍경 (10) 사본2.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秋間聞湖南時訴作(추간문호남시소작) 청남 24-01-15 108
490 루로은풍경 (10) 사본2.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偶宿靈東崔友鶴東家(우숙영동최우학동가) 2. 청남 24-01-15 78
489 루로은풍경 (10) 사본.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偶宿靈東崔友鶴東家(우숙영동최우학동가) 1. 청남 24-01-15 76
488 루로은풍경 (7).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春暮過一秀才口呼(춘모과일수재구호) 1. 청남 24-01-15 81
487 루로은풍경 (6).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登四仙臺有感(등사선대유감) 청남 24-01-15 72
486 길10 (2).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贈別金雅士(증별김아사) 청남 24-01-13 174
485 길9.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龍潭赴人新婚時夜話(용담부인신혼시야화) 청남 24-01-13 131
484 길8.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三月初旬客中吟(삼월초순객중음) 청남 24-01-13 59
483 길7.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律詩(율시) 청남 24-01-13 54
482 길6.JPG 南隱公遺稿(남은공유고) 律詩(율시) 春夜吟(춘야음) 청남 24-01-13 79
481 비석 (3).JPG 敬齋箴(경재잠) 청남 23-11-10 135
게시물 검색